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불신·주권의식 과잉이 마구잡이 분노로"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2023. 8. 30.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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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무가내 민원' 전문가 진단
'참으면 바보' 사회 분위기에
'을'인 사람도 민원제기땐 '갑'
체계적 대응 매뉴얼 만들고
법적조치 등 처벌 강화해야
지난해 정부 부처를 대상으로 한 민원이 1300만건에 달할 정도로 폭증했다. 30일 고용노동부 서울서부고용센터를 찾은 민원인들이 상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이충우 기자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악성 민원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상을 놓고 전문가들은 공공 부문에 대한 만성적 불신과 함께 국민주권 의식이 지나치게 강조됐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아울러 민원을 구실로 공직사회에 마구잡이식 분노를 표출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악성 민원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는 불법행위라는 점을 인지시키면서 실질적 처벌과 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는 개인 간 신뢰는 높지만 제도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 대한 신뢰는 낮다"며 "빈약한 사회자본은 행정 결정에 대한 국민 수용도를 떨어뜨리고 '순응하지 않는 문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회 전반이 갈등 해결의 수단으로 대화보다는 고소·고발 등 사법 조치를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악성 민원이 발현하는 경향도 그 과정에서 악화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민주주의 발전으로 자기주장을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회가 되면서 보다 쉽게 민원을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된 점을 무시할 수 없다"며 "다만 정당한 공무 집행이라는 원칙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시스템상에서 기준을 명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상황에서 을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 민원을 제기하는 순간 갑으로 바뀌어 마구잡이로 분노를 분출하고 있다"며 "'참는 사람이 바보'라는 사회적 분위기도 이 같은 병적 현상을 심화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악성 민원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악성 민원인에 대한 조치가 선제적이면서도 강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지난 4월 시행된 개정 민원처리법 시행령이 안전장비 설치와 안전요원 배치 등 의무적 조치 사항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민원인 폭언·폭행에 대한 법적 대응 업무를 총괄하는 전담 부서를 의무적으로 지정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았지만 현실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산업안전보건법 조항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악성 민원인 중 일부는 제어가 가능하다"며 "본인 행위가 정당한 절차를 넘어서고 있음을 깨닫게 해주는 대응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악성 민원 중에서도 폭력 등 범법행위에 가까운 행위는 구분해 엄정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도수관 울산대 정책대학원 부원장은 "폭언·폭력, 난동 등과 같은 범법행위에 해당하는 악성 민원에는 법적 조치 등 확실한 대응이 필요하다"며 "악성 민원을 했다가는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강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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