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탐구] 숱한 해양생물의 귀한 가치를 찾다 해양생물연구원
지구에 살고 있는 생물 중 약 80%는 바다에 살지만 이 중 우리가 아는 생물은 2%도 채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해양생물자원을 보전하고 관리하는 책임기관,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해양생물연구원에게 들어본 살아 숨 쉬는 바닷속 비밀.
“바다에 사는 모든 생명을 찾아 진정한 가치를 높여주는 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해양생물 다양성본부는 생물다양성실, 생물분류실, 생태보전실 총 3개의 실로 이뤄져 있더라고요. 각각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요. 해양생물은 해양동물, 해양식물, 해양조류와 미생물, 균류 등 아주 다양합니다. 생물다양성실은 우리나라에 어떤 해양생물이 살고 있는지 확인하고, 이를 조사하면서 확보하는 일을 하는 곳이에요. 제가 속한 생물분류실은 확보한 해양생물을 분류학적으로 연구하고 해양생물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는 곳이죠. 생태보전실은 해양생물자원의 서식지를 확인한 뒤 해양보호생물을 복원하는 연구를 해요. 또한 생태보전실은 해양생물자원의 탄소흡수원(숲이나 바다 등 대기 중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는 곳.연안, 갯벌, 염생식물과 같은 해양생물 등의 생태계 역시 탄소흡수원이 된다)을 발굴하는 업무도 하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해양생물연구원은 어떻게 해양생물을 연구하고 그 자원을 활용하나요?
간단히 설명하면 해양생물자원을 확보한 뒤 표본 데이터베이스와인벤토리를 만들고, 해양생물자원을 활용하거나 권리를 주장하는일련의 사이클이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연구원 한 명이 하는 건아니고, 다양한 연구자가 각자의 분야에 맞는 일을 담당하고 있죠. 먼저 해양생물자원을 확보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살고 있거나 새로 발견된 종, 아직 기록되지 않은 종을 채집하는 거예요. 그런뒤 이 해양생물의 종을 정확히 밝혀야 해요. 생물학 분야에서 ‘종’이란 곧 생물을 인식하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되거든요. 종을 판별한 뒤에는 서식하는 위치와 정보, 누가 채집했는지 채집자와 시기등을 기록하는 표본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습니다. 해양생물 데이터는 연구원이나 일반 국민이 확인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기 편한 방법으로 목록화하여 정리합니다. 이렇게 검색 도구를 갖춰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인벤토리’를 구축한다고 말합니다.
박사님이 일하는 생물분류실에서 해양생물자원을 보존하고 관리한다고 하셨는데, 그곳에서 표본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지는 거군요.
맞아요. 수집한 해양생물이 어떤 생물인지 분류한 뒤 보존하기 위해액침표본(액체에 잠기게 해서 만드는 표본), 건조표본, 슬라이드표본으로 만들거나 박제해서 영구보존 처리한 뒤 항온, 항습시설을갖춘 ‘수장고’라는 거대 보존시설에서 관리하는 거죠.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는 13개의 수장고가 있는데 이 수장고에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해양생물 9339종, 약 53만 점이 표본으로 확보돼 있답니다. 여기에 더해 해양생물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가치를 평가하고 등급도 부여하고 있고요. 가치는 경제적, 생태적, 학술적으로 평가하는데요, 산업에서 활용도가 높고 잠재적 가능성이 높은 1~2등급의 경우 검토한 뒤 ‘국외반출 승인대상 해양수산생명자원’으로 고시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해양생물자원은 어떻게 쓰이나요? 해양생물자원은 의외로 다양한 곳에서 활용돼요. 해양생물에서 항산화, 항균, 미백 등 유효한 기능을 하는 물질을 추출해 신약을 개발하거나 화장품, 건강기능성식품의 원료로 쓰는 게 대표적이죠. 바이오에너지의 소재로서 친환경 대체 에너지로 사용되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해양생물자원에 ‘대한민국’이라는 이름표를 붙이는 것도중요한 일이라고 들었어요. 생물다양성협약(Convention on Biological Diversity, CBD)이나 나고야의정서(생물다양성협약의 세 가지 목표 중 하나인 ‘공정한이익공유’를 달성하기 위한 국제적 규범을 규정해, 국제적으로 구속력을 가지는 법적 문서) 등 국제협약을 통해 생물자원을 국가의자산으로 만드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어요. 특히 2017년 발효된 나고야의정서에 따르면 다른 국가가 소유한 해양생물자원을 이용하려면 자원 제공국으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해요. 자원 이용에 따른 이익도 공유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각 나라는 생물자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서 해양생물 주권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아주 커졌죠.
