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킹] 전 독립기념관장 "홍범도, 독립군 대표해 공산당 입당..독립군 생존 위해"

이은지 2023. 8. 30.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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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범도, 당시 임시정부-소련 비밀협정에 따라 소련 영토로 들어간 것
- 이념적으론 민족주의에 가까워

□ 방송일시 : 2023년 8월 30일 (수)

□ 진행 : 박지훈 변호사

□ 출연자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 홍범도 평전 저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지훈 변호사(이하 박지훈) : 국방부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을 검토하자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을 두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습니다. 실제 역사적 사실 어떨까요? 신흥무관학교 100주년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연결해서 이야기 좀 들어보겠습니다. 나와 계십니까, 관장님.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 / 홍범도 평전 저자(이하 김삼웅) : 예, 나와 있습니다. 

◇ 박지훈 : 최근에 국방부가 육군 사관학교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는데 국방부가 흉상 이전 추진하는 배경 어떻게 보십니까?

◆ 김삼웅 : 윗선의 암묵적인 지시가 있었거나 아니면 당사자의 시대 착오적인 과잉 충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 박지훈 : 윗선 지시 아니면 장관이나 이 사람들의 잘못된 판단이다. 이렇게 보신다고요,

◆ 김삼웅 : 예.

◇ 박지훈 : 관장님께서 홍범도 평전,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썼잖아요. 어떤 분이시죠? 홍범도 장군.

◆ 김삼웅 : 우선 홍범도 장군은 머슴 출신입니다. 아버지도 머슴이었고 본인도 젊었을 때 머슴을 했어요. 그러다가 일제가 침략을 하기 시작하면서 산에 들어가서 포수 했습니다. 

◇ 박지훈 : 사냥꾼, 포수.

◆ 김삼웅 : 그럴 때 일제가 포수들뿐만 아니라 모든 조선 사람들 한국 사람들의 무장을 해제했어요. 그럴 때 홍범도 장군은 거부하고 백두산으로 들어가서 후치령 전투 같은 것을 왜군을 격파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장남이 일본군과 싸우다가 전사를 당했고 부인은 붙잡혀서 고문사를 당했어요. 나중에 둘째 아들도 이제 병사를 했습니다마는 그리고 이제 함경도 지방에서는 여러 차례 국경선을 넘나들면서 왜군들을 물리치기도 했고 중요한 것은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로 옮겨가서 신채호 선생 이런 분들하고 의병 전쟁을 많이 하고 그리고 1918년 우리 독립운동가 52명이 독립운동을 그때 참여를 했고 그리고 이제 저기 1920년에 봉오동

◇ 박지훈 : 유명한 봉오동 전투 대첩

◆ 김삼웅 : 청산리 대첩. 이것은 우리나라가 임진왜란 이래 숱하게 일제로부터 당해왔는데 처음으로 홍범도 장군이 지휘한 우리 독립군이 일제를 물리친 대첩

◇ 박지훈 : 정규군이 우리 군인이 이긴 전투 아니겠습니까?

◆ 김삼웅 : 그러니까 일본의 최첨단 정예 부대를, 우리 신흥무관학교 선생님들도 더러 있었습니다마는 어찌 보면 농촌 농민 선생님들이 제대로 훈련도 받지 않은 그런 농민군들로 독립군을 만들어 가지고 일본 정규군이 물리친 대첩이었거든요. 

◇ 박지훈 : 그런 사실은 내용들은 우리 국민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데 지금 국방부에서 이 홍범도 장군 흉상을 좀 부적절하다. 이전하려는 이유 중에 하나가 자유시 참변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가했다. 이 부분이거든요. 이게 사실인 겁니까?

◆ 김삼웅 : 어느 부분은 사실이고 또 많은 부분은 오해된 부분이 있습니다.

◇ 박지훈 : 그럼 사실과 또 오해된 부분 좀 말씀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삼웅 : 우리 신흥무관학교 출신들을 포함해서 독립군들이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대첩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일제가 정규군을 더 수만 명을 동원해가지고 추적에 나선 겁니다. 그때 두 대첩에 성공했던 우리 독립군들은 러시아하고 중국의 국경지대인 이르쿠츠크 쪽으로 이동을 했어요. 그래서 이제 그랬는데 러시아 그때는 소련군이죠, 소련군이 무장 해제를 시킨 겁니다. 우리 독립군을. 이유는 일제 병기, 또 소련계 병기, 체코계 병기 이렇게 우리들이 우리 독립군이 각종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일단 회수를 하겠다. 그러니까 우리 무장 독립군들은 군인들은 생명이잖아요. 무기가. 그런 과정에서 우리 독립군끼리 이견이 발생한 겁니다.

◇ 박지훈 : 무기를 줘야 된다 주지 말아야 된다. 이런 이견이 생겼다는 거죠.

