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오염수·초전도체·이권카르텔…과학이 있어야할 곳은
1만2500년 만에 처음이라는 지난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의 경이로운 경제·사회적 발전을 가능하게 만들었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다고 자부하던 과학자의 경우가 그랬다.
연이어 불거진 뜨거운 사회적 현안에 온전하게 정신을 차릴 수도 없을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여름이었다. 자칫하면 지난 반세기 동안 애써 쌓아놓은 과학기술의 기반이 통째로 무너져버릴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우리 바다와 수산물을 망쳐놓는다는 엉터리 괴담과 정치적 선동이 지금도 우리 사회를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뜨겁게 달궈놓는 중이다. 우리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상온·상압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소식과 함께 불어닥친 광풍(狂風)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뜨거웠다.
그런데 과학자들을 정말 뜨겁게 달아오르도록 만든 것은 국가연구개발비를 나눠 먹고 갈라 먹었다는 ‘약탈적 이권 카르텔’ 지적이었다. 알량한 자존심을 먹고 사는 과학기술계가 느닷없이 비효율‧비윤리‧무능 집단으로 싸잡아 매도당해버린 것이다.
결국 내년도 주요 국가연구개발비는 3조4000억 원(13.9%)이나 삭감되고 말았다. 특히 기초연구 예산은 2조4000억 원(6.2%)이 줄었고 25개 출연연 예산도 2조1000억 원(10.8%)이 깎였다. 1991년 이후 33년 만에 처음 겪는 황당한 일이다. 특히 과학기술계가 예산 삭감의 직접적인 빌미를 제공한 경우는 정부가 과학기술에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 1957년 이후 처음이다.
● 가짜과학‧반(反)과학에 포획된 국민 안심
후쿠시마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은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일이다. 오염수의 처리‧희석‧방류가 인간이나 해양 생태계에 어떤 후유증‧부작용도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분석도 설득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캐나다‧뉴질랜드‧오스트레일리아‧유럽연합(EU)은 물론 태평양도서국(PIF)까지 동의하는 일을 유독 우리만 거칠게 거부하고 있다. 심지어 정치적 이유로 정부 차원에서 오염수의 태평양 방류를 반대하고 있는 중국조차 우리의 소금 사재기를 ‘비이성적’이라고 비웃으면서 ‘한국을 따라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는 형편이다.
과학기술계의 입장에서 후쿠시마 괴담은 ‘제2의 광우병 사태’다. 무엇보다도 과학적‧상식적으로 합리적인 근거를 찾을 수 없는 ‘가짜‧유사(類似)과학’이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 광우병 사태를 꼭 빼닮았다. 우리나라 최고 명문대의 교수가 앞장서서 엉터리 억지‧괴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도 놀라울 정도로 닮은꼴이다. 가짜과학으로 만들어진 괴담이 정치적 선동의 도구가 돼버린 것도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물론 15년의 세월이 만들어낸 차이도 있다. 라디오의 시사 프로그램과 인터넷‧유튜브가 괴담 확산의 통로가 돼버렸다.
‘심층해류’와 ‘평형수’를 걱정해야 하고, 플루토늄이 ‘무거워서’ 바다 밑으로 가라앉고, 희석을 시켜도 ‘총량’은 변화하지 않고, 플루토늄과 녹의 화학적 독성도 심각하고, 오염수에 들어있는 흙과 자갈이 ALPS(다핵종제거장치)를 무력화시킬 것이고, 삼중수소가 생물체의 몸속에 ‘축적’되고, 우리 정부가 바다에 설치해놓은 감시 장치가 ‘녹슨 구닥다리’라는 등의 명백한 가짜‧유사과학이 우리 사회에 들불처럼 번진 것은 모두 라디오 시사 프로그램과 인터넷‧유튜브 때문이다.
과학자들이 신중하고 자중해야 한다는 점잖은 ‘반(反)과학’(anti-science)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것도 크게 달라진 변화였다. 우리 사회에서 과학이 국민적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과학자들이 섣부르게 ‘과학적 안전’을 외치기보다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안전은 과학적으로 ‘100% 안전성’이 확인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용납된다는 공학자의 황당한 주장도 있었다. 오히려 자신들이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인식은 찾아볼 수 없는 억지이고 궤변이다.
