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멜랑콜리'할 것 같은데 … 상큼한 '반전의 맛'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의 와인 이야기]
뉴질랜드를 상징하는 와인은 화이트 와인 '소비뇽 블랑'입니다. 클라우디 베이는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을 대표하는 와인 브랜드입니다.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이 전 세계 와인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가 채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 레스토랑에선 화이트 와인으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 특히 클라우디 베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요.
뉴질랜드는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소비뇽 블랑을 중심으로 와인 산업을 키웠고, 세계 무대에서 뉴질랜드 와인이 자리 잡자 차세대 스타들도 하나둘씩 발굴해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주한 뉴질랜드 상공회의소가 지난 5월 '뉴질랜드 와인 페스티벌'을 열었고 던 베넷(Dawn Bennet) 주한 뉴질랜드대사도 열심히 뉴질랜드 와인 홍보에 나서고 있습니다. 뉴질랜드 와인생산자협회가 WSA와인아카데미에서 진행한 '뉴질랜드 와인 교육프로그램' 내용을 중심으로 이번 '와인이야기'에선 뉴질랜드 와인에 대해 다뤄봅니다.
처음 시작한 '샤르도네'는 폭망
뉴질랜드가 처음부터 와인용 포도 품종으로 '소비뇽 블랑'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프랑스 부르고뉴의 샤르도네로 만든 '화이트 버건디'가 유명한 것처럼 뉴질랜드도 샤르도네로 시작합니다. 뉴질랜드의 대표 와인 생산자 몬타나가 뉴질랜드 북섬의 '기즈번'에서 1960년대부터 샤르도네 포도 품종으로 와인을 생산합니다.
뉴질랜드는 북섬과 남섬으로 나뉘어 있는데 남반구에 있어 적도에 가까운 북섬의 기후가 상대적으로 따듯합니다. 더운 지역에서 생산되는 샤르도네는 젖산 발효를 통해 버터 또는 치즈 풍미가 풍부해야 하는데 양조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뉴질랜드에서는 맑고 깨끗한 샤르도네가 생산됐습니다. 결국 소비자로부터 외면을 받게 됩니다.
반면 소비뇽 블랑은 오크 숙성을 하지 않고 깔끔한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서 숙성시킵니다. 뉴질랜드는 낙농업이 발달해 있어 스테인리스 스틸 통을 잘 다룰 줄 알았습니다. 생산지도 좀 더 서늘한 기후의 남섬으로 내려갑니다.
남섬 말버러서 '소비뇽 블랑' 성공
뉴질랜드 최대 와인 산지는 남섬의 '말버러'입니다. 이 지역 와인 생산의 81%가 소비뇽 블랑입니다. 산도가 높고 강렬한 아로마로 유명합니다. 1973년 말버러에 몬타나 와이너리가 설립되면서 소비뇽 블랑을 품종으로 하는 와인 산지가 형성됩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장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습니다. 기즈번에서 샤르도네로 쓴맛을 본 몬타나가 말버러에서 소비뇽 블랑으로도 크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985년 말버러에 설립된 클라우디 베이가 소비뇽 블랑을 내놓으면서 판도가 바뀝니다. 세계 시장에서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에 열광하기 시작하는데요. 사실 지역과 품종이 같으니 맛에 큰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몬타나가 성공하지 못한 것을 클라우디 베이가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요.
박수진 WSA아카데미 원장의 해석이 흥미롭습니다. '라벨'의 힘이라고 합니다. 클라우디 베이도 몬타나처럼 뉴질랜드의 자연, '산'을 라벨에 담았습니다. 그런데 클라우디 베이의 산은 수묵담채화 같습니다. 멜랑콜리한 우울한 감성입니다. 자칫 부정적인 감성을 실은 라벨로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박 원장은 "소비자들이 마음이 우울해 와인을 한잔 마시러 갔는데, 라벨도 우울하고 맛도 우울했으면 망했을 거다. 하지만 클라우디 베이는 우울함을 한 방에 날릴 수 있는 반전의 상큼한 맛이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
클라우디 베이는 1770년 제임스 후크 선장이 뉴질랜드를 탐험하며 붙인 해안의 이름입니다. 이름부터가 안개가 잔뜩 끼어 클라우디(Cloudy)합니다. 안개가 잔뜩 낀 듯한 클라우디 베이의 담담한 라벨과 뉴질랜드 말버러 소비뇽 블랑의 산도 높은 화이트 와인이 대비되며 소비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는 것이죠. 클라우디 베이는 '테 코코(Te KoKo)'라는 소비뇽 블랑도 생산하는 데 스테인리스 스틸 통에 숙성시킨 일반 소비뇽 블랑과 다르게 오크 숙성을 시켰다고 합니다.
