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 팔리는데 보조금까지 뚝…전기차 '마케팅 전쟁' 불붙었다
◆ 전기차 보조금 삭감 ◆
"내년에 보조금이 어찌 될지 몰라요. 이왕 전기차(EV)를 사려면 올해 안에 당장 사는 게 돈 버는 거예요."
최근 40대 직장인 최 모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수입차 딜러에게 전기차 신차 구매를 재촉하는 전화를 받았다.
지난 29일 환경부의 내년 무공해차 보급 사업 예산 발표 직후였다. 전기차 기본 국고 보조금(인센티브 제외)이 100만원 줄었고, 추후 발표될 지방자치단체 보조금도 줄어들 게 불보듯 뻔하다는 게 재촉의 이유였다.
30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는 내년 무공해차 보급 사업 예산으로 2조3988억원을 편성했다. 올해보다 1664억원 줄어든 수치다.
전기차 기본 국고 보조금은 전기승용차의 경우 현행 대당 5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100만원을 줄였다. 전기화물차는 기존 대당 보조금이 1400만원에서 1100만원으로 300만원이나 줄었다. 정부가 전기차 보급률이 일정 궤도에 올랐다고 판단해 보조금 예산을 줄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기차 보조금은 국고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으로 나뉘는데 지자체 보조금은 내년 초 발표될 예정이다. 이처럼 정부가 내년 전기차 국고 보조금을 줄이기로 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득실 계산에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 EV시장 성장이 둔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상황에서 보조금 규모까지 축소되면 소비자 구매 동인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과 주요 수입차 업체 등 완성차 업계는 정부 가이드라인을 예의주시하면서도, 내년 전기차 가격 인하 압박을 거세게 받음에 따라 어느 때보다 치열한 마케팅 경쟁을 예고했다.
최대 관전 포인트는 전기차 보조금 100%를 받을 수 있는 기준 가격이다. 정부가 현재 설정한 기준은 승용 기준 5700만원이다. 전기차 가격이 5700만원 이하여야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완성차 업체 대부분은 이 기준 이하로 가격 정책을 수립한다. 이를 충족해야 소비자들이 수백만 원 더 싸게 전기차를 실제 구매할 수 있어 동인이 크기 때문이다. 이르면 연말에 전기차 보조금 100% 지원 기준 가격이 결정된다. 업계는 5500만원 등으로 기준이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는 내년 충전 인프라스트럭처 예산은 늘리면서도 전기차 구매자에 대한 지원액을 줄여 전기차시장 확대 공을 사실상 업계에 넘겨버린 꼴"이라면서 "정부가 친환경차 보급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완성차 업계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 카드로 100% 지원 기준 가격을 더 낮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올해 들어 EV시장 성장세가 꺾인 점은 업계 입장에선 큰 고민거리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차 국내 판매 대수는 7만8977대로 전년 동기 대비 16% 성장했다.
월별로 보면 올해 1월과 5월, 7월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같은 기간을 밑돌았다. 상반기 누적으로는 작년보다 시장이 성장했지만 이전 성장률과 비교하면 전기차 인기가 크게 꺾인 모양새다. 2022년 상반기는 전년 동기 대비 전기차시장이 70%, 2021년은 81% 성장했기 때문이다. 시장 성장이 더뎌진 데다 정부 지원까지 줄면서 완성차 업계에 대한 가격 인하 압박이 더 거세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내년부터 업계는 더욱 공격적으로 마케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돌풍급의 5000만원대 중국산 테슬라 모델Y까지 한국에 상륙하면서 내년에 가격 접근성을 크게 높인 대중 전기차 시대가 열릴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주요 기업들은 우선 기존 고급 전기차 가격을 당장 낮추는 것보다 준중형, 소형 등 중저가형 전기차 출시를 앞세워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보조금을 100% 받을 수 있는 전기차 위주로 라인업을 재정비해 시장 성장을 견인하려는 계산이다. 이후 순차적으로 전반적인 전기차 가격 조정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기아 레이EV, 현대자동차 캐스퍼를 앞세워 가격 경쟁력을 높인 전기차 대중화 시대를 앞당기고 있다. 레이EV는 현대차그룹 전기차 중 처음으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을 2000만원대로 낮췄다. 기아는 EV3·EV4·EV5 등 기존보다 가격이 낮은 대중형 전기차를 국내에 출시할 것으로 보인다.
가격 인하 외에도 현대차는 최대 160만원 상당의 '충전 크레디트'로 구매자의 전기차 운영 부담을 줄이는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다.
수입차 업계는 일찌감치 공격적인 가격 인하로 태세를 전환했다.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고 통상 수입차 업체들은 과거엔 가격 할인에 보수적이었다.
신차 구매 정보 플랫폼 겟차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등 주요 수입차 3사는 최대 20%에 가까운 전기차 가격 할인을 실시하고 있다. 전기차 보조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국내 점유율이 가장 높은 현대차그룹 브랜드들이 가격을 낮춘 전기차를 다수 출시할 것이 예고되면서 수입차 업계는 가격 인하 압박을 더 크게 받는 것으로 전해진다.
[박소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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