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업무 1년, 공황 왔다"… 급기야 세무서에 방검복·삼단봉 등장
민원인을 상대하는 부서에서 근무하는 30대 공무원 A씨는 지난 3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다. 업무 중 느꼈던 폭력적 충동 때문이다. A씨는 "민원인을 뒤따라가 칼로 찌르고 싶다는 생각에 휩싸여 앉은 자리에서도 몸을 주체하지 못한 적이 있었다"고 실토했다. 그는 "현재 부서에서 일한 지 만 1년이 조금 넘었는데 병원에서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격주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악성 민원인의 폭언과 폭행으로 일선 공무원의 몸과 마음이 멍들고 있다. 국민주권 시대를 맞아 민원 처리 과정에서 대국민 서비스 기능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지만 이를 악용한 악성 민원이나 막무가내 민원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30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행정기관 중 민원 발생이 가장 많았던 상위 3개 기관은 경찰청(136만8713건)과 국토교통부(69만6889건), 고용노동부(12만5661건)다. 분야별로는 경찰 분야가 49.2%로 가장 많았고, 교통(10.8%)과 도로(7.4%), 행정안전(6.3%), 환경(4.3%), 주택건축(3.5%)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지난해 '국민신문고'와 '110 정부민원안내콜센터'에 접수된 전체 민원 1238만1209건 중 세부 정보가 확인된 1160만9238건을 분석한 결과다.
공무원들은 일선 부처로 직접 들어오는 민원을 포함하면 민원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등 부처별 정책 변화가 발생하면 그와 관련된 민원이 폭증한다는 설명이다.
다만 새로운 업무가 발생하는데도 인력 증원은 없어 문제가 심화한다고 진단했다. 고용부 소속 근로감독관 B씨는 "2019년 직장내괴롭힘금지법,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업무 발생량과 난도가 껑충 뛰었지만 인력은 태부족하다"며 "현재 근로감독관 1명당 매년 200건이 넘는 사건을 맡고 있다. 채용을 늘려도 숙련도를 익히기까지 드는 시간을 고려한다면 조직 개편 등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층간소음이나 주차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는 민원이 발생하는 원인 자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원 제기가 반복되면서 결국 악성화하는 굴레가 형성된다는 설명이다. 국토부 소속 공무원 C씨는 "기초자치단체 등 마을 단위로 내려갈수록 이 같은 경향이 심하다"며 "재산권 문제까지 겹치면 소송에 유리한 증거를 얻기 위해 민원 제기를 반복한다. 자신의 뜻에 안 맞으면 공무원을 고소하는 사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자의 날'이었던 지난 5월 1일 민원인에게 지속적으로 항의를 받았던 30대 근로감독관 D씨가 충남 아산의 한 공영주차장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대표적이다. D씨는 그를 포함해 담당 과장과 지청장 등 상급자까지 함께 민원인에게 직무유기 혐의로 검찰에 고발을 당하면서 심리적 압박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악성 민원에 따른 공무원 피해가 반복되자 부처마다 직원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나섰다. 고용부는 D씨 사건을 계기로 지난 6일 중앙부처 최초로 본부에 '특별민원 직원보호반'을 발족했다. 보호반은 특별민원 피해를 입은 직원에게 일대일 상담 등을 제공하고 맞춤형 보호조치를 강구하는 역할을 맡았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청주지법에서 실무관이 민원인에게 폭행당한 사건과 관련해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있다. 국세청은 악성 민원을 차단하기 위해 주요 세무서 민원봉사실에 CCTV를 추가로 설치해 사각지대를 최소화하고, 전담 경비인력을 배치하는 등 종합대책을 마련했다. 아울러 방호인력에게는 방검조끼·호신용 스프레이 외에 삼단봉을 추가 지급해 비상 상황에 대처하도록 했다.
현장 공무원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희롱과 욕설 등 폭언은 물론이고 물리적 폭행이 발생할 가능성도 작지 않은 만큼 악성 민원에 대한 엄벌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또 민원 서비스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 개편 등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앙 경제부처 공무원 E씨는 "폭행 등 확실한 위법행위에 대해서만큼은 강경 대응을 원칙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 임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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