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 청산’ 내세운 과테말라 대선 승리 정당, 자격 정지 처분…“사법 포위 공격”
과테말라 대선에서 대역전극을 펼치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던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당선인의 소속 정당인 ‘풀뿌리운동’이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에 따라 풀뿌리운동은 대선에서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당 활동을 할 수 없게됐다. 부패 청산을 추진하는 아레발로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 기존의 기득권 정치집단이 ‘사법 공격’을 가한 것이라는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선 승리 정당 ‘자격 정지’…국제사회 비판 잇따라
29일(현지시간) 과테말라 매체 프렌사리브레 등에 따르면 전날 과테말라 선관위는 당원 부정 등록 등의 혐의로 아레발로 당선인의 정당인 ‘풀뿌리운동’의 법적 지위를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검찰은 풀뿌리운동의 당원 명단 중 일부가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라파엘 쿠루치체 특검은 재판부에 풀뿌리운동의 자격을 정지해달라고 청구했고, 프레디 오레야나 판사는 이를 받아들였다. 오레야나 판사와 쿠루치체 특검은 모두 과거 미국 정부로부터 ‘부패한 반민주화 인사’로 지적된 바 있는 인물이다.
이 같은 결정에 아레발로 당선인은 반발하며 항소의 뜻을 밝혔다. 그는 “검찰과 법원이 사법기구를 활용해 정치적 박해를 하고 있다”며 “헌법에 따라 내년 1월14일에 우리가 취임하는 것을 법적으로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선거 도중 어떤 정치 조직도 해산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는 선거법을 들어 선관위의 결정이 불법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법학자들은 선거 절차가 아직 진행 중이고, 대통령 취임 전에 이 같은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에 풀뿌리운동에 대한 정지 처분이 취소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외 정부와 국제기구에서도 비판이 잇따랐다. 카린 장피에르 미 백악관 대변인은 “국제 사회의 파트너들 및 과테말라 국민과 함께 과테말라 민주주의에 반하는 이러한 용납할 수 없는 시도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유럽연합(EU) 역시 “EU는 과테말라의 모든 정당, 기관, 정부부처가 선거 과정과 그 결과를 전적으로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선거 과정을 모니터링해온 미주기구(OAS)도 “정당한 근거 없이 내려진 결정”이라며 “유권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헌법 원칙을 위반했다”고 비판했다.
‘부패 척결’ 내세운 아레발로 당선인…기득권 세력의 거센 저항 직면
중남미 매체 인포바에는 이 같은 조치를 두고 아레발로 당선인에 대한 “사법 포위 공격”이라고 분석했다. 반부패 운동가 출신의 아레발로 당선인은 오랫동안 “부패 척결”이라는 일관된 정책을 내세우며 과테말라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의 전쟁’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그간 부패를 저질러 온 기득권 카르텔의 저항이 거세게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검찰과 법원은 결선 투표를 앞두고 지난달에도 명확한 근거 없이 풀뿌리운동의 정당 등록을 정지한 바 있다.
아레발로 당선인의 취임까지는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선거에서 패배한 산드라 토레스 후보는 여전히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며, 선거법원에는 대선 관련 각종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얼마 전 아레발로 당선인은 살해 위협을 받기도 했다. 다만 알레한드로 히아마테이 현 과테말라 대통령은 아레발로 당선인에게 질서있고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문가들은 최고선거법원이 이미 아레발로의 당선을 공식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에 그가 취임을 못하게 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있다. 그러나 이번 일로 여당의 지위를 얻게 될 ‘풀뿌리운동’의 힘이 약화되고, 국가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
로베르토 알레호스 전 의원은 이번 조치로 풀뿌리운동이 의회에서 핵심위원회 직책을 맡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선거 과정에 개입하는 것은 엄청난 법적 불안정을 야기하고 있다”며 “이는 경제, 관광, 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AP통신은 “아레발로의 반대자들이 그의 취임을 막을 수 없자, 이제 가능한 약한 대통령이 되도록 하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선관위 결정이 유지된다면 아레발로 당선인은 내년 1월 무소속 상태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할 수 있다. 아레발로 당선인의 앞에는 정당의 법적 문제와 여소야대 의회 상황, 살해 위협 등으로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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