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몫 위원 배제하고 방통위 의결? 박근혜 정권도 안 그랬다”
이동관 신임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 28일 첫 전체회의를 주재하며 6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출범을 알렸다. 5명의 방통위 상임위원 중 이날 회의에 나타난 이는 이 위원장과 이상인 상임위원이 전부였다. 두 사람 모두 윤석열 대통령이 지명하고 임명한 ‘대통령 몫’이다. 여야가 추천해서 대통령이 임명하는 ‘국회 몫’ 상임위원 세 명은 없었다. 윤 대통령이 법적 근거 없이 야당 추천 상임위원의 임명을 5개월째 거부하고 있는데다, 나머지 두 명의 추천 절차는 아직 끝나지 않아서다. 이 위원장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완전체로 출범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면서도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보궐 이사 임명 안건 등을 회의에 올려 처리했다.
방통위가 2008년 설립 이래로 대통령 몫의 상임위원 두 명만 참석한 가운데 전체회의를 열어 주요 안건을 처리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야당과 언론·시민단체, 방통위를 거쳐 간 여러 전직 상임위원들이 ‘방통위의 합의제 정신이 무너졌다’며 우려를 나타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에 야당 추천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낸 김재홍 전 부위원장도 ‘이동관 체제’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이들 중 한 명이다.
김재홍 전 부위원장은 30일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박근혜 정권 때도 야당 추천 상임위원 없이 정부·여당 추천 위원만으로 회의를 연 적은 없다”고 말했다. 당시 최성준 위원장 등 정부·여당 쪽 위원들이 야당 쪽 위원의 반대 의견을 ‘다수의 힘’으로 누른 적은 있어도 자신들을 배제한 채 회의를 소집한 적은 없었다는 게 김 전 부위원장의 설명이다. 그에게 6기 방통위의 첫 전체회의를 지켜본 소감을 물었다.
“대통령이 임명한 두 명이 회의를 여는 게 법적으론 문제없다고 주장할지 몰라도 정상이 아니죠. 다른 독임제 정부 부처와 달리 방통위는 ‘합의제 행정기구’라고 합니다. 방송의 자유와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방통위가 필요하고, 그런 방통위가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을 지닌 상임위원 5명을 정부·여당과 야당이 각각 추천하도록 한 겁니다. 법적 문제가 없다며 이런 식으로 할 것 같으면 회의를 뭐하러 엽니까. 그냥 정부 정책을 그대로 집행하면 되지요.”
방통위가 28일 대통령 지명 몫의 상임위원 두 명만으로 전체회의를 열어 방문진 보궐 이사 임명 안건 등을 처리하자,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야당 간사를 맡고 있는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재적위원 두 명뿐인 방통위가 내린 결정은 방통위 설립 취지에도 어긋나고 절차적으로도 정당성을 결여한 결정”이라며 무효를 주장했다. 반면 유상범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중요한 현안이 있다면 현 상황(2인 체제)에 맞춰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맞섰다. 방통위법(13조) 등을 보면 위원회의 회의는 2인 이상의 위원이 요구할 때 위원장이 소집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에 대해 “법률을 넘어서는 적실성(relevancy)의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있어 법률과 제도만 갖고 따지면 곤란합니다. 정부·여당 쪽 3명, 야당 쪽 2명의 상임위원이 모인 회의에서 결정권은 다수가 행사하되, 소수의 반대 의견도 존중하라는 게 방통위를 합의제 행정기구로 만든 취지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명한 위원들만 모여서 이렇게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국민의 눈높이엔들 맞겠습니까.”
김 전 부위원장은 야당 추천 최민희 상임위원 후보자의 임명을 거부하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행태에 대해서도 비판을 이어갔다. 대통령이 야당 추천 상임위원의 임명을 거부한 적은 두번 있었다. 그 대상자 중 한 명이 김 전 부위원장과 함께 2014년 2월 야당 추천을 받은 고삼석 전 상임위원이었다. 당시 방통위는 고 전 위원의 경력이 자격 요건을 미달한다며 국회에 재추천을 의뢰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이를 근거로 고 전 위원에 대한 임명을 거부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회의 참석을 거부하며 버티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해 4월 청와대에서 주는 임명장은 받았다”며 “그 자리에서 박 전 대통령한테 ‘박정희 대통령은 어떤 안건에 대해 반대했다 할지라도 국회가 의결하면 그것을 안 받아들인 적은 없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후퇴한 것’이라고 따졌다”고 전했다.
“대통령의 임명은 형식적 절차인데 박 전 대통령이 그걸 안하겠다고 해서 나도 항의하는 차원에서 임명 직후 한달여 기간을 전체회의에 불참했습니다. 회의에 들어간 뒤에도 5명 상임위원이 모두 자리를 채우는 완전체가 되기 전까지는 방통위가 중요한 안건을 논의하거나 처리해선 안 된다고 버텼고요. 아무리 박근혜 정권 때였지만 적어도 당시 정부·여당 쪽 위원들은 자기들끼리 회의를 소집해 중요한 안건을 처리하지는 않았어요. 최소한의 합의제 정신은 서로 지켰던 겁니다.” 그때가 3기 방통위였는데, 고 전 위원은 3기 출범 두달여가 지난 6월 임명됐다.
그의 ‘합의제 정신 준수’ 요구와 달리 당시 방통위가 매번 소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2014년 9월1일 방통위가 비공개 전체회의를 열어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를 한국방송 이사로 추천하는 안건을 의결할 때였다. 김 전 부위원장 등 야당 쪽 상임위원 두 명은 ‘특정 단체나 집단의 이념을 신념화해 온 사람이 한국방송의 독립성을 지키고 공적 책무를 다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강력히 반대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그렇지만 최성준 위원장 등 정부·여당 쪽 상임위원 3명의 찬성으로 추천안은 가결됐다. 그는 “매번 ‘합의제 행정기구에서는 단순 다수결이 아닌 컨센서스(구성원의 합의)를 통해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3 대 2 구조라는) 현실적 한계는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여야의 입장 차가 극명히 엇갈리는 사안일수록 더욱 그랬다.
그는 그럼에도 방통위가 의견 수렴과 반대 토론의 절차를 아예 무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아무리 토론을 많이 하고 폭넓게 의견을 수렴해도 중요한 문제일수록 합의가 안 되는 사안이 비일비재합니다. 만약 끝까지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수결을 최후의 수단으로 쓸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에 소수자의 비토권은 더더욱 보장돼야 합니다. 예컨대 헌법상의 기본권이 침해되는 사안에 대해 다수결로 의결하려 할 때 소수가 회의장에서 퇴장하면 그게 곧 비토권 행사인데, 그런 경우라면 최소한 해당 안건을 보류하고 연장 토론과 숙려하는 등의 노력은 뒤따라야지요.”
김 전 부위원장은 이동관 위원장의 서울대 정치학과, 동아일보 정치부 선배다. 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을 거쳐 2014년 3월부터 2017년 3월까지 방통위 상임위원을 지냈다. 2015년 10월부터는 부위원장을 맡았으며, 방통위를 떠난 뒤에는 서울디지털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그는 이 위원장에 대해서는 “사적인 관계인 만큼 특별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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