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혈압이라니” 생애 첫 건강검진은 ‘軍신검’ [병역검사의 변신]

2023. 8. 3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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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판정검사 첫 건강검진 기회
“젊어서 괜찮은줄...결과에 충격”
청년 건강정보 공공데이터 제공
병역대상자들이 지난 18일 오후 서울지방병무청 병역판정 검사장에서 채혈을 하고 있다. 이상섭 기자
병역판정 검사장에서 심리검사를 받고 있는 모습 이상섭 기자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는데 고혈압이 있고 간수치도 좀 높다고 나왔네요. 당장 헬스장부터 끊어야겠습니다.”

김정열(가명, 19·경기 의왕) 씨는 병무청 병역판정검사 결과를 받아들고 다소 충격적이라며 앞으로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한번은 통과의례로 밟아야 하는 병역판점검사가 단순히 ‘군대를 가느냐 마느냐’를 가리는 ‘급수 매기기’ 차원을 넘어 생애 첫 건강검진의 기회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부분의 MZ세대들은 종합병원이나 건강검진센터가 아닌 병무청 병역판정검사장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지난 18일 찾은 서울지방병무청 제1병역판정검사장에는 신장과 체중 등 간단한 신체검사가 아닌 군 입대에 앞서 제대로 된 건강검진을 받기 위해 모인 청년들의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이날 서울지방병무청에서는 총 339명이 오전 8시와 오후 1시, 1검사장과 2검사장으로 나뉘어 병역판정검사를 받았다.

올해는 2004년 출생자와 앞서 검사를 연기한 21만1306명이 지난 2월 1일부터 오는 12월 22일까지 전국 14개 지방병무청 검사장에서 병역판정검사를 받게 된다.

간기능 검사에서 일부 수치가 기준치보다 높게 나오고 혈압도 정상범위를 벗어나 고혈압 진단을 받은 김 씨는 “오늘 병역판정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좀 충격적”이라며 “아무래도 나이가 젊고, 친구들 사이에서도 건강검진은 좀 나이 먹어서나 받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있어서 건강검진은 생각도 못해봤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여기 올 때도 별다른 생각을 안 하고 왔는데 군대에 가느냐 마느냐를 떠나 병역판정검사를 통해 ‘내 건강에 적신호가 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또 “앞으로 건강관리에 좀 더 신경 쓰고 잘 해야겠다”고 덧붙였다.

병역판정검사를 통해 본인도 몰랐던 건강 이상신호를 발견한 것은 김 씨만이 아니다.

30일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 2019년부터 올해 4월말까지 총 2236명의 병역대상자들이 병역판정검사에서 자신의 질병을 처음 알게 됐다.

발견된 질병은 척추측만증부터 당뇨, 사구체신염, 간염, 백혈병까지 다양했다.

최초 질병이 발견된 뒤 병역판정이 바뀌기도 한다.

병무청에 따르면 병역판정검사를 통해 최초 질병이 발견된 2236건 가운데 현역병입영 대상인 1~3급이 유지된 경우는 688건이었으며, 1342건은 4급 보충역, 199건은 5급 전시근로역, 그리고 7건은 6급 병역면제로 약 70%가 보충역 또는 면제 대상으로 판정받았다.

병역판정검사는 국민건강 차원에서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영양조사 건강검진 수진율에 따르면 지난 2001년 건강검진을 받은 성인은 47.5%였는데 2021년에는 67.7%까지 향상됐다.

그러나 19~29세의 건강검진 수진율은 2001년 36.6%에서 2021년 46.2%로 소폭 오르는데 그쳤다.

미취업 상태의 청년들이 건강검진 필요성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져 건강관리에 소홀한 측면이 있는 현실에서 병역판정검사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건강 이상신호가 없더라도 병역판정검사는 청년들에게 의미가 적지 않다.

이날 검사장을 찾은 윤승진(가명, 19·서울 송파) 씨는 “헌혈도 해본 적이 없어서 피검사 때 약간 긴장되고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제 몸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게 돼 다행”이라며 “현역판정을 받았는데 해병대에 지원하고 싶다”고 말했다.

우성한(가명, 19·경기 하남) 씨는 “오랜만의 피검사와 건강검진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긴장도 됐다”며 “검사결과를 놓고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는데 모두 정상이라고 말씀해주셔서 마음이 놓였다”고 했다.

건강검진으로 질병을 조기 발견만 해도 완치 가능성이 상당히 올라간다는 점에서 병역판정검사를 통한 예방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와 함께 병역판정검사 과정에서 축적된 청년들의 건강정보 데이터는 공공데이터 제공 제도를 활용해 의료, 제약 등 분야의 연구기관에 개방함으로써 전반적인 대한민국 국민건강 증진에도 일조하고 있다.

일례로 삼성서울병원 소화기내과 연구팀은 지난 2003~2019년 약 536만 건의 병역판정검사 기록 분석을 토대로 간수치 높은 젊은 남성이 늘어나고 비만과 고혈압 역시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또 삼성서울병원은 2022년 1월 ‘B형 간염관리 및 간암 예방 중재법 연구’에서 600만 건, 서울대병원은 ‘잠복결행 유병률 조사 연구’에서 25만 건 등 최근 3년 동안 2375만 건의 병역판정검사 데이터가 연구에 활용되기도 했다.

공공데이터는 내부 심의절차를 거쳐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걸러낸 뒤 연구기관 등에 제공된다.

병무청 관계자는 “병역판정검사 결과가 개인 차원에서 건강을 위해 활용되는 것을 넘어 의료, 제약 분야 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며 “앞으로도 병역판정검사가 청년들의 건강은 물론 대한민국 의학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도록 더욱 신경 쓸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대원·오상현 기자

shindw@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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