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재정 지원 재개…이스라엘과의 국교 수립 명분 쌓기?
팔 자치정부 동의·하마스 견제 등 다목적 포석
사우디아라비아가 2021년 이후 끊었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재정 지원을 재개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29일(현지시간) 알려졌다. 미국 중재로 이스라엘과의 외교 정상화를 추진하는 사우디로선 오랜 기간 이스라엘과 갈등을 빚어온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우디가 숙적 이스라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명분 쌓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사우디 고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사우디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재정 지원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뜻을 전달했다”며 “이는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장애물을 극복하겠다는 진지한 노력”이라고 보도했다.
WSJ에 따르면 사우디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4월 사우디를 방문한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처음으로 이런 계획을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다음 주 대표단을 사우디로 보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사우디는 1948년 이스라엘이 국가를 수립한 이후 터전을 잃은 팔레스타인의 강력한 후견인을 자처해왔다. 특히 지금까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50억달러(약 6조6100억원) 이상을 지원하며 팔레스타인 경제 전반을 떠받쳤다. 하지만 자치정부 고위 인사들의 무능과 부패, 자치정부에 대한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불신 등의 이유로 2016년부터 조금씩 지원액을 줄였고, 2021년부턴 모든 지원을 중단했다.
사우디가 2년 만에 팔레스타인 지원 재개 카드를 꺼내든 이유는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선 핵심 이해관계자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2020년 미국 중재로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바레인이 이스라엘과 일명 ‘아브라함 협정’을 통해 정식 외교 관계를 맺자 거세게 반발했다.
WSJ는 “이슬람의 가장 성스러운 장소(메카·메디나)를 보유하고 있고,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을 주장하는 사우디가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는 문제는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아바스 수반의 지지는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국교를 수립하는 데 합법성을 부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걸림돌이 되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이스라엘과 비판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하마스는 무력 투쟁을 주장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충돌로 올해에만 팔레스타인 200명 이상, 이스라엘인 30명 이상이 사망했다.
WSJ는 “아바스 수반이 팔레스타인 치안을 통제할 수 있다면 사우디는 수월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또 자치정부가 하마스를 제압하고 국가를 운영할 능력을 보여줘야만 사우디가 이스라엘에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 건설을 요구할 명분이 생긴다는 점도 고려됐다.
공교롭게도 알자지라에 따르면 이날 아프리카 인도양 섬나라 세이셸에서 출발해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향하던 비행기가 기체 결함으로 사우디 제다에 비상착륙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승객을 따뜻하게 대해준 사우디에 감사 인사를 전한다”며 사의를 표했다. 알자지라는 “네타냐후 총리가 양국의 관계 개선 가능성을 내비쳤다”고 평가했다.
다만 팔레스타인에서 지도력을 상실한 자치정부와 아바스 수반이 하마스를 견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고,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려는 사우디와 손 잡을 수 없다는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반발을 잠재울 수 있을 지도 미지수라는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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