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트병 해적선이 한강에 떴다...서울시 ‘한강호 경주대회’ 가보니
서울의 한낮기온이 34도에 육박했던 19일 토요일 오전 잠실대교 옆 한강공원. 이날 이곳에 모인 120여명의 시민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폐 페트병과 노끈을 이용해 ‘배 만들기’에 열중이었다. 버려진 페트병으로 직접 만든 배를 띄워 한강에서 경주를 벌이는 ‘나만의 한강호 경주대회’ 참가자들이다.
이 대회는 자원 재활용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지난 2014년 처음 시작했다. 원래 버려진 골판지 등을 이용해 종이배를 만드는 대회였는데, 올해부터는 ‘플라스틱 배’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45팀은 페트병과 플라스틱 박스 등 재활용품을 활용해 직접 배를 만들어 한강에서 한바탕 경주를 벌였다. 모터 등 기계 동력은 허용되지 않는다. 직접 노를 저어 30m 앞 반환점을 돌아 출발지로 되돌아와야 완주로 인정된다.
해외에도 비슷한 대회가 많다. 미국 오하이오주에서는 1974년부터 매년 여름마다 ‘국제 카드보드(골판지) 배 경주 대회’가 열린다. 영국 캠브리지대학 재학생들도 캠퍼스를 따라 흐르는 ‘캠 강’에서 매년 골판지로 만든 배를 타고 경주를 펼친다.
이날 대회엔 저마다 다양한 출전 계기를 가진 이들이 모여 힘을 합쳤다.
1등 상품인 전기자전거를 되팔아 용돈으로 쓰기 위해 여고 동창들을 불러모았다는 우정현(23)씨는 “가장 속도가 빠른 배를 설계하기 위해 유체역학 논문까지 찾아보며 준비했다”며 “주어진 페트병으로는 ‘카약’ 형태를 만드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해 ‘페트병 카약’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친구 이현지(22)·정서영(21)씨는 “고무줄을 배배 꼰 뒤 골판지를 고정시키는 방법으로 간이 모터도 만들었다”고 했다.
최연소 참가자인 30개월 딸 채은양과 4살 아들 시우군을 데리고 참가한 송지아(37)씨는 종이배 대회에 관심이 많은 남편의 권유로 대회에 참가했다. “가족끼리 ‘페달 없는 자전거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을 정도로 이색 대회 참가를 좋아하는데, 직접 배를 만들고 경주하는 이 대회가 여름에 제격이라 망설임 없이 신청했다”며 “막내딸은 배에 태울 수도 없을만큼 어리긴 하지만 완주만 해도 아이들에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고 했다.
해적선을 모티브로 한 ‘레드포스호’를 만든 강기현(30)씨와 중앙대 응용통계학과 동문 팀은 한강에 배를 띄우자마자 균형을 잃고 물에 빠졌다. 강씨는 “꼭 1등을 차지해 상품을 타겠다는 각오로 출전했는데 아쉽다”면서도 “제일 멋진 배는 단연 우리 팀”이었다고 자랑스레 웃어보였다.
이날 경주에서 1위를 거머쥔 팀은 1분 42초만에 60m를 완주한 유한백(24)씨의 ‘심플 이즈 베스트’ 팀이었다. 페트병을 상자 모양으로 엮은 뒤 가로, 세로 약 1.5m, 두께 약 30cm의 뗏목을 만들었다.
한헌(24)씨는 “친구들과 추억을 쌓기 위해 별다른 계획 없이 재미로 참가했는데 우승을 해서 우리도 놀랐다”며 “우승 상품이 있는줄도 몰랐다, 상품을 어떻게 나눌지 지금 의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대회 참가를 위해 강릉에서 왔다는 이현(24)씨는 “물에 뜨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단순한 네모 뗏목을 만들었는데 그 전략이 통한 것 같다, 협동해서 노를 잘 저어준 친구들 덕에 우승한 것 같다”고 했다.
경주를 마치고 참가자들은 배를 만드는 데 쓰인 페트병을 재활용하기 위해 배를 다시 분해했다. 노끈과 비닐도 모아 분리배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무더운 여름날 온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이색 레포츠 프로그램을 마련했다”며 “재활용품으로 배를 만들고 다시 분리수거하는 과정을 통해 ‘쓰레기 없는 한강’을 보호하자는 의미도 담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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