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 격노’ 진술서로 거세진 윤 대통령 수사 외압 공방
국방부 “진술서 발언은 사실과 달라”
사안의 중대성·증거인멸 우려로 구속영장 청구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지난 28일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진술서가 공개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는지를 두고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경향신문이 입수한 박 대령 진술서에는 채 상병이 집중호우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지난달 20일부터 상부에 수사결과를 보고한 상황, 31일 사건 수사기록의 경북경찰청 이첩이 보류되고 언론브리핑이 취소된 후 8월 2일 보직 해임된 과정이 일자와 시간별로 기록돼있다. 특히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김계환 해병대사령관과의 대화 내용과 상황이 자세히 묘사됐다. 박 대령은 김 사령관이 이첩 보류 이유가 “VIP(대통령) 격노”라고 확인해줬다고 주장하고 있어, 진술서에 묘사된 대화의 진위 입증 여부가 향후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령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7월 24일 당시 수사단장이었던 박 대령을 호출한 김 사령관은 “(임성근) 1사단이 합참단편명령을 운운하면서 쪽팔리게 지휘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면 직권 남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해 주라”면서 “해병대가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지시했다. 이어 28일에는 박 대령에게 수사결과를 보고받은 김 사령관이 “궁금한 사항이 모두 이해됐다”고 만족하면서 임 사단장 후임자도 내정했다는 것이다. 김 사령관은 7월 30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수사 결과를 보고하는 과정에서도 “사단장 과실이 확인됐다”며 사단장 처벌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상황이 급변한 31일 박 대령이 ‘수사 혐의자·혐의 내용 삭제 요구’에 대한 이유를 물었고, 김 사령관은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간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는 주장이다.
이어 8월1일 수사 결과를 국방부 조사본부나 경찰에 빨리 이첩해야 된다고 박 대령이 건의하자 사령관은 “내가 옷 벗을 각오로 국방부에 건의하고 경찰 이첩 방안도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박 대령 측 주장에 따르면 사령관의 태도가 급하게 바뀐 것은 8월 2일이다. 예정된대로 경북경찰청에 이첩하려 했지만 사령관이 “당장 인계를 멈추라”고 지시한 뒤 구두로 보직해임을 통보했다고 한다.
윤 대통령 개입 의혹과 관련한 여러 관측도 나오고 있다. 국회 국방위원을 지낸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윤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특별한 인연이 있는 임 사단장의 보직 해임을 막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7월 폭우 당시 ‘재택근무’와 반지하 현장에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비난을 받다가 1사단의 장갑차 투입으로 여론이 반전됐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6일 용산 대통령실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태풍 힌남노 피해 상황 점검 회의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임성근 사단장과 통화했고, 다음날 방문한 포항 수해 현장에서는 임 사단장으로부터 직접 대민지원 현황을 보고 받았다.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박 대령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신범철 국방부 차관은 이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이 장관이) 통화한 적 없다고 했다”며 윤 대통령과 이 장관의 통화 사실을 부인했다. 김 사령관도 29일 진행된 국방부 검찰단 조사에서 진술서 발언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당사자들이 진술서에 나온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이라면서 “박 대령 측의 주장은 추후 조사를 통해 밝힐 부분”이라고 말했다.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박 대령에 대해 군사법원에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국방부는 “피의자가 계속 수사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안의 중대성 및 증거인멸 우려를 고려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면서 “잇따른 피의자의 일방적 주장 발표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박 대령이 본인의 일방적 주장을 자유롭게 공개적으로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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