우리나라 정부도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됐군요.
그렇죠. 해양생물자원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은 ‘이 해양생물이우리나라에 살고 있어요’라고 증명하는 일인데, 해양생물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중요하면서도 표현하기 참 어려운 업무예요. 이를 위해 ‘국가해양생물종목록집’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사는 해양생물이 맞는지 확인하고 입증해야 대한민국 해양생물자원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데 쓰이는 중요한 자료가 되거든요. 우리나라 해역에는 1만5010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학계에서는 3만 종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우리 자원관이 그 대표 주자로 한반도 해양생물자원의 가치를 지키고 있답니다.
“꺾이지 않는 도전 정신이 연구 성공의 실마리가 돼”
박사님은 해양식물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면서 해양수산부 장관 표창을 수상하기도 하셨죠. 10년 넘게 해양생물을 연구하면서 기억에 남는 업무도 있으실 것 같아요.
2017년부터 해양생물자원이 무단으로 반출되지 않도록, 해외로 반출할 경우 국가의 승인을 받도록 종을 고시하는 법이 생겼어요. 저는 ‘국외반출 승인대상 해양수산생명자원 지정 고시’의 목록을 만들어 해양수산부에 제출하는 업무를 맡았죠. 연구원으로서 다소 버거울 수 있는 일이었지만 법에 관심이 많아 즐겁게 마무리한 기억이 있네요. 처음엔 1127종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늘어 지금은 전자리상어, 짱뚱어, 고려홍어부터 제주바다뱀, 빛말미잘, 수풀산호 등 총 1720종의 해양생물이 지정됐답니다.
해양생물연구원으로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행하는 거죠. 연구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한 번 시도한 연구는 실패하더라도 그 원인을 분석하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거든요. 실패한 경험도 연구 성공의 키포인트가 되니까요. 한 우물을 깊게 팔 수 있는 끈기가 연구원에게 중요한 자질이 되는 이유입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해양생물을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에요. 이것을 구현하려면 인공지능 기술력과 함께 수많은 해양생물의 정확한 이미지 정보를 확보해야 하죠. 아직 계획 단계이기 때문에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연구가 완료된다면 꼭 를 통해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웃음) 그리고 연구 외에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을 지원하거나 민원인의 질의사항에 대응하고, 연구를 위한 행정절차를 밟는 등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하게 됩니다.
박사님이 개발할 ‘해양생물 렌즈’가 벌써 궁금해지네요.(웃음) 그런데 연구원이라고 해서 실험실에서 연구만 하는 것은 아니었군요.
그렇죠. 하지만 실험실에서 연구를 하기 위해 생물학이나 해양생물학 등을 전공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저 역시 해양식물을 전공했고요. 생물 관련 공공기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기간제로 일해본 경험이 있다면 공공기관 연구원이 되기에도 조금 수월할 거예요. 본인이 잘하고, 자신 있는 분야의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해양수산부 등 여러 정부기관과도 같이 업무를 하기 때문에 여러 분야에서 경력을 쌓을수록 유연하게 업무에 대처할 수 있거든요.
청소년 시절에 여러 방면에 도전해봐야 실제 연구원이 되어서도 수많은 연구 주제 사이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해 새로운 실험의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려면 호기심을 가지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하고 궁금해해야겠죠.
마지막으로 해양생물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들에게 ‘놀 거리’를 추천해주세요!
바다와 갯벌에서 체험활동을 꼭 해보세요. 내가 궁금해했던 생물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움직임을 관찰하고, 가능하면 살짝 만져도 보고요. 그러면 어느새 생물의 이름이나 행동양식이 저절로 이해된답니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바다와 갯벌에서 신나게 놀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의 전시관인 ‘씨큐리움’에 들러 해양생물의 다양성을 확인하는 시간을 가져보길 추천합니다.
전정아 MODU매거진 기자 jeonga718@modu1318.com
글 전정아 · 사진 바림 · 자료 제공 국립해양생물자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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