● 세계 최초에 대한 애타는 갈증
우리 벤처기업이 세계 최초로 상온‧상압에서 작동하는 초전도체를 개발했다는 소식도 과학자를 난처하게 만드는 뜨거운 소식이었다. 세계 최초의 개발과 노벨상 수상을 애타게 기다리는 국민적 갈증을 탓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선진국 수준의 경제력을 갖췄고 국가연구개발 예산의 규모도 적지 않은 현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물론 세계 최초도 중요하고, 노벨상도 중요하다. 그런 국민적 기대가 과학기술계의 분발을 촉구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러나 국민이 간절하게 원하는 ‘꿈’이 현실이 돼버린 ‘2002년 월드컵의 기적’은 과학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과학기술에서는 급할수록 돌아가고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지혜가 더욱 절실하다는 명백한 진실을 기억해야 한다. 과학은 느닷없이 등장한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발전하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교훈도 소중한 것이다. 황우석 사태의 아픈 기억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언론이 지나치게 성급했다. 과학이 ‘아카이브’와 ‘SNS’를 통해서 발전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사실을 통째로 무시해버렸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발표되는 논문에서도 심심치 않게 오류가 드러나기도 하는 과학기술의 냉혹한 현실도 무시해버렸다.
상온 초전도체의 개발을 주장하는 두 편의 서로 다른 원고가 동시에 발표되는 ‘비정상’은 언론이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개발에 참여했던 연구진이 서로 다른 논문을 발표하게 된 이유와 경위를 확실하게 밝혀냈어야만 했다.
상표권 등록의 절차도 완료되지 않은 LK-99에 ® 마크까지 붙여놓은 논문의 ‘비정상’도 언론이 확실하게 지적했어야 했다. 지난 20여 년 동안의 개발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던 연구자가 벤처기업의 ‘대변인’으로 적절한 취재원이었는지에 대한 반성도 필요하다.
SNS를 통한 성급한 관심과 섣부른 목소리를 생중계하듯 퍼 나르면서 마치 전 세계 과학계가 들썩이고 있는 것처럼 과장해서 보도한 행태도 안타까운 것이었다. 널 뛰듯 출렁거리는 테마주에 관한 선정적인 보도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적극적으로 재현‧검증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과학자를 ‘가두리’에 갇힌 넙치에 비유해버린 일부 언론의 파행적 보도는 언론의 낯 뜨거운 실수였다.
정부가 섣불리 끼어들지 않았고 초전도저온학회가 끝까지 냉정함을 잃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우리 사회가 SNS를 통해서 전 세계의 주목을 집중시키는 역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 국민을 감동시키는 과학
국가 R&D 예산의 ‘약탈 행위’는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소중한 국민의 세금을 멋대로 나눠 먹고 갈라 먹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에 연루된 과학자는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아내서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 단순히 졸속으로 밀어붙인 예산 조정으로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해결해버려서는 안 되는 일이다.
소부장과 감염병에 긴급 예산이 투입된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던 일이었다. 그 덕분에 국가적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했다는 평가도 있었다. 긴급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감수했던 비효율과 비윤리를 지금까지 끌어안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처구니없는 것이다. 만약 그런 지적이 사실이라면 소부장과 감염병 부분만 수술하면 될 일이다.
기초연구와 출연연의 예산을 도려내야 할 이유가 없다. 과기정통부와 위상과 역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이 과기정통부를 위해 존재하는 현실은 명백한 비정상이다.
이제 과학기술이 달라져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대통령의 관심에만 매달리는 비겁한 자세는 확실하게 버려야 한다. 물론 국가 지도자의 관심이 과학기술 발전의 중요한 원동력인 것은 사실이다. 특히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확실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달라졌다.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유별난 관심이 무소불위의 영향력으로 이어지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다. 지난 20여 년 동안 파행을 거듭한 과학기술 거버넌스의 혼란이 무엇보다 확실한 증거다. 극성스러운 이권 카르텔로 전락하고 있는 관료주의도 대통령의 정확한 판단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과학기술계가 정확한 사실을 적극적으로 파악해서 국정에 반영할 수 있도록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
과학계의 리더십은 철저하게 실종되어 버리고, 오히려 대학원 학생들이 기초연구 예산 삭감에 반발해야 하는 현실은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2달 만에 끝내버린 졸속 예산 조정을 대단한 제도 혁신이라고 자랑하는 부끄러운 목소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을 감동시키는 과학기술을 만들어야 한다. 진정한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엄중한 과업이다.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9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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