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장군을 임기 5년짜리 정부가 추방시키려 하나
[왜냐면] 이성대 | 진보교육연구소 이사·전 구암고 교사
2018년 3·1절 99주년을 맞아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이회영 다섯 분의 흉상을 육군사관학교에 모시게 된 것은 육사 생도들이 다섯 분 선열의 뜨거운 헌신을 가슴속 깊이 새겨 조국의 든든한 동량으로 자라나 주기를 바라는 염원이었으리라.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몇 년 만에 그분들은 더 이상 그 자리에 계시지 못하게 됐다.
너무도 중차대하고 심각한 이 사변을 역사 교사로서 지나칠 수가 없다. 제발 그따위 생각으로 더 이상 선열을 욕보이지 말라, 두 손 모아 간곡하게 호소한다. 이 문제를 아주 심각하게 바라보는 것은 윤석열 정부가 대한민국 민족 사회를 사실상 해체하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잘못된 정책이 도를 넘어도 한 참 넘고 있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히 민족의 미래를 짊어질 동량을 육성하는 육사마저 자신들의 편협한 정치색으로 덧칠해 망가뜨리려 한다.
국방부 발표문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미뤄 짐작해 보면 아마도 윤석열 정부는 홍범도 장군을 가장 꺼리는 듯하다. 장군의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고 있는데 한 마디로 역사의식의 빈곤, 아니 부재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장군께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가 넘어가는 1895년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1907년 군대가 해산되던 해에 다시 의병장이 돼 항일 무장 투쟁에 나섰다. 1920년대 소련공산당이 약소민족 해방운동을 지원하는 국제 정세에서 민족의 독립에 도움되는 선택을 했던 것이고 현 북한 정권과는 어떤 연관성도 없다. 북한 정권이 수십 년 동안 옛 소련령에 묻혀 계셨던 장군의 유해를 모셔가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시스트 히틀러의 독일 제국을 물리치기 위해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함께 연합군 진영을 이뤄 싸웠던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오늘의 시각을 가지고 장군께서 소련공산당에 가입하셨던 것을 문제 삼아 그분의 삶을 폄훼하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오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을 성취한 자신감을 가지고 옛 소련에 살던 고려인과 중국 거주 동포인 조선인, 재일 조선인들을 두루 포용하고 있다. 국권을 잃고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살았던 한민족의 조국이 됐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국경일 경축사와 평소 발언을 보면 애써 이룩한 민족 사회의 기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크게 염려한다. 장군을 육사 교정에서 추방(?)하려는 작금의 상황은 한마디로 민족 사회를 분열시키고 해체하려는 무도한 처사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우는 자유민주주의 가치는 민족 공동체의 기반을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으려는 것 같아 두렵다.
대한민국 육사는 대한민국, 한민족 공동체의 생존을 맡을 인재를 기르는 가장 중요한 국가교육 기관이다. 스스로 방위하지 못하는 국가, 민족 공동체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1907년 군대 해산 당시 대한제국 군대는 8천~9천 명 정도였다. 일본 제국주의는 치밀하게 군대 해산 계획을 세우고 기습적으로 무기를 빼앗고 군대를 해산했다. 군대 해산은 곧바로 국권 상실로 이어졌다.
이회영 선생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과 홍범도·김좌진 장군은 바로 일제와 싸울 수 있는 군대를 만드셨던 분들이다. 박은식 선생은 ‘민족의 혼’이 망하지 않으면 나라는 부활할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육사 생도들에게 가르쳐야 할 정신은 국권을 상실한 뒤 찬바람 마다치 않고 온몸을 헌신하셨던 선열의 가르침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한민국 군대는 북한의 침략을 막을 뿐만 아니라 험난한 국제 정세 속에서 외부로부터 어떤 위협과 침략에도 민족 공동체를 지켜내야 한다. 그 핵심에 육사가 있고 그 육사에는 도도한 ‘민족의 혼’이 함께해야 한다. 다섯 분 선열은 ‘민족의 혼’의 정수이시다. 이분들의 흉상을 육사가 아니면 어디에 모셔야 하겠는가? 선열의 정신을 저버리고 소홀히 한다면 우리에게 어떤 길이 있겠는가? 단연 이번 동상 철거는 그만둬야 한다.
임기 5년의 정부가 민족 공동체와 역사를 해칠 수는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헌법을 수호하겠다는 취임 선서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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