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의 눈]저항하는 ‘가이포크스 가면’을 봐야겠는가
윤석열 정부가 어디까지 가려는지 모르겠다. 설마 했는데 홍범도 장군을 문제 삼아 독립투쟁 역사까지 훼손할 줄은 몰랐다. 1920년대 만주·연해주 독립운동에서 소련 공산당 가입은 불가피한 면이 있었고, 자유시 사태는 독립운동사의 트라우마였고, 홍범도 장군은 그 비극의 정점에 있던 인물이다.
그런데도 자신들의 몰상식한 역사관을 성찰하기는커녕 낡은 용공 혐의를 씌워 독립운동 영웅을 모욕한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로당 이력, 2차 세계대전 종반 스탈린과 얄타회담장에 마주 앉았던 루스벨트도 용공이란 말인가. 미래라는 폭풍이 과거를 폐허로 만든다고 했던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천사’가 지금 한국 사회에선 다른 얼굴을 한 채 경종을 울린다. 과거라는 폭풍이 미래의 파국을 만들고 있다고.
홍범도 장군 동상 이전 사태는 국가 정체성과 정신적 자산인 독립운동을 앙상하게 만든 일이다. 반공이 국시였던 군사정권도 독립운동 의미를 노골적으로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역사적 맥락을 끊어버린 것이다.
집권 2년차 들어 윤 대통령 발언과 국정은 유난히 극우 색채가 강해졌다. 비판 세력을 이권 카르텔로 묶더니 대국민 메시지를 발신하는 4·19, 광복절 기념행사에서 이들을 반국가 세력, 공산전체주의로 매도했다. 주변부에 머물렀던 극우 인사들을 정권 핵심부에 중용한 것을 시작으로, 민주주의 가치를 경멸하고 조롱한 사례가 어디 한두 건인가.
그간 윤 대통령은 공정·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보수임을 강변했지만 독립운동까지 이념전에 활용하는 정부를 더 이상 보수로 볼 수는 없다. ‘제도와 관습을 지키고, 그 제도와 관습이 역사 속에서 성장했다는 것’을 중시하고 ‘민주주의를 존중하면서 점진적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정치적 보수주의의 최소 함의다. 이 중 하나라도 윤 대통령이 지키려 한 보수의 가치가 있나. 윤 대통령은 왜 보수의 내홍을 자극하면서까지 온 사회를 불구덩이 속으로 끌고 가려는 걸까.
일각에선 내년 총선용이라고 말한다. 야당이 중도·온건보수층에 눈길을 주지 않으니 집토끼 싸움으로 총선을 치르면 불리할 게 없다는 것이다. 투표율 50~60%를 가정하면 국정 지지도 35%선만 유지하면 국민의힘이 1당이 된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35% 지지자가 모두 투표장에 간다는 보장도 없고, 지역별 지지율 편차도 있고, 정권교체 후 민심 지형이 보수 우위로 변했다고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윤 대통령의 극우적 발언을 영남·60대 이상의 이념형 보수에 소구하는 전략으로 해석하는 건 협소하고 안이한 시각이다.
구조적 차원의 추론도 있다. 한·미·일 군사동맹이 구축한 신냉전 구도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을 찾기 위한 차원, 즉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국정 전반을 편입하려는 시도라는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재단, 일본 사사카와재단 등 양국 극우 세력과 윤석열 정부의 연대를 뜻한다. 그러나 미국의 패권 전략이 자국 극우 세력과 밀착해 운영될 정도로 단순하지 않고, 미·일 극우 세력과 한국 정부의 연결고리도 불분명하다. 그래서 인·태 전략의 하위 구도를 만들기 위해 윤 대통령이 극우적 행보를 한다는 주장은 음모론에 가깝다.
합리적 이유도, 맥락도 없다면 정권 성격이나 권력 행태와는 무관한 검찰 본능, 윤 대통령의 기질적 특성이 초래한 사태로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민감한 수사 정보를 적절한 시점에 흘려 피아 구도를 만드는 정치. 그나마 반쪽 성과라도 얻을 수 있는 전 정권·비판 세력 탄압, 여기에 신념우익 기질이 더해져 이념전을 불사하는 정치. 윤 대통령은 지난 29일 민주평통 행사에서 반대 진영을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이라고 거듭 낙인찍으면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했다. 공안정국, 공포사회 예고나 다름없다.
누군가 대한민국 시민으로 사는 일을 묻는다면 ‘무수한 철심이 매 순간 혈관을 찌르는 상태’라는 것 말고 다른 답이 있겠는가. 그러나 국가가 오작동을 멈추지 않는 한, 철심의 고통을 마냥 참기만 할 시민들이 아니다. 보수 주류가 역사 지우기를 매카시즘이라 비판하고, 해병대 예비역들이 항명 수사에 맞서 광장에 섰듯, 곳곳에서 분노의 인계철선이 터질 것이다. ‘저항의 상징’ 가이포크스의 콧수염 가면을 쓰고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게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외치는 모습, 17세기 영국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함부로 장담할 일이 아니다.
구혜영 논설위원 kooh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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