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빨치산과 그 빨치산이 같냐” 국방부 역사수업 나선 기자들

이유진 2023. 8. 3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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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역사 쿠데타’]‘홍범도 1919년 빨치산’ 이력 색깔론 내놓자
“여기 빨치산 뜻은 ‘비정규군’…당시 김일성은 7살”
78년 만에 고국 땅으로 돌아온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2021년 8월15일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임시 안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육군사관학교(육사) 내부에 설치된 독립전쟁 영웅 홍범도 장군 흉상을 철거할 방침을 밝힌 가운데, 29일 열린 국방부 브리핑 영상이 화제가 되고 있다. 기자들은 홍 장군의 ‘빨치산 활동’, ‘자유시 참변 연루 의혹’ 등을 언급한 28일 국방부 입장문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지 캐물었지만 국방부는 앞선 답변을 번복하거나, 비슷한 답변을 되풀이하며 기자들의 질타를 받는 등 좀처럼 제대로 된 설명을 내놓지 못했다. 이에 기자들은 “어설프고 역사적 식견이 없다”, “국방부 인문학적 소양이 이 정도밖에 안 되냐”며 국방부를 직격했다.

“자유시 참변 직접 가담” 말했다가 “잘못 말했다” 번복

29일 오전 열린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한 기자는 “28일 국방부가 배포한 입장문은 자유시 참변에 홍 장군이 개입했다거나 마치 우리 독립군을 소탕한 주범처럼 읽혀지도록 되어 있다”며 “권위 있는 학자들의 공론화 과정 절차를 밟아야 되는 것 아니냐”고 질의했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공론화 과정 여부에 대해서는 답변을 피한 채 “입장문은 지금까지 알려진 군 내외 자료 또 확인된 내용들을 토대로 입장을 정리해서 알려드린 것”이라고 답했다.

다른 기자 역시 “공식 자료에는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는 게 공식적인 학계 입장이다. 이 부분을 국방부에서 확인했는지”를 물었다. 전 대변인은 “군 내외 자료, 또 확인된 사실을 가지고 말씀드린 것”이라는 같은 답변을 반복했다. 해당 기자가 “그러면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자신이 가담했다’라는 내용을 소련에 말을 했다, 이 자료를 확보했다는 거냐”고 재차 묻자 전 대변인은 “네, 그런 문서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변인의 답변은 28일 입장문 내용과도 달랐다. 국방부 입장문에는 “1991년 한·소 수교 직후 발굴한 소련 측 정부 문서에 따르면, 홍 장군이 1930년대에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갔다”로 되어 있다”고만 적혀 있다.

이에 한 방송 기자가 “대변인은 아까 다른 기자 질문에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직접 참여했다고 말했다”고 지적하자, 전 대변인은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만약 그렇게 말했다면 제가 잘못 말한 것 같다”고 답했다. 방송 기자가 “그렇게 이야기해서 깜짝 놀랐다. 자유시 참변에 홍 장군은 절대 안 들어갔다”고 말하자 전 대변인은 재차 “제가 그렇게 말했다면 잘못된 (답변)”이라고 앞선 답변을 거둬들였다.

29일 오전 열린 국방부 정례브리핑. MBC 뉴스 갈무리

“1920년대 빨치산과 김일성이 무슨 상관?”

국방부가 입장문에서 ‘홍 장군의 빨치산 증명서에는 활동기간이 1919~1922년으로 기록되어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에도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도 있다’고 주장한 부분도 이날 브리핑에서 쟁점이 됐다. 한 방송 기자는 “홍 장군이 활약한 1920년대는 레닌의 공산당이고 북한군을 사주해서 6·25 남침을 한 공산당은 스탈린 공산당으로 둘은 아주 다르다.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며 “그런데 그것을 같은 공산당이라고 보면 어떡하냐”고 지적했다.

이어 “1919년대, 1920년대 빨치산과 김일성, 스탈린은 아무 관계가 없다. 김일성은 1912년에 태어났는데 그때 몇살이었냐”며 “그런데 1919년부터 1922년까지 빨치산 자격으로 전투에 참가한 것이 왜 문제가 되냐”고 지적했다. 이런 지적에도 전 대변인은 “여러 의견을 가질 수 있지만 (입장문은) 저희 입장을 정리해서 드린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에 해당 기자는 “국민을 향해 만들어낸 공문서를 이렇게 어설프게 역사적 식견도 없이 (쓸 수 있냐)”고 지적했다.

또 다른 출입기자는 당시 ‘빨치산’ 용어의 뜻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짚었다. 이 기자는 우선 “국방부 출입기자로서 국방부 입장문을 보고 ‘국방부의 인문학적 소양이나 수준이 이 정도밖에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빨치산은 (프랑스어) ‘partisan’에서 넘어온 말로 비정규군을 뜻한다. 당시 우리나라 군대도 없고 국가도 없는데 이때 독립운동한 사람은 다 빨치산”이라며 “그때 활동한 걸 (6·25 전쟁 당시) 빨치산이라고 하면 얼마나 부끄럽고 천박하냐”고 했다.

29일 오전 열린 국방부 정례브리핑. MBC 뉴스 갈무리

“외부 학계 협의 필요 없다”는 국방부

이밖에도 기자들은 “국방부가 (홍 장군의 공훈을 평가할) 소관 권한도 없는 상태에서 평가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월권이 아니냐”고 물었지만 전 대변인은 월권 여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은 채 “법적인 평가를 따지는 게 아니며, 육사의 교육 목표와 현재 내부에 있는 조형물의 인물과 적절성이 있는지를 따져보는 측면”이라고만 답했다.

“(흉상)이전 검토를 할 때 역사학계, 특히 독립운동사를 연구한 외부 전문가나 국가보훈부와 함께 논의가 이뤄질 예정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전 대변인은 “(이전) 장소가 보훈부와 연계된다면 협의할 사항이 생기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필요 없는 부분이 될 것이고, 군 내부적으로 어떤 결론이 내려질 수 있으면 굳이 외부 학계와의 협의는 필요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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