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칼럼] 역사의 정치화
부친은 명성황후 시해
꼬일대로 꼬인 근현대사다
정치권, 역사논쟁 개입보다
원로와 학계에 맡기고
민생과 3대 개혁 집중하자
일본 경영인 중 삼성 이병철 회장에 해당하는 이나모리 가즈오 전 교세라 회장. 그의 장인은 한국 농업혁명의 주역인 우장춘 박사다. 1950년 3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명성을 익히 들은 우장춘을 한국으로 초청한다.
우장춘은 한국 이주 대가로 받은 돈을 한국 농업을 위해 사용할 종자와 실험기구를 사는 데 다 썼다. 한국 종자 개량을 위해 헌신하다 결국 병에 걸려 국내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우장춘의 아버지는 을미사변 때 명성황후를 시해한 우범선. 우범선은 당시 훈련대 대장으로 근무한 현역 군인이었다. 일본 낭인들에게 민비 얼굴을 확인해준다. 시해 후 일본에 건너가 일본 여성과 결혼해 우장춘을 낳는다. 우장춘은 부친의 과거 행적을 알고 난 뒤 한국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 한국에 뼈를 묻겠다는 각오로 한국으로 건너온 것도 그런 이유다.
우장춘의 한국 농업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정부 훈장을 주자는 제안이 나왔다. 그러나 부친의 친일 행적이 정치권 논쟁으로 붙으면서 훈장 수여가 지체됐다. 결국 그가 사망하기 사흘 전 훈장이 수여됐다. 우장춘의 가족사만 보더라도 한국 근현대사는 꼬일 대로 꼬인 슬픈 역사다. 그런 역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장춘을 한국으로 초청한 이승만 당시 대통령. 이승만은 해방 이후 좌우로 분열된 나라를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지킨 공로를 인정받고 있어 '건국의 아버지'로 불린다. 종신집권을 시도한 '사사오입 개헌'이나 4·19혁명을 일으킨 '3·15 부정선거'라는 오점도 남겼다. 건국에 이어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한 점을 인정받아 이승만 기념관을 지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이 국가 정체성을 찾기 위한 과정이란 점에서 다행이다. 우리는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 특히 동북아 경제와 안보 협력 구도는 한·미·일과 북·중·러로 확연히 갈라지고 있다. 전후 냉전시대 정도는 아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세력 간 대립 구도다.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그간 산업화와 민주화 성과를 송두리째 반대 진영에 넘겨줄 수도 있다는 걱정이 적지 않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홍범도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찔러 승리한 공은 크지만, 그 후 행적을 문제 삼은 것이다. 소련은 1921년 극동지역 영토에서 활동하는 무장 독립군을 소련군으로 편입할 의도로 독립군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장해제에 반대하는 독립군이 큰 피해를 당했다. 이른바 자유시 참변이다. 이 사건에서 홍범도의 행적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가장 큰 쟁점은 홍범도의 자유시 참변 책임 여부와 소련 공산당에 가입해 공산주의자로서 어떻게 활동했는지 여부다. 국방부 발표와 학계 주장을 듣다보면 우장춘 가족사 이상으로 꼬인 역사다.
그사이 정치권도 논쟁에 참전하면서 '역사의 정치화'가 진행 중이다. 6·25전쟁에서 큰 업적을 세워 칭송받고 있는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 논란마저 소환하고 있다.
모든 사람에게 공과가 있지만 독립이나 자유민주주의에 기여한 인물들에 대한 보훈은 지나칠 정도로 충분해야 한다. 미국이 세계 최강국인 비결 중 하나가 바로 보훈이다. 그러나 걱정도 크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보훈 대상자가 변한다는 점이다. 존경하던 인물이 한순간에 추락하고, 폄훼된 인물이 갑자기 존경할 인물로 부상한다. 남는 건 국민 분열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선 역사 속 인물 평가 기준과 국민적 합의점을 정해놓는 게 시급하다. 이제 논란은 국가원로와 학계에 맡겨두자. 그러면 정치권은 민생과 3대 개혁에 더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김명수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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