◆ 김삼웅 : 예, 그러니까 우선 청산리 대첩만 하더라도 홍범도 장군 부대가 있었고 다른 부대들도 연합부대였거든요. 그래서 이제 연합부대다 보니까 그 이후에 행동이 다르고 목표도 다르고 하나의 목표는 조국 독립이지만 방향이라든가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난 게 이게 자유시 참변인데.

◇ 박지훈 : 그 당시 홍범도 장군의 역할은 어떤 거였습니까? 그러면 이렇게 문제 삼는 게.

◆ 김삼웅 : 홍범도 장군은 일단 그 무장을 해제하고 소련군의 새로운 무기를 지원받자.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그 이전에 이 부분은 학자들이라든가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간 것 같은데 1920년 여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상해에 있을 때죠. 임시정부하고 소비에트 노동정부, 그때는 소련이라고 안 하고 소비에트 노동정부라고 그랬습니다. 소비에트 노동 정부 간의 비밀 군사협정을 맺었어요. 임시정부가. 내용 중에는 한국 독립군 부대가 시베리아에 주둔할 때 소련에서는 이를 승인하고 무기라든가 장비를 지원해 준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임시정부의 한국 독립군이 소련군의 군사 명령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시베리아 침략하는 적군, 일본군이죠. 적대국에 대해서는 공동으로 참전한다. 이런 임시정부와 소비에트 정부 간에 군사협정이 있었기 때문에.

◇ 박지훈 : 이 협정 얘기를 저도 사실은 처음 듣는 것 같은데 거의

◆ 김삼웅 : 이건 잘 안 알려져 있죠.

◇ 박지훈 : 소련 당시 소비에트하고 우리 임시정부하고 군사협정을 맺었다는

◆ 김삼웅 : 네, 비밀리에 맺은 겁니다.

◇ 박지훈 : 그 와중에 지금 홍범도 장군도 관련성이 있는 거네요. 그러면.

◆ 김삼웅 :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 무장부대가 소련 영토 안으로 들어간 거죠. 그런데 이제 그때만 해도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나고 시베리아 쪽에는 아직도 정비가 덜 된 그런 상태였어요. 그런 과정에서 우리끼리 이제 우리 독립군끼리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는데 그러면 왜 홍범도 장군이 재판장을 맡았느냐. 여러 장군들이 있었는데. 홍범도 장군은 포수 역할을 할 때부터 멧돼지라든가 짐승을 잡으면 똑같이 부하들하고 똑같이 나눴어요. 아주 정의로운 장군, 일본 사람, 일본 군인들한테는 '나는 홍범도 장군' 그런 별명이 붙었고 우리 독립군, 우리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공정한 장군' 그런

◇ 박지훈 : 그래서 재판장을 맡게 됐다. 이 말씀이군요.

◆ 김삼웅 : 맡았고 그리고 그 엄청난 비극 사태였는데도 단 몇 사람에게만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3년, 2년, 6개월 1천부에서 7명이에요. 홍범도 장군을 왜곡하고 욕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마치 홍범도 장군이 그 재판 과정에서 수백 명을 유죄 판결에서 죽인 걸로 생각을 그렇게 얘기를 하던데 그것은 경신참변 때 우리 독립군을 도와줬다고 해서 민간인들을 학살할 때 수백 명을 일본군을 죽인 거거든요.

◇ 박지훈 : 다른 거군요. 그거랑

◆ 김삼웅 : 경신참변 때 일본군이 죽인 것을 마치 홍범도 장군이 그렇게 학살한 걸로 왜곡을 하더라고요. 이것 참 무지한 언동입니다.

◇ 박지훈 : 1922년도에 모스크바에 열린 극동 민족대회에 홍범도 장군이 참석을 했잖아요. 소련 입국하기 위해서 쓴 서류가 있던데 거기 보면 직업이 '의병' 목적이 또 희망이 '고려 독립' 이렇게 써놨더라고요. 이거는 어떻게 봐야 됩니까? 증거 서류라고 볼 수 있습니까?

◆ 김삼웅 : 그때 홍범도 장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한 50명 60명 정도가 심지어는 국내에서까지 파견을 했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이제 그때 소련 소비에트의 실력자였던 레닌이라든가 트로츠키 같은 사람이 가장 우대했던 사람이 일본한테 러시아 전쟁 때 러시아가 얼마나 참패를 당했습니까? 그런데 자기네들을 대신해서 우리 홍범도 장군이라든가 또 우리 독립군들이 일본군을 통쾌하게 무찔렀다고 해서 트로츠키라든가 레닌이 극진하게 대접을 하면서 특히 레닌은 자기 이름이 새겨진 권총을 주고 

◇ 박지훈 : 그렇죠, 레닌이 건총 선물했다는 얘기는 아주 유명합니다.

◆ 김삼웅 : 이걸 가지고 또 시비가 많이 붙었는데 그리고 이제 약간의 루브르화도 지원을 받았어요.

