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만한 영화’는 보러 온다···조금 늦게
한국영화 부진·외화 강세 이어져
입소문 영향력 높아지며 관람 시점 늦어져
2023년 상반기 극장을 찾은 평균 관객 수가 팬데믹 이전의 70% 수준을 회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보다 신중해진 관객들이 조금씩 극장을 찾고 있는 가운데 한국 영화의 부진과 외국 영화의 강세는 지난해에 이어 계속됐다.
극장 체인 CGV는 30일 오전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2023 CGV 영화산업 미디어 포럼’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의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영화시장 관객 수는 5839만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0% 증가했다. 코로나19 유행 전인 2017~2019년 상반기 평균 관객 수인 8330만명의 70% 수준이다.
CGV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의 월간 실사용자(MAU) 지표도 영화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20년 1분기~2022년 1분기 CGV 모바일앱 MAU는 232만명에 불과했으나 코로나19 관련 규제가 완화된 2022년 2분기~2023년 2분기 평균 MAU는 340만명으로 늘었다.
한국 영화와 외화의 엇갈린 운명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계속됐다. 지난 28일 기준 2023년 박스오피스 상위 10위 안에 든 한국 영화는 <범죄도시 3>(1068만명), <밀수>(497만명), <콘크리트 유토피아>(334만명)뿐이다.
연도별 한국 영화 관람객 비중을 보아도 하락세가 뚜렷하다. 2017~2019년 평균 57.4%였던 한국 영화 관람객 비중은 올해 36.0%로 20%포인트 이상 떨어졌다.
극장가 최고 성수기인 여름 시즌(7~8월)으로 범위를 좁혀도 상위 5편의 영화 중 1, 3, 5위가 외화다. 700만명을 모은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 1위에 올랐고 <미션 임파서블 : 데드 레코닝 파트 1>(401만명), <오펜하이머>(232만명)가 각각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여름을 맞아 개봉한 한국 텐트폴 영화 4편 중에서는 이날 500만 관객을 돌파한 <밀수>가 1위를 차지했다. <밀수>는 4편 중 손익분기점(약 400만명)을 넘긴 유일한 작품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뒤를 이어 준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 하정우·주지훈의 만남으로 화제가 됐던 <비공식작전>과 ‘쌍천만’ 김용화 감독 신작으로 기대를 모은 <더 문>은 각각 105만, 51만명이라는 씁쓸한 성적표를 받았다.
다만 <범죄도시 3>은 올 상반기 최고 흥행작에 이름을 올리며 한국 영화의 자존심을 지켰다. <범죄도시 3>은 지난해 2편에 이어 올해도 관객 1000만명을 돌파했다. 흥행 속도도 빨랐다. 개봉 첫날 30만명을 모은 영화는 32일 만에 1000만명을 넘겼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아바타 2>의 42일보다 10일 빠른 속도다.
CGV는 ‘신규 고객’ 비중에 주목했다. CGV에서 <범죄도시 3>을 본 관객 중 신규 및 회복 고객의 비율은 30.5%로 올 상반기 흥행 상위 10개 영화 평균(25.7%)보다 높았다. 조진호 CGV 국내사업본부장은 “코로나19를 거치며 관객들의 영화 선택이 까다로워지고 눈높이도 높아졌지만 ‘볼 만한’ 영화가 상영되면 언제든지 극장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관객들의 영화 소비 패턴은 팬데믹 이전과 크게 달라졌다. CGV는 달라진 경향을 ‘비일상성’ ‘소확잼’ ‘역주행’ ‘서브컬처’ 등 4가지 키워드로 분석했다.
소확잼은 ‘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의 줄임말로, 관객이 확실한 재미가 보장된 작품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먼저 본 사람들의 평가나 입소문을 듣고 관람 여부를 결정하다 보니 극장을 찾는 시점도 전보다 늦어졌다. 2019년 10.8일이던 개봉 후 평균 관람 시점은 최근 1년 사이 15.1일로 4.3일 늦어졌다.
이 현상은 특히 10~20대에서 두드러졌다. 2019년 평균 관람 시점은 10대가 10.6일, 20대가 10.4일로 다른 연령대보다 빨랐으나 현재 각각 16.9일과 15.1일로 4~6일 이상 늦어졌다. 1020이 영화를 먼저 보고 30대 이상 관객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던 과거 흥행 구조와 대조적이다.
높아진 입소문 의존도는 잦은 ‘역주행’도 만들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픽사 애니메이션 <엘리멘탈>이다. <엘리멘탈>은 개봉 3~4주차에 1~2주차보다 많은 관객 유입률을 보였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 역시 개봉 3주차 관람객 비중이 12.3%로 가장 높다. 개봉 직후 가장 많은 관객이 들고 이후 8주차까지 차차 떨어진 과거 패턴과 확연히 다르다.
서브 컬처(하위문화)는 관객을 극장으로 부르는 주요 요인이 됐다. 단단한 팬덤을 보유한 콘텐츠들은 ‘n차 관람’을 유발했다.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n차 관람률은 28.6%로 올 상반기 개봉작 중 가장 높았다. 2위는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17.9%였다. 2019년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 <겨울왕국 2> 등 주류 콘텐츠가 높은 n차 관람률을 기록했다. CGV 측은 “과거 대작 영화 중심으로 n차 관람이 이어졌지만, 최근에는 중형급 영화와 서브 컬처로 여겨지는 영화로 저변이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특별관 등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비일상적’ 경험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최근 1년간 CGV의 특별관 티켓 비중은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8.7%에서 13.2%로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의 비중도 2019년 13.4%에서 21.0%로 대폭 상승했다. CGV는 4DX, SX 등 특별관을 확대하고 CGV 단독 콘텐츠는 다양화하는 등 관객의 변화에 발맞추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조 국내사업본부장은 “새로운 영화관람 트렌드를 바탕으로 CGV 만의 강점인 ‘온리 콘텐츠’와 특별관 확대, 차별화된 경험 마케팅 등 노력을 통해 고객의 극장 방문을 이끌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서 CGV는 최근 수 년간 인상된 티켓 가격과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조 국내사업본부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은 2016년 수준인 1만~1만1000원으로 현실과 괴리가 있다. 가격 저항이 있는 고객 분들에 대해서는 각종 프로모션을 튱해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장 방문자 회복세가 더딘 것에 대해서도 티켓 가격 외 교통비, 식대 등의 인상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줬다고 봤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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