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불안한데 손님상에 어찌 내놓나”…‘잘나가던’ 제주 횟집 포기한 사연
오염수 방류에 흑돼지로 업종 변경
“막막해도 마음 편히 당당하게 장사”
주변 가게들도 속속 간판 바꿔달자
물건 대주던 어민·해녀들도 울상
2018년 고향인 제주도로 돌아온 김영구씨(55)는 섬 서쪽 한림해안을 따라 이어진 길 한편에 횟집을 차렸다. 30평 남짓한 가게는 3년째부터 자리를 잡아 ‘자연산회 맛집’으로 거듭났다. 5년차부터 가게 밖으로 손님들이 줄 섰고, 연매출은 5억원이 넘었다. 그런 횟집을 김씨는 지난 5월 접었다. 대신 고깃집 간판을 달았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본격적으로 예고되던 시기였다. “솔직히 저도 불안한데 손님한테 돈 내고 회 사먹으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나요. 설득력이 없잖아요.”
김씨의 고민은 지난해 여름부터 시작됐다. 지난해 7월 중순 일본이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발생하는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할 것이란 소식이 들려왔다. ‘설마 진짜 방류할까’ 의심은 시간이 지날수록 ‘방류가 시작되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으로 바뀌었다.
김씨는 손님이 안전한지 물어오면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고민이 되더라고 했다. “방사성 물질이 먹이사슬에 누적되면 분명 위험할 것 같은데 제가 직접 방사선 검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양심에 찔려서 손님한테 할 말이 없어진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잘 나가던 횟집은 지난 4월 문을 닫았다. 김씨는 자연산 활어와 물회, 갈치조림을 뒤로 하고 흑돼지 오겹살 구이와 두루치기 조리방법을 배웠다. 새로운 거래처를 찾고 한 달간 가게 인테리어를 바꿨다. 그는 다시 ‘맨땅에 헤딩’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단골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예약 전화로 ‘오늘 횟감 뭐 있냐’고 묻거나 직접 왔다가 고깃집으로 바뀐 것을 보고 놀라는 분들이 있어요. 그럴 때 업종 변경이 정말 큰일이었구나 느끼죠.” 잘 되는 가게를 바꾼다니 ‘제정신이냐’ 묻는 지인들도 있었다. 김씨는 “후회는 없다”고 했다. “불안감이 없으니까 음식을 제공할 때 제 마음이 편해요. 당당하게 팔 수 있잖아요.”
오염수 방류는 제주 바다에 기대어 살던 많은 이들의 삶을 바꿔놓았다. 해안도로를 중심으로 즐비하던 횟집들이 고깃집으로 바뀌고 있다. 김씨 가게에서 200m 떨어진 100평 규모 횟집도 업종을 변경하기 위해 한 달째 공사 중이다. 김씨에게 생선을 대주던 어민과 해녀들은 수산물 소비가 줄자 판매처를 찾지 못해 울상이다. “홍해삼 1㎏을 2만원에 팔던 70대 해녀분들이 우리 가게마저 문을 닫으니까 가격을 깎고서라도 ‘제발 사가라’고 부탁하세요. 이분들 밥줄이 끊길까봐 걱정이에요.” 김씨는 물질을 시작해야 하는 9월이 다가와도 조용하기만 한 해녀들을 보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보호책이 없다고 느끼는 어민들 사이에선 무기력함이 만연하다. “지금 (생계가) 줄줄이 무너질 상황이니까요. 정부가 안전하다고 말만 하는 데 안전한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아는 거잖아요.” 김씨는 어민들 삶의 전부인 제주 바다가 언제 문제될지 모를 오염수 누적으로 취약해졌다고 했다. 당장의 우려가 잠잠해지더라도 수산물 기피 현상은 언제든 다시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소비가 다시 살아났다가도 항상 (우려가) 나타날 것이란 생각이 들어요. 바다에서 잡힌 참치에서 뭐라도 나왔다고 하면 이런 문제가 쌓이겠죠.”
김씨는 이러한 걱정을 괴담으로 치부하는 이들에게 환경문제를 신중히 볼 것을 당부했다. “환경은 당장 우리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길게 봐야죠. 제주 바다는 정말 우리 삶 자체예요. 지금도 해수 온도 때문에 잡히는 것들이 달라져서 어민들의 고민이 큰데 오염수 문제까지 겹치면 어떻게 되려나요.”
김송이 기자 songy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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