‘두터운 복지’라는 이름의 성긴 그물

전종휘 2023. 8. 3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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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룸에서] 전종휘 |사회정책부장

‘게도 구럭도 모두 잃었다.’

정부의 656조9천억원 규모 내년 예산안을 살펴본 전문가들이 성장도 기대하기 어렵고 건전재정도 놓쳤다며 내린 결론이다. 이는 경기 부진 속에 철 지난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등 이른바 ‘부자 감세’를 할 때부터 예견된 결과이기도 하다. 정부 예산 2.8% 증가는 20년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재정지출이 경제성장을 이끄는 중요한 한 축임을 고려하면, 저성장의 고착화에 돌을 하나 더 얹은 셈이다. 서민과 저임금 노동자한테 긴 겨울이 오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사회복지 분야 지출을 올해보다 8.7%나 늘린 대목은 평가할 만하다. 특히 기초생활보장제도를 포함한 저소득층 관련 예산은 올해보다 1조6천억원 증가한 19조4천억원을 편성했다. 이는 기준 중위소득 인상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한테 지급하는 생계급여 수급액이 4인가구 기준 21만3천원 오른데다 생계급여 수급 대상 선정 기준을 기준 중위소득의 30%에서 32%로 확대한 덕이다. 보편적 복지 대신 가장 취약한 계층을 두텁게 보호한다는 이 정부의 방침이 적용된 결과다.

문제는 지속가능성이다. 지금 같은 감세 기조에서 내년 국세 수입은 올해보다 33조원 이상 급격히 줄어들 전망이다. 법인세 감소분만 27조원에 이를 것이란 게 기획재정부 예측이다. ‘작은 정부’를 유지하면서 사회복지 분야 지출을 계속 늘릴 순 없는 노릇이다. 국민이 조금 내고 조금 받는 ‘저부담 저복지’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지출에서 한국은 늘 낙제 수준을 면치 못한다.

‘좁고 두터운 복지’란 명제에 매몰되면 필연적으로 사각지대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당장 내년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하는 구직급여 예산은 10조9천억여원으로 올해보다 약 2700억원 줄었다. 가장 중요한 고용안전망 제도를 일컬어 ‘시럽급여’라고 비하하던 정부와 여당의 비뚤어진 인식이 투영된 예산안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가장 밑단의 노동자한테 적용되는 구직급여 하한액을 낮추는 건 법률 개정 사안이어서 반영하지 않았다는 게 정부 해명이나, 그렇다고 삭감의 구체적인 근거를 대지도 않았다. 전국민 고용보험 제도를 비롯해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고민한 흔적도 찾기 어렵다.

정부는 10인 미만 사업장의 저소득 노동자 사회보험료를 지원하는 두루누리 사업 예산도 올해 1조764억원에서 내년 예산안에선 2389억원이나 줄였다. 저성장 시대 저소득 노동자를 보호하는 고용안전망을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게 틀림없다. 정부 주장대로 지금껏 잡아 놓은 예산 가운데 30% 안팎이 불용액으로 남았다면, 홍보가 부족한 건 아닌지, 제도 접근에 걸림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우선 살펴볼 일 아닌가. 부자 세금 깎아주는 정부가 이런 예산부터 깎는 건 가난한 이의 주머니를 털어 고소득층 배를 불린다는 비판을 사기에 충분하다. 국가 재정의 소득재분배 구실과도 거꾸로 가는 길이다.

더구나 이 정부는 2024년치 최저임금을 올해에 견줘 2.5% 찔끔 올리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한국은행이 최근 내놓은 내년 경제성장률 예측치가 2.2%라는 걸 생각해보면 올린 시늉에 그친 셈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판단할 때 급여항목 가운데 부분적으로만 산입 범위로 인정해준 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내년부턴 대부분 임금으로 인정된다. 문재인 정부 때부터 시작된 변화다. 내년엔 최저임금 수준 사업장의 사용자가 임금을 올리지 않아도 자동으로 최저임금 위반이 아니게 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뒤따를 물가 상승까지 고려하면 상당수 사업장 저임금 노동자의 내년 실질소득은 뒷걸음질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상식적인 판단이다. 이처럼 혹독한 겨울에 이은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노동자는 최대 300만명 안팎으로 추산된다.

‘두터운 복지’ 바로 윗단의 저소득층한테 2024년은 자칫 낮은 소득과 낮은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빠지는 해가 될 수 있다. 국회는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이런 점들을 꼼꼼하게 살펴 빈틈을 메워야 한다.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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