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병·중고 거래…‘생활 밀착형’ 공포가 온다
무서운 영화를 본 뒤 극장 밖으로 나설 때 드는 감정은 안도감이다. 두려움을 견딘 보상으로 얻는 이 기분은 관객들이 공포·스릴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장을 나선 뒤, 가장 편안해야 할 집에서 두려움이 오히려 커진다면?
<잠>과 <타겟>은 극장보다 집에서 더 무서운 영화다. 수면과 중고거래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생활 밀착형’ 공포를 선보이는 두 작품이 일주일 시차를 두고 개봉한다.
먼저 선을 보이는 것은 30일 개봉한 <타겟>이다. 평범한 직장인 수현(신혜선)은 이사 직후 세탁기가 고장났음을 깨닫는다. 이미 많은 이사 비용을 쓴 터라 큰돈 들이고 싶지 않았던 그는 중고거래 앱에서 새것이나 다름없다는 세탁기를 구입한다. 하지만 배송받은 세탁기는 망가진 물건. 화가 난 수현은 사기꾼을 쫓기 시작하고, 추적을 당한 사기꾼은 수현을 ‘타겟’ 삼아 괴롭히기 시작한다. 평온했던 수현의 하루하루는 완전히 망가진다.
영화는 누구나 중고거래를 하는 2020년대 실제 일어날 법한 공포를 선사한다. 해킹된 수현의 개인정보들은 부메랑처럼 날아와 수현의 일상을 옥죄어 온다. 주문한 적 없는 배달 음식이 끝도 없이 오는가 하면 늦은 밤 낯선 남자들이 찾아와 “파트너를 찾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퇴근 후 들어간 집에는 누군가 다녀간 흔적이 남아 있다.
연출을 맡은 박희곤 감독은 최근 수년간 각종 뉴스에서 다뤄진 중고거래 사기 사례와 주변 지인들의 경험담을 엮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박 감독은 언론 시사 후 기자들과 만나 중고거래 범죄에 관한 보도들을 언급하며 “중고거래가 이웃끼리 주고받는 훈훈한 거래나 나눔이라 생각하고 있어 충격받았다. 범인들은 치밀하고 계획적이고 조직적이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중고거래 앱 당근마켓의 누적 가입자 수가 3200만명인 지금 당장 ‘내 이야기’가 될 수 있는, 그래서 더 ‘타율 좋은’ 공포다.
내달 6일 개봉하는 <잠>의 공포는 더욱 친밀한 존재로부터 온다. 사이 좋은 신혼부부 현수(이선균)와 수진(정유미)은 곧 태어날 아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날 현수가 수면 중 이상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다. 냉장고 속 음식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고, 피가 나도록 얼굴을 긁어댄다. 이상 행동은 나아질 기미가 없고 현수 자신은 물론 수진과 아기의 생명을 위협할 정도가 되면서 밤은 공포로 물든다.
영화는 스릴러와 미스터리, 오컬트 등 여러 장르를 오가면서도 한눈 팔지 않고 직진한다. 내 옆에 잠든 사람이 무의식 중에 나를 해칠지 모른다는 불안은 ‘아주 친밀한 공포’가 된다. 하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는 묘하게도 ‘사랑’이다. 수진은 하루하루 피폐해지면서도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할 문제는 없다”고 외친다. 영화가 지닌 오묘한 개성은 공포와 사랑의 공존에서 발생한다. 영화를 연출한 유재선 감독은 지난 5월 프랑스 칸에서 한 인터뷰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대상이 가장 사랑하고 지키고 싶은 사람일 때, 위협과 공포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진 역의 배우 정유미가 출연을 결심한 것도 ‘스릴러의 외피를 두른 사랑 이야기’라는 감독의 설명 때문이었다고 한다. 감독의 데뷔작인 영화는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됐다.
두 영화 모두 15세 이상 관람가다. 러닝타임은 <타겟>은 101분, <잠>이 94분이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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