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돋보기] 이스라엘-리비아 외무 회동 후폭풍…미국이 골머리?

황경주 2023. 8. 3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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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외교부 장관이 외교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직무 정지를 한 나라가 있습니다.

북아프리카 리비아 얘기인데요.

리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 장관이 만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리비아 현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떤 속사정이 있는 건지 지구촌 돋보기에서 황경주 기자와 알아봅니다.

리비아에서는 외교부 장관이 이스라엘과 접촉한 일로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고요?

[기자]

리비아와 이스라엘의 외교 수장이 지난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그 파장이 일파만파 번지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리비아는 그동안 유대 국가인 이스라엘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지도 않았고, 최근 다시 격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국면에서도 이슬람 국가인 팔레스타인 편에 서 있죠.

이런 상황에서 양측 외교 수장이 만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리비아 여론이 들끓고 있는 겁니다.

[리비아 시민 : "솔직히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에 반대합니다. 이 유대인들은 우리의 적입니다. 그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쫓아냈고, 그들을 가차 없이 대했어요."]

리비아 정부는 결국 외교 장관의 직무를 정지하고 사실 관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여론의 거센 비판에 리비아 외교 장관이 튀르키예로 도피했다는 외신 보도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앵커]

그런데 양측의 만남을 공개한 게 바로 이스라엘이잖아요?

이렇게 파장이 큰 일을 일방적으로 공개하다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기자]

이스라엘이 "리비아와 역사적인 회담을 했다"며 회담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사태가 불거졌죠.

놀란 리비아 측이 "다른 모임 중 우연히 마주친 것"이고, "어떠한 논의도 없었다"고 해명했는데, 이스라엘 측은 "합의된 만남이었고 1시간 정도 면담을 했다"고 쐐기를 박았습니다.

그러면서 "회담 사실 공개는 사전에 합의된 내용"이라고 말했는데요.

이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거의 폭로하다시피 회담 사실을 공개한 데 대해선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옵니다.

이스라엘 야당 의원들은 "단기적인 정치적 이익을 위해 리비아뿐 아니라 나머지 이슬람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도 위태롭게 했다",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판단 실패"라고 비판했습니다.

[앵커]

이스라엘이 최근 아랍 국가들과 친해지려고 애를 쓰고 있잖아요?

이번 만남도 그 연장선에서 추진된 것 같은데,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 됐네요.

[기자]

지난해 말 들어선 이스라엘 네타냐후 정권은 역대 가장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죠.

팔레스타인과 이란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다른 아랍권 국가들과는 밀착해 두 나라를 압박하려는 모양새입니다.

특히 이란과 갈등의 골이 깊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관계를 정상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죠.

[베냐민 네타냐후/이스라엘 총리/4월 : "우리는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 정상화와 평화를 원합니다. 이는 아랍권과 이스라엘 사이 분쟁을 끝내기 위한 거대한 도약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아랍권에 뻗어오는 이스라엘의 손을 리비아가 맞잡은 이유는 뭘까요?

리비아에서는 2011년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휩쓴 민주화 운동, '아랍의 봄'으로 카다피 독재 정권이 무너졌지만, 아직까지도 내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유엔이 인정하는 리비아 통합정부는 군사, 경제적으로 서방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리비아는 "미국 우방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는 게 도움이 되리라 여겼을 거"라고 파이낸셜타임스는 분석했습니다.

[앵커]

중동에서 입김이 예전만 못한 미국도 우방인 이스라엘을 통해 대 중동 영향력을 되찾으려고 애쓰고 있잖아요.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심기가 편하지는 않을 것 같네요.

[기자]

중국이 이란, 사우디 등 주요 아랍 국가들과 가까워지면서 중동에서 미국이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죠.

그런만큼 역내 우방인 이스라엘의 행보가 미국에도 중요한데요.

미국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이번 사태에 대해 미국 정부가 이스라엘 정부에 항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두 나라의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노력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다른 아랍국가들과의 외교에도 도움이 안된다는 겁니다.

결국 미국의 안보 이익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고 매체는 전했습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렛대로 대중동 영향력을 되찾으려는 시도가 쉽지만은 않을 거란 전망도 나오는데요.

뉴욕타임스는 "최근 몇 년 미국은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노력했고 성과도 있었지만, 여전히 아랍권은 이스라엘에 깊은 적대감을 느끼고 있다는 걸 이번 사태가 보여준다"고 짚었습니다.

지구촌 돋보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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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경주 기자 (rac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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