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괴물입니까? '무빙'과 주호민 [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
[김지현 기자의 게슈탈트]는 대중문화 콘텐츠와 이슈를 기자의 주관으로 분석한 코너입니다. 나무와 숲, 현상과 본질을 알아차릴 수 있는 혜안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기자는 늦은 나이에 첫 아이를 출산했다. 9개월 이른둥이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건 두려움을 동반했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웃어주지 않거나 눈 맞춤이 적은 날이면 어김없이 혼자만의 의심에 빠졌다. 유튜브에 ‘자페 스펙트럼’을 검색하고, 자폐 아동과 비슷한 전조 행동을 보이면 불안이 엄습했다. 마음이 순식간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경험. 29개월, 아이는 평범하게 자라는 중이다. 잠시 스쳐간 감정을 털어놓는 건 교만한 일이지만 한 아이의 엄마로서 발달 장애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공감하고 싶은 의지의 표현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디즈니플러스 ‘무빙’(강풀 작가, 박인제 박윤서 연출)은 초능력을 소재로 한 시리즈다. 각자 다른 초인적 능력을 지닌 캐릭터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끈다. 이 작품의 특별한 지점은 주인공들의 애처로움에 있다. 초능력을 가졌지만 (겉과 속 모두) 평범하고, 영웅의 고독한 고민도 없다. 주인공들은 그저 제 선천적 능력으로 인해 발생된 사연들을 품고 있을 뿐이다. 그 능력은 내 아이, 2세대로 이어져 또 다른 서사를 낳는다. 누군가는 하늘을 날고, 온 몸에 전기가 흐르며 무한한 복원 능력의 신체를 지녔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은 힘이지만, 판타지의 요소를 제거하면 어떨까. '특별한 힘을 타고난 자'가 아닌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이'라는 존재적 고민만 남는다. ‘무빙’은 후자의 이야기에 가깝다.
남들과 다른 존재인 이미현(한효주 역), 김두식(조인성 역)은 남들과 다른 아이인 김봉석(이정하 역)을 낳는다. ‘다름’은 가족을 이어주는 끈인 동시에 세상과의 연을 끊어내는 매서운 칼날이다. 미현은 ‘다름’이 삶에 가져오는 파급력을 누구 보다 잘 안다. 다름이 세상에 받아들여 질 때 그들은 ‘블랙 요원’으로 불리지만, 거부될 때는 공공의 질서를 위협하는 ‘괴물’로 분류된다. 미현은 봉석이 걸을 수 있는 나이가 돼도 품에 안아야 안심하고, 10대가 된 후에는 능력이 드러날까 두려워 발에 모래주머니를 채운다. 봉석은 여자친구 장희수(고윤정)을 만나 각성하지만, 그 전엔 다름을 감추는 걸 당연하게 여긴다. 부모든 자녀든 다름을 인정하는 여정이 험난하다.