◇ 박지훈 : 돈도 받았다. 

◆ 김삼웅 : 그 돈으로 이제 러시아 쪽으로 다 시베리아 쪽으로 귀환한 홍범도 장군은 농토를 구입을 한 겁니다. 자기를 따르는 병력이 아직도 한 수백 명이 있고 또 이주한 우리 농민들이 농사를 지어서 수확을 하려고 하면 관리들이 와서 뺏어버리고.

◇ 박지훈 : 또 다시 한 번 돌아가서 육군 사관학교 얘기를 좀 다시 해보면 육군 사관학교 정체성하고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육사의 시작이 어디입니까?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로 봐야 됩니까 신흥무관학교로 봐야 됩니까?

◆ 김삼웅 : 근데 그전에 잠깐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 당원이 됐다는 그 부분이 지금 제일 핵심 이슈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 박지훈 : 가장 문제 제기되고 있어요.

◆ 김삼웅 : 그러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잠깐 설명을 드릴게요.

◇ 박지훈 : 예 말씀 주십시오. 

◆ 김삼웅 : 그렇게 해서 이제 그 홍범도 장군이나 우리 독립군들은 이제 어디서 먹고 살면서 전쟁을 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농토가 필요했죠. 그래서 그 소련에서 받아온 돈으로 야산이라든가 늪지 이런 것을 개간을 해서 농촌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수확을 할 때쯤 되면 그 지역의 토착이라든가 관리들이 뺏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농민들 우리 지도자들 중에서 홍범도 장군이 유명하니까 많이 러시아 쪽에서도 알려져 있으니까 그런 공산당에 입당을 하십시오. 

◇ 박지훈 : 그래서 입당을 한 거다.

◆ 김삼웅 : 입당을 했고 당 공산당 입당한 입당 원서라든가 번호도 있습니다. 근데 그런 것들이 지금에 와서 표창을 하면 해야지 시비거리가 될 수가 없잖아요. 둔전병을 하자는 것입니다.

◇ 박지훈 : 둔전병하려고 입당한 것이다.

◆ 김삼웅 : 그쪽에 관리들이 농작물을 다 뺏어버리니까 그것을 막기 위해서 우리나라도 자유당 때 자유당 당원증이라든가 박정희 정권 때 공화당 당원증이면 시골 이런 데서는 상당히 통했잖아요.

◇ 박지훈 : 그런 의미에서 했던 것이다.

◆ 김삼웅 : 그런 것과 연상을 하면 될 겁니다.

◇ 박지훈 : 사상이 그래서보다는 이런 필요에 의해서 입당을 한 것이다. 이렇게 보시는 거군요.

◆ 김삼웅 : 홍범도 장군은 이념적으로 공산주의에 매몰된 그런 분이 아니에요. 오히려 성향을 따진다고 그러면 그 민족주의, 그러니까 블라디보스토크 이런 데에서 체류할 때 대종교라든가 민족종교, 관학 회복 이런 데 막대한 자금을 지원을 했어요. 단군을 구심점으로 삼아야 된다. 그런 분을 이제 와서 이순신 장군 이래의 대첩을 이룬 그런 장군을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붙인다는 것은 얼마나 무지한 행태인지 제대로 편견 한 권이라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던 사람들 아닌가 싶습니다.

◇ 박지훈 : 한 1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어서요. 지금 좀 전에 2018년도 이 흉상을 만들면서 신흥무관학교가 육사의 뿌리다. 이렇게 좀 문재인 정부 때 얘기를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또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이게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뿌리로 봐야 될지 이 부분만 좀 짧게 한번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삼웅 : 원래는 우리가 이제 독립이 해방이 됐으면 의병이라든가 광복군이라든가 독립군의 뿌리를 육군 사관학교에서 했어야 되는데 미 군정 시절이고 하니까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를 뿌리로 해와서 그렇게 최근까지 이어져 왔죠. 그리고 그 출신들이 남조선 국방경비사관학교에 들어간 사람들은 일본군이라든가 만군 출신들이 자신의 신분 세탁을 위해서 그러니까 친일파들이 자기 신분 세탁을 위해서 들어갔던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 중에 하나가 박정희였는데 그런 세력들이 집권을 하고 또 유지를 오랫동안 하다 보니까 마치

◇ 박지훈 : 알겠습니다.

◆ 김삼웅 : 육군 사관학교는 우리 광복군이나 독립군

◇ 박지훈 : 그게 뿌리가 돼야 된다 이 말씀이시네요.

◆ 김삼웅 : 착각을 하고 있는 거죠. 역사 왜곡이죠.

◇ 박지훈 : 시간이 다 돼서 다음에 한 번 또 좀 많은 말씀을 좀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오늘 여기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김삼웅 : 예, 감사합니다.

◇ 박지훈 :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과 함께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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