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G2의 제스처, 갈등완화로 볼수 있을까
대중 첨단기술공급망 배제기조는 여전
“미국 민간기업 실익 챙기기 나선 것”
미국과 중국이 첨단기술 수출통제 및 무역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차관보급 협의체를 꾸렸습니다. 협의체 신설 이튿날 첫 회의를 열고, 향후 정기적으로 만나 정보를 교환하기로 했어요. 미중 간 갈등의 실타래가 풀릴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죠.
하지만 미국은 선을 긋고 나섰습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부 장관은 “정보교환과 정책 대화는 다르다”며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선 타협하거나 협상하지 않는다”고 강조했습니다. 협상과 대립 속 첨예한 입장 차가 여전한 가운데 ‘미중 수출통제 협의체’의 실질적 의미는 무엇일까 살펴봤어요.
미국의 숨은 뜻
테크냉전을 이어오던 미국과 중국이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 ‘정보교환’을 목적으로 한 협의체 신설에 지난 28일 합의했습니다.
곧이어 29일 첫 회의를 열었습니다. 외신 등에 따르면, 이날 첫 수출통제 정보교환 협의에서 양국은 ‘영업 비밀(trade secret)’을 논의하는 것에 합의했다고 전해집니다.
해당 협의체에 대해 중국을 방문 중인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국가안보 정책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한 플랫폼”이라며 “수출통제 관련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하고 투명성을 높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이어 “국가안보 문제에 대해선 타협하거나 협상하지 않는다”고 재차 강조했는데요.
대화의 물꼬가 트이는 듯하면서도 갈등의 골이 여전히 깊어 보이는 상황입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온양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봅니다. 중국경제의 급격한 성장을 누르기 위해 첨단기술 부문에서 중국을 배제하되 미국 내 기업의 실익을 위해 중국과 협상의 여지를 열어두고 발을 걸쳐 놓겠다는 이중책인 셈이죠.
이종환 상명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여러 산업 가운데 특히 반도체는 생태계로 엮이기 때문에 미국정부 차원의 표면적 입장과 민간기업들간 입장 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최대 시장인 중국을 당장 배제하는 것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교역을 이어가 실익을 챙기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2021년 말 기준 미국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이 각각 23조달러, 18조달러로 중국이 미국 GDP의 80% 가까이 따라붙으면서 미국의 대중 견제가 본격 시작됐다”며 “미국 정부로서는 중국의 경제성장을 막기 위해 중국 공급망을 완전히 틀어쥐고 싶겠지만 산업의 생태계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아 강온양면책을 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김 교수는 “테슬라의 가장 큰 공장이 중국 상하이에 있고 애플의 가장 큰 조립 공장도 중국에 있기 때문에 미국의 주요 기업들이 중국과 완전히 척을 질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군사용 혹은 AI 등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선 중국을 배제하겠지만 산업용 및 공업용 저사양 반도체는 수출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식을 구사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협의체가 신설된 당일 미국 반도체업체 마이크론이 중국 대관업무책임자를 임명한 것도 이러한 전문가들 의견에 힘을 싣고 있습니다. 마이크론은 지난 28일 중국 대관업무책임자로 공직과 기업 분야에서 3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제프 리(리신밍)를 임명한다고 밝혔는데요. 미국 정부의 대중 압박으로 마이크론이 중국의 제재 리스트에 오른 지 3개월 만에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모습입니다.
‘테크냉전’ 10년 장기전 불가피
해당 협의체는 양측의 의도를 파악해 관련 조처 수위를 일부 조절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근본적으로 조치를 해제하는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지만 회의를 통해 수출통제 수준이나 각론을 조정할 순 있을 것이라게 전문가들 의견입니다.
아울러 전문가들은 향후 10년이 미국과 중국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따라서 미중 테크냉전은 장기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최원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경제안보팀 부연구위원(중국산업 담당)은 “현재 중국도 경제가 좋지 않아 수출 및 대외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에 놓였고 때문에 미국과 협의를 하겠다는 스탠스를 보이는 것 같다”며 “기후 변화나 일반 무역에서의 공급망 협력은 일부 가능성이 있으나 향후 10년간 미중 양국 간 첨단 반도체 등 안보와 밀접한 분야에서 협력을 이뤄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상황 속 한국 정부 및 기업의 활로 모색이 관건인데요.
대중 의존도를 낮추는 것을 골자로 한 종합전략 수립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공급망 안정과 회복력 강화, 중장기적으로는 핵심산업과 기술의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옵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글로벌 수출 시장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13%가량인 것과 달리 한국은 수출액 가운데 3분의1이 중국”이라며 “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을 적어도 15%까지 낮추고 다변화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상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최첨단 반도체 분야 등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불가피한 분야에선 글로벌 유수 기업의 국내 유치를 적극 추진하는 방안도 있다”며 “한국은 미국과의 신뢰관계·반도체 최대 시장인 중국과의 인접성·삼성전자 및 SK하이닉스 등 대형 고객사 보유 등 이점을 갖고 있는바 글로벌 반도체 장비기업들과 협력해 한국 내 반도체 혁신 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습니다.
강민경 (klk707@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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