봉석의 모친 미현과 희수의 부친 장주원(류승룡 역)의 공통 분모는 ‘내 자녀에게 다름을 물려준 부모’라는 점이다. 미현, 주원이 남다른 모성애와 부성애를 지닌 건 자녀에게 다름을 준 이가 자신이라는 책임감에서 비롯된다. 내 다름을 닮았다는 죄의식을 동반한 책임감은 두 사람을 예민하게 만든다. 이른 시간에도 봉석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미현은 불안에 떨고, 딸 희수가 자신의 능력을 잇게 된 사실을 알 주원의 표정은 안도와 슬픔으로 교차된다.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다름을 들킨다는 건 아픔을 경험한다는 의미기에 미현과 주원은 자녀를 평범하게 키우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이들은 다름을 감추지 못하고 자신을 드러낸다. 1세대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아이를 품은 엄마, 미현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 장면이 있다. 그는 돈까스를 먹고 기분이 좋아진 어린 봉석이 몸을 띄우자,식당 의자를 발로 누르며 "엄마 힘들어"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린다. 수없이 절제되고 삭힌 미현의 아픔은 봉석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대비되며 뚜렷하게 다가온다. 아이러니한 것은 미현 자신도 다름을 가진 존재이면서, 제 아이의 다름을 버거워하고 그 이유로 더욱 애착을 느끼는 감정이다. 곱씹어보면 그 만큼 이 사회에서 ‘남들과 다른 존재’를 받아들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무빙’ 초반부에 등장한 미현, 봉석 모자의 에피소드를 보자니 육아 초반에 느낀 경험들과 주호민 웹툰 작가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연달아 떠올랐다. 주호민 작가는 한 순간에 천재 작가에서 괴물이 됐다. 발달 장애를 가진 큰 아들과 함께 한 시간들을 아내와 함께 그림으로 풀어가며 호응을 얻었던 그가 교권을 위협하고, 장애 아동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는 공공의 악으로 전락했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 내용은 일부에 불과하다. 녹취를 문자화한 텍스트로 학대 여부를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주호민 부부는 큰 아이가 정서적 학대를 받았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여론 재판에서는 주호민 부부의 완패지만, 법적 판단 여부는 법원의 손에 달렸다. A씨의 주장대로 녹취에 등장한 ‘너 고약하다’라는 발언은 받아쓰기 중 등장한 것일 수 있고, ‘나 너 싫어’는 그의 혼잣말일 수도 있다. 역으로 주호민 부부의 주장대로 ‘나 너 싫어’가 아이를 향한 것이고 이 말이 반복됐다면 분명 문제의 소지가 있다.
양가적으로 접근하는 건 곧 가려질 법적 판단에 대한 존중이지만, 정서적 학대가 그 만큼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탓이기도 하다. 주호민 부부를 향한 비판적 여론은 A씨의 발언이 '예상 보다 큰 타격감이 없다'는데 있었다. 그러나 현장 안에 녹아든 분위기와 A씨의 뉘앙스는 오직 당사자들만 안다. 뉘앙스 역시 정서적 학대와 마찬가지로 받아들이는 기준이 달라 판단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오는 10월 30일 공판에서 파일이 모두 재생된다고 하니 추가적 판단는 그 이후로 미루는 것이 맞겠다.
고소를 택한 부부의 결심이 지나치게 단호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아들의 가방에 녹음기를 넣은 행위는 교권 침해 요소가 있고, 고소와 동시에 A씨가 직위 해제되는 사실을 인지했으면서도 같은 특수 학급 아동의 학부모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은 것도 아쉽다. 금일(8월 30일)주호민 부부가 A씨에게 발달 장애 아동과 소통하는 법이 담긴 링크를 보낸 일화가 사실이라면 이는 월권을 넘어 결례에 속한다. 그러나 항간의 보도처럼 주호민 부부가 A씨에게 ‘문자 갑질’했다는 해석은 과도하다. 문자 발송 시간과 내용 등은 문제의 소지가 있지만, 주호민 작가가 아들의 교육과 관련해 A씨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로도 볼 수 있다.
시시비비를 떠나 주호민 가족을 둘러싼 여론은 도를 지나쳐 ‘조리돌림’이 되는 분위기다. 지난해 6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주호민 부부의 고소로 A씨가 직위 해제 되자, 특수 학급이 부족하다며 증설을 요구했다. 당시 해당 학교에 다니는 장애 아동은 주호민 부부의 자녀를 포함해 총 8명. 학교 측이 특수 학급 증설을 고려하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일부 비장애인 학부모들이 증설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8명의 학생을 배려하기 위해 비장애인 학생 187명이 피해를 본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학교 정문 앞에서 증설을 반대하는 서명까지 벌였다.
특수 학급 증설 계획은 주호민 아들이 전학을 가는 것으로 일단락 됐다. 몇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이 해프닝은 오로지 주호민 부부의 고소로 벌어진 일일까. 또, 8명의 학생 때문에 187명의 학생들이 피해를 본다는 비장애인 학부모들의 주장은 정당한 권리에 속할까. 특수 학급 증설은 장애 아동 재학생 증가를 의미한다. 혹 이들은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장애 아동이 늘어나는 것을 우려하고 그로 인해 타 학교 보다 학습이 정체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던 게 아닐까.