테 코코 2019년 소비뇽 블랑은 특유의 복숭아향과 함께 프렌치 오크 숙성이 가져온 바닐라향이 섬세하게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테 코코는 마오리(뉴질랜드 원주민) 언어로 '클라우디 베이' 지역을 부르는 '테 코코 오 쿠페(Te Koko-o-Kupe)'에서 따온 것이라고 합니다. 클라우디 베이 지명 자체가 2014년 이후 테 코코 오 쿠페로 바뀝니다. 프랑스 샴페인 뵈브 클리코(Veuve Clicquot)가 2003년 클라우디 베이를 인수했고,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가 뵈브 클리코를 인수하면서 클라우디 베이도 LVMH 소속 와인이 됐습니다.
센트럴 오타고 레드와인
뉴질랜드에서는 화이트 와인만 생산되는 게 아닙니다. 뉴질랜드 남섬에서도 최남단 내륙에 있는 센트럴 오타고에선 피노 누아가 생산됩니다. 서늘하고 경사면도 있어 프랑스 부르고뉴와 기후 조건이 비슷하다고 합니다. 와인 평론가들의 극찬이 이어집니다. 와인 평론가 잰시스 로빈슨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피노의 성배(聖杯·grail)를 찾으러 다녔는데, 바로 여기서 찾았다"고 평가했습니다.
뉴질랜드 와인 페스티벌에 출품된 와인 중 러브블럭 피노 누아는 센트럴 오타고의 벤디고 루프로드에 있는 가족 소유의 사유지에서 생산됩니다. 러브블럭 센트럴 오타고 피노 누아 2018년 빈티지는 2019년 와인 스펙테이터 톱100에서 46위에 선정되면서 명성을 얻었습니다.
클라우디 베이도 센트럴 오타고에서 테 와이(Te Wahi)란 이름으로 피노 누아를 생산합니다. 2018년 빈티지를 마셔봤는데 부드럽고 탄탄한 구조감과 롱 피니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펠튼 로드(Felton road) 피노 누아 2020은 흙향, 풀향이 뒤섞여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박 원장이 젖은 낙엽, 흙냄새와 함께 삼나무향, 정향도 느껴진다고 알려줬습니다. 테 와이가 뉴질랜드 피노 누아에 가깝다면, 펠튼 로드 피노 누아는 좀 더 부르고뉴 피노 누아에서 기대하는 풍미를 갖추고 있습니다. 뒷맛에 달달함이 강하게 올라와서 블라인드 테이스팅 때 '시라'라고 생각했다고 테이스팅 노트에 적어 놓았네요.
펠튼 로드 피노 누아는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뉴질랜드 피노 누아의 새로운 길을 열어준 와인"이라고 추천한 와인입니다.
북섬의 호크스 베이는 자갈밭과 진흙이 켜켜이 쌓여 있어 배수가 잘됩니다. 이곳에선 '엘리펀트 힐'처럼 메를로 베이스로 다소 고가의 보르도 블렌딩 와인을 만듭니다. 최근에는 '시라'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북섬 와이라라파는 '반짝이는 강'이란 뜻으로 마틴버러(Martinborough) 피노 누아가 유명합니다.
뉴질랜드 와인의 상징이 된 스크루 캡
뉴질랜드 '소비뇽 블랑'의 또 다른 특징은 스크루 캡입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뉴질랜드 대부분의 생산자들은 코르크 대신 스크루 캡 사용으로 전환하였습니다. 한국에선 코르크 마개가 좋은 와인의 '상징'처럼 돼 있어서 뉴질랜드 와인이 호텔, 고급 레스토랑에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뉴질랜드는 또한 '청정 지역'의 이미지를 와인 산업에 적극 적용하고 있습니다.
박 원장은 "뉴질랜드 와인 생산자의 96%가 '지속 가능한 정책'에 따라 포도를 생산하고 있다. 목표를 100%로 설정했을 정도로 자연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말했습니다.
[김기정 컨슈머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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