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위험
[왜냐면] 황성 | 전 한국은행 국장
은행의 가계대출이 한국은행의 긴축적 통화정책 등에 힘입어 지난해부터 감소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로 부동산 가격의 상승 기대가 형성됨에 따라 올해 4월부터 증가세로 돌아서고 6~7월 중에는 11조8천억원이나 늘어나는 등 그 증가 속도가 2021년만큼 빨라져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등이 다시 켜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부터 대형은행들이 4%대 초중반 금리로 취급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금융당국으로부터 가계대출 증가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금융당국은 이 대출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디에스알) 회피 수단으로 이용되는지 들여다보려 한다. 주택담보대출은 원래 만기가 길면 길수록 연간 갚아야 하는 이자 부담은 늘지만 원금 상환액이 감소해 디에스알이 줄어드는 구조인데, 주택을 구매할 때 자기 자금 부담이 적고 부동산 가격도 다시 올라가는 조짐을 보이니 대출시장에서 이 상품의 인기가 높아진 것이다. 애초에 이런 초장기 대출을 해줄 때 만기별로 디에스알을 차등 적용했으면 이런 논란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필자는 이런 논란보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내재한 위험성에 더 주목한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은 차주가 자기 자금 부담을 낮추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위험을 내재하기 때문에 함부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30살인 차주가 이 대출을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첫째, 차주는 이 대출로 평생 부채 속에 살아야 하며 80살이 돼서야 부채에서 해방된다. ‘죽을 때가 되니 내 집이 생긴다’는 미국의 우스갯소리가 있다. 주택담보대출 30년이 표준적 만기인 미국에서도 이런 얘기가 나온다면 50년 만기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시장금리가 하락하면 중도에 상환할 수도 있지만 이는 더 낮은 금리로 갈아타는 것에 불과하므로 차주가 빚 속에 갇힌 것은 마찬가지다.
둘째, 대체로사람들이50대 중반부터 은퇴하는 점을 감안하면 차주가 대출 만기가 중간쯤 지날 때 은퇴하게 된다. 이때부터 차주는 소득이 급속히 줄기 때문에 디에스알이 당연히 급격히 올라간다. 이는 차주에게 은퇴 뒤 소비 긴축을 강요함으로써 노후의 삶을피폐화시킬 가능성이 있으며 거시적으로는 소비 감소를 촉진해 우리 경제의 장기 저성장구조를 고착화시킬것이다.
셋째, 이 대출의 금리조건은 혼합형이다. 즉 대출받은 시점부터 5년 동안은 고정금리지만 그 이후에는 대출금리가 6개월마다 신규 코픽스 금리에 연동되므로 5년 이후 변동금리라고 봐야 한다. 그러므로 이 대출은 45년 동안의 금리위험을 전부 차주가 부담해야 한다. 은행들은 신규 코픽스로 자금을 조달하고 여기에 일정 스프레드(금리 격차)를 붙여 대출금리를 정하기 때문에 아무런 금리위험을 부담하지 않는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사상 유례없는 초저금리정책을 펴고 있을 때, 2년 뒤 지금과 같은 고금리정책을 펼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물며 앞으로 45년 동안 금융 여건의 불확실성을차주가 전부 감내하는 것은 엄청난 부담이다. 특히 금융 긴축 시기와 맞물린다면 늘어난 이자 때문에 차주의 고통은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이 대출은 차주뿐 아니라 대출 취급 은행에도 상당한 잠재적 위험을 주고 있다. 5년이나 10년 뒤 주택가격이 하락한다면 담보자산에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만약 주택 가격이 담보대출비율(LTV) 근처로 내려온다면 정말 큰 일이다. 또한 만기가 중간쯤 지날 때 차주의 은퇴로 디에스알이 급속히 높아지면 이 대출의 연체 가능성도 커져 은행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위험들을 충분히 고려해 만기 50년 주택담보대출은 신중히 취급해야 한다. 은행이 주택금융공사 상품이 아닌 자체 자금으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을 취급하려면 커버드본드(이중상환청구권부채권) 등을 통해 50년 만기의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이때 비로소 차주는 금리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리고 만기 50년은 차주에게 과다한 이자 부담을 줄 뿐만 아니라 차주의 상환능력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이므로 만기를 가급적 30년 이내로 하는 것이 좋다. 미국도 이러한 이유로 15~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이 일반적이며 50년 만기는 극히 제한적으로 취급하고 있다. 끝으로 은행도 주택금융공사의 특례보금자리론처럼 나이와 생애최초 주택구입 등 차주의 요건을 명확히 해 초장기 대출이 남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도 당연히 가계부채라는 영역 안에서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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