'무빙'의 2세대 초능력자들은 정원고등학교에 다닌다. 학교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법은 이들을 초능력이 없는 학생들과 한 학급에 무작위로 섞는 것이다. 비밀을 아는 교사들은 2세들의 초능력이 드러나지 않도록 지켜 본다. 봉석의 모래주머니 무게도 점점 늘어난다. 정원고등학교의 비밀이 세간에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수의 2세들은 평범한 학생들과 그의 부모로부터 선을 넘지 말라는 요구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187명의 비장애인 학생들과 7명의 장애 아동 학생들은 서명을 벌이는 어른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국경을 넘나들며 하늘을 나는 두식은 안기부의 최정예 요원이었다. 그러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사상범이 된다. 다름은 표적으로 삼기 좋은 대상이다. 지적할 것이 필요한데 다른 게 한 눈에 보이니 편하다. 그가 가진 다름에 손가락질하면 그만, 딱히 비판의 근거가 필요 없다. 다름은 불안을, 불안은 혐오를 만든다.
사건이 불거진 후 특수 교사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때로 교실 바닥에 대변을 보거나, 손에 멍이 들 정도로 다루기 힘든 장애 아동을 돌보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 장애 아동을 교육하는 업을 가진 특수 교사들의 노고를 뒤늦게 생각하며 존경의 마음을 품게 됐다. 그러나 주호민 가족이 A씨를 고소했다는 이유로 학국 특수 교사들의 교권을 짓밟았다고 단정하는 건 섣부르다. 이들 가족을 벼랑 끝으로 몰아가는 일이 과연 특수 교사들의 교권을 살리는 것인지 의문이다.
주호민 부부는 예민했고, 제 아이의 상처에만 신경을 썼을지 모른다. 격한 감정으로 사건에 접근한 느낌이다. 동시에 발달 장애 아동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에 대해 생각한다. 왜 그들은 아이를 대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예민하게 됐을까. 왜 특정 권리를 주장하게 됐을까. 사건의 실체 보다 여론에 쏠린 힘이 강해진 현재,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이 의문들에 대한 답을 미현의 입을 빌어 말하고자 한다.
"사람의 진짜 능력은 공감 능력이야.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그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야. 다른 사람 마음을 아프게 하는 능력이, 그게 무슨 영웅이야. 마치 네가 더 잘났다는 듯이 뽐내며 보여줬잖아. 다른 사람 마음을 헤아리지도 못하는 거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초능력을 자랑하다 친구를 다치게 한 봉석에게 미현이 한 말이다. 주호민 부부와 특수 교사 A씨, 사건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한 말 처럼 들린다. 지금 모두에게 필요한 것, '다름'을 가진 이들을 '공감'해보려는 시도다.
[티브이데일리 김지현 기자 news@tvdaily.co.kr]
[ Copyright ⓒ * 세계속에 新한류를 * 연예전문 온라인미디어 티브이데일리 (www.tvdaily.co.kr)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Copyright © 티브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우주소녀 출신 성소, 양조위와 불륜·출산설에 법적대응 [종합]
- 서장훈이 밝힌 2조 자산설 ' up or down'
- [단독] 현영 속인 A씨 미끼는 유명 연예인들 '선물의 유혹'
- '경이로운 소문2' 조병규→유준상, 카운터즈 6人 완전체
- "소속사 여 대표 술시중, 허벅지 만지며 추행까지"…오메가엑스 작심 폭로 [TD현장]
- 민희진, 좌절된 어도어 대표직 복귀 '法 각하 이어 이사회 부결' [이슈&톡]
- 아일릿, 앨범 누적 판매량 100만장 돌파 "데뷔 7개월 만의 성과"
- '구탱이형' 故김주혁, 오늘(30일) 사망 7주기
- ‘전, 란’ 강동원은 왜 어색한 사극톤을 고집할까 [인터뷰]
- ‘대표 복귀 불발’ 민희진 측 “주주간계약 효력, 유효해” [공식입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