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만 남기고 22년 만에 전주시와 동행 끝낸 프로농구단 KCC
마케팅과 관중 동원력 등도 고려 됐을 듯…전북 프로스포츠단은 축구만 남아
전주시 "일방적 이전에 깊은 유감"…KCC "감내할 수 없는 상황" 우회적 비난
(전주=연합뉴스) 백도인 기자 = 프로농구 KCC의 연고지 이전으로 전북 전주와 22년간 이어져 온 동행이 막을 내리게 됐다.
프로야구단에 이어 프로농구단마저 짐을 싸면서 전북에는 이제 프로스포츠구단으로는 현대 축구단만이 남게 됐다.
KCC가 홈구장으로 써온 전주실내체육관을 둘러싼 갈등이 표면적 이유지만 기업의 마케팅 측면이 고려된 것 아니냐는 추론도 나온다.
"전주실내체육관 비워달라" 요구에 이전설 불거져
김승수 시장 재임시절 두어차례 불거진 KCC의 이전설은 이달 중순에 다시 갑자기 불거졌다.
전주시가 KCC에 홈구장으로 쓰는 전주실내체육관을 비워달라고 요청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면서다.
전주시는 체육관 부지를 소유한 전북대가 국책사업인 '캠퍼스 혁신파크 조성사업'을 위해 체육관을 2025년까지 철거하기로 했다는 점을 들어 이같이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주시가 약속했던 체육관 신축은 일러도 2026년에나 마무리될 예정이었다.
KCC 입장에서는 최소 1년 이상을 홈구장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할 판이었다. 프로농구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무례한 처사'라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홈구장 신축은 전주시가 KCC의 연고지 이전을 막기 위해 2016년께부터 적극적으로 추진해왔던 사업이다.
하지만 홈구장 신축은 기약 없이 미뤄졌고 7년이 지난 이달 초에야 공사가 발주됐다.
각종 행정절차 등이 늦어지면 2026년 완공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급기야 일부 언론을 통해 'KCC가 연고지 이전을 검토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왔고 30일 오전 KBL이 이사회를 열고 전격적으로 연고지 변경을 승인했다.
전주시는 뒤늦게 "체육관 철거 시기를 홈구장 신축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새 홈구장을 2026년까지는 차질 없이 완공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KCC의 마음은 떠난 뒤였다.
전주시 "떠나고 싶었던 터에 빌미 제공했다"
KCC의 연고지 이전은 이런 표면적인 이유 외에 기업의 마케팅적 측면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홈구장 사용에는 당분간 별문제가 없는 상태였다.
전주시가 체육관 철거 시기를 2026년 이후로 미뤘고 신축 구장도 2026년이면 완공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KCC의 연고지 이전설은 불거진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이 때문에 전주시 등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준 격이 됐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KCC가 마케팅 효과가 큰 대도시로 연고지 이전을 하고 싶은 터에 체육관 철거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빌미로 삼은 것이라는 해석이다.
관중 동원력에서도 전주시는 대도시에 비해 열세일 수밖에 없다.
KCC가 앞서 2016년에 연고지 이전을 심각하게 검토했을 때도 일각에서 비슷한 해석이 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1973년에 지어진 전주실내체육관의 시설 노후화와 공간 협소, 열악한 선수 대기실 등이 이유였다.
하지만 전주시가 이전을 만류하면서 홈구장 문제 해결을 약속했고, KCC도 팬들의 반발 등에 부담을 느끼며 잔류를 결정해 이전설은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당시 KCC는 새로운 연고지로 수도권의 수원 등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KCC가 이번에 최종 이전하기로 한 곳도 대도시인 부산이다.
팬들 맹비난…남은 프로스포츠단은 축구뿐
KCC의 이전 소식이 알려지면서 전주시 홈페이지는 팬들의 접속이 폭주하며 마비되다시피 했다.
전주시 홈페이지에는 오전에만 이와 관련한 댓글 수십 개가 올라오고 있다.
팬들은 전주시의 미온적인 대응을 맹비난하는 가운데 KCC의 속전속결식 이전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한 팬은 "KCC 이전은 창피한 일이고 전주시의 무능함을 보여준 것"이라며 전주시에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했다.
또 다른 팬은 "KCC 이전이 어떤 손익 때문에 이뤄진 것인지 궁금하다"고 했고, 한 시민은 시장의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한편 KCC의 이전으로 전북의 프로스포츠단은 현대모터스 축구단만 남게 됐다.
KCC 이전에 앞서 2000년 전북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단 '쌍방울 레이더스'가 해체됐다.
이후 전북도는 프로야구 제10구단 유치를 위해 힘을 모았으나 이 역시 실패로 돌아갔다.
전주시 "눈앞의 이익만 좇은 이전" 비난
전주시는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홈구장 문제를 빌미 삼아 이익만을 좇은 저급함을 보여줬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전주시는 KCC 이지스의 연고지 이전이 결정된 직후 입장문을 내고 "KCC는 언론을 통해 이전설을 흘리고 KBL 이사회에 연고지 이전 안건을 상정한 보름 동안 23년 연고지인 전주시와 팬들에게 어떠한 입장 표명도 없었다"며 "졸속적이고 일방적인 결정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전주시는 "KCC는 이전과 관련해 전주시와 협의는커녕 통보조차 없었다"면서 "시민, 팬과 동고동락한 시간은 눈앞의 이익만을 찾아 졸속으로 이전을 추진한 KCC의 안중에 없었던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전주KCC의 현재 홈구장인 전주실내체육관의 철거 시기가 2026년 이후로 연기됐고 복합스포츠타운에 건립할 새로운 홈구장과 보조경기장도 2026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명확히 밝혔다"며 "전주에 완전히 정착할 여건이 마련됐는데도 마치 짜놓은 각본처럼 이전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전주시는 "이는 전주시와 시민, KCC 농구팬을 우롱하는 처사로밖에 볼 수 없다"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KCC는 "22년간 응원해주신 전주 팬들에게 죄송하다"면서도 전주시의 소극적인 태도가 원인이었음을 내비쳤다.
최형길 KCC 단장은 "새 체육관을 저희(KCC)보고 직접 지으라는 요청이 들어왔고, 5월에는 전주시와 프로야구 KBO가 야구장 건립 활용 계획을 논의하는 것을 보고 '농구는 뒷전이 됐다'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면서 "원만히 수습하려고 인내하고 자제했지만 더 감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doin100@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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