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하나되려고…'풀 꽂은 사람' 화폭에
독일 유학후 농촌에 정착해
'예술과 마을'프로젝트 진행
'이끼를 들어올리는 사람' 등
행위예술 그린 유화 등 전시
시작은 행위예술이었다. 독일에서 귀국한 임동식(78·사진)은 1991년 여름 금강에서의 국제자연미술전(현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에서 '이끼'를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생명의 시작과도 같은 원초적 식물을 통해 본인이 자연과 하나 되는 모습이었다. 2년 후 당시 사진을 보며 붓을 들고 유화 물감을 칠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장면으론 충분치 않았다. 그림에서 옷을 제거해도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본인을 그린 한 폭 그림 양옆에 거대한 원시 고목을 품은 숲을 더해 원초적 자연을 확장했다. 이 그림은 결국 2020년에야 마무리됐다. 바로 그의 대표작 '이끼를 들어 올리는 사람'(1993, 2004, 2020)이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9월 1일부터 개막하는 대규모 개인전의 제목이기도 한 이 그림은 그의 예술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런 변을 내놓는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세월 가는 줄 몰라. 그림은 동영상 정지화면 같은데 작가는 변화무쌍 생각이 요동치지. 흡족하다가도 담배 피우고 오면 별로야. 그림 그리는 것은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거야."
2020년 박수근미술상을 수상한 작가는 야투(야외현장미술연구회) 활동 등 농촌의 삶과 자연이 회화로 이어지는 작품 세계를 이번 전시에서 유화 40여 점과 드로잉 100점으로 펼쳤다.
자연예술가로서의 인생은 서른 즈음 첫 야외작업에서 잉태됐다. 1975년 안면도 꽃지해변에서 열린 한국미술청년작가회의 '제1회 야외작품을 위한 캠핑'에서 '어느 소년의 꿈을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넓은 바다에 공룡알이 나뒹구는 태초의 자연을 상상하며 길이 70㎝, 지름 40㎝의 알 모양 석고 조각 30여 개를 배치하고 작가 자신은 백사장에서 빗줄기 사이로 두 팔을 뻗어 온몸으로 자연과 호흡했다. 이 순간 작가는 태초의 기운 속에서 해방과 자유로움을 느끼고 자연미술을 계속하게 됐단다.
홍익대 미대 회화과를 졸업한 후 낯선 독일 땅 국립함부르크미술대학(HFBK) 자유미술학과에서 수학하며 다양한 예술실험으로 10년을 보냈다. 전시장 한벽에 가득 찬 드로잉 100점을 통해 각종 설치 아이디어와 콜라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귀국 후 20대 때 꽂힌 원초적 자연을 좇아서 고향(충남 연기군) 인근 공주 원골에 정착한 그는 1993년부터 '예술과 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과 함께 호박을 심는 등 농촌 일상을 예술행위로 확장했다. 현장을 지키는 농부들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예술가라며 화폭에 담았다.
"퍼포먼스와 회화가 다른 게 아니다. 똑같은 것을 두 번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작가는 일시적인 퍼포먼스를 회화로 재현하는, 그것도 꾸준히 개작하면서 완성하는 과정마저 퍼포먼스의 연장에 뒀다고 해석된다. 다만 그림 속에서는 밤하늘에 흩날리는 별빛이나 흩날리는 빗물 등 작가의 특기인 세필화 기법으로 마음껏 환상적으로 각색하니 매력적이다.
평창동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펼쳐지는 전시는 3관에서 흥미로운 공간과 조우한다. 작가의 공주 교동 작업실을 실제 크기(가로 3m, 세로 5m)로 구현하고 작업들을 배치했다. 세밀한 붓질로 완성해 가는 작품의 원형 같은 소품들을 보면 삶이 예술인 작가 작업이 친근하게 다가온다. 전시는 10월 1일까지.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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