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우리 마을엔 곰이 산다…신문 1면에 부고 실린 곰 가족 이야기

곽윤섭 2023. 8. 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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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이탈리아 아브루초 산 세바스티아노 데이 마르시에서 아마레나라는 이름의 곰이 새끼들과 함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길을 건너고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아마레나’라고 불리는 어미 곰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길을 건너려다 뒤처진 새끼들을 기다리는 동영상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상을 보면 아마레나가 먼저 대로변에 들어선다. 멀지 않은 곳에서 관광객과 시민들 10여명이 서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 아마레나는 사람들 쪽과 새끼들이 다가오는 쪽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는데 사람들이나 곰이 서로 크게 놀라거나 위험성을 느끼는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몇 사람이 한두 걸음 뒷걸음쳐 도로에서 건물 앞으로 물러선다. 20초가량이 지나면 새끼 곰 두 마리가 엄마에게 달려오는데 아마레나는 건물 앞에서 기다려준 사람들 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거리고 다시 새끼들에게 뭐라고 말하는 것 같다. 이윽고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가 마을을 벗어난다.

아마레나는 마르시카 반달가슴곰(아펜니노 갈색 곰)으로 지구에서 가장 희귀한 종류의 곰이다. 현재 60마리 정도가 살아있어 심각한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되고 있다. 곰의 종류는 8가지로 마르시카 곰의 학명은 우르수스 아크토스 마르시카누스이며 이탈리아 중부 아페닌 산맥의 5천~8천km의 특정 지역에만 서식한다. 이곳의 대부분은 1923년에 곰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조성된 아브루초 국립공원에 속해있다. 마르시카 반달가슴곰은 비교적 온순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에 대한 공격성은 보이지 않는다. 주로 식물을 먹으며 사과, 배, 자두, 덩이줄기, 뿌리 등을 좋아하고 작은 동물과 곤충도 사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펜닌 산맥엔 호수와 숲이 있고 주민 거주지도 있어 곰들이 사람이 사는 동네에 내려오는 것이 종종 목격되기도 하는데 아마레나는 몇 년전 체리를 먹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아마레나는 이탈리아에서 개발된 체리 품종의 이름이다.

아마레나는 올해 1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안 카리토의 어미 곰이다. 후안 카리토는 아마레나가 2020년에 낳은 네 마리 새끼 중의 하나다. 인간 거주 지역에 끊임없이 드나들어 명성을 얻었다. 멸종위기의 마르시카 반달가슴곰을 보호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구심점이 됐다.

후안 카리토는 2021년 11월 산악 마을 로카라소의 빵집에 침입해 난장판으로 만들고 케이크와 페이스트리로 얼굴이 범벅된 사건으로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원래 후안 카리토의 공식명칭은 M20이었지만 그가 처음 침입했던 작은 마을의 이름에서 이름을 따왔다. 후안은 라치오와 몰리세의 아브루초 국립공원장인 지오바니 칸나타의 스페인어 버전 이름.

후안 카리토는 아브루초 지역의 마스코트가 됐다. 카리토가 벌집에 침입했을 때 양봉업자는 곰이 그의 제품을 좋아한다고 농담을 했다. 미슐랭 스타 셰프인 니코 로마토는 자신의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 근처를 배회하는 곰을 포착해 인스타그램에 곧장 주방으로 향하는 모습을 올렸다. 야생으로 방사된 2021년 12월 후안 카리토는 일주일 동안 숲에서 지낸 후 다시 사람이 사는 지역으로 돌아왔다. 산림관리원들은 몇 달 뒤 카리토를 다시 포획해 곰 보호구역으로 보냈다. 열매와 곤충, 꿀 등 자연 먹이에 대한 미각을 키우기를 희망했지만 카리토는 쓰레기 음식의 유혹에 넘어갔다. 카리토는 겨울에 동면하지 않고 마을에서 먹이를 찾으며 다니다가 올해 1월에 교통사고를 당했다. 로마의 한 일간지는 1면에 사진을 싣고 톱기사로 사고소식을 전했다. 제목은 〈차에 치여 죽은 ‘도시 곰’ 카리토에게 작별을 고한다〉 였다.

카리토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다. 공원의 마지막 남은 50마리의 반달가슴곰에게 충분한 먹이를 보장하고 기후 변화와 인간의 개입 또는 부주의로 인한 먹이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청하는 청원이 쇄도했다. 과학자들은 (공원에) 과일 농장을 개발하여 적합한 토지를 확장하고 곰이 생존하는 데 필요한 먹이를 자연적으로 보장할 것을 제안했다.

아브루초 국립공원 책임자인 루치아노 삼마로네는 “그는 활기찬 동물이었고 평생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살았다”며 후안 카리토를 일종의 ‘아펜니노의 홍보대사’로 묘사하며 인지도를 높인 인물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My Neighbour is a Bear’ 공식 트레일러 화면

어미 곰 아마레나와 네 마리 새끼 곰의 이야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22년 다큐멘터리 감독 마티아 치알로니는 인간과 야생동물의 공존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예술적으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내 이웃에 곰이 산다. (원제: My Neighbour is a Bear)’를 발표했다. 이 영화는 어미 곰 아마레나가 네 마리의 새끼 곰과 함께 아브루초 산에서 햇볕이 내리쬐는 인근 마을 빌라라고의 자갈길로 내려오는 여정을 따라간다. 영화 속에서 “곰을 보셨나요?”라고 질문을 던지자 한 사람이 낄낄거리며 “네, 새끼 곰 네 마리를 데리고 있었어요”라고 답한다. 감독은 “마을 자체가 하나의 캐릭터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두가 곰을 ‘이웃’이라고 불렀어요. 전에는 본 적 없는 특별한 관계였고, 저는 이 공존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아브루초의 곰과 지역 마을 사이의 오래되었지만 항상 존재했던 이웃 관계, 즉 세계 여러 지역에서 잊힌 관계를 발견했습니다. 이곳의 곰은 사실 이 지역의 홍보대사가 아니라 이탈리아 자체의 홍보대사입니다”라고 말했다.

어미 곰 아마레나가 뒤처진 새끼 곰들을 기다리고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아마레나와 새끼 곰들이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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