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집중] 홍범도 평전 저자 "흉상 이전? 막돼먹은 국방부.. 차라리 장군 돌려보내라"
-국방부, 성스러운 독립운동사 근본 함부로 훼손.. 장군 난도질하고 매도
-공산당 가입? 표면적으로 맞지만 소련 무력 이용해 일제 침략 맞서는 복안
-자유시 참변? 국방부 문서 유치찬란하고 치졸.. 참변 당일 거기 없었고 돌아와서 수습
-재판관? 자청해서 했고 생포된 독립군 석방시키려 노력한 것
-이력서에 직접 기술? 사실 무근.. 서류 직접 봤는데 어디도 그런 내용 없어
-빨치산? 당시 볼셰비키 군대는 전부 빨치산.. 공비와 개념 자체가 달라
-서훈 박탈? 불경스럽기 짝이 없어.. 공로 너무 위대해 중복 서훈 한 것
-흉상 이전? 차라리 녹여서 땅에 묻거나 장군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라 이동순>
■ 방송 : MBC 라디오 표준FM 95.9MHz <김종배의 시선집중>(07:05~08:30)
■ 진행 : 김종배 시사평론가
■ 대담 : 이동순 시인 (<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
☏ 진행자 > 시선집중 3부의 문을 열겠습니다. 육사 교정 안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는데요. 흉상을 이전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쪽의 논리는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이력, 바로 이걸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게 얼마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건지 그 다음에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되는 건지 이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 한 분을 전화로 만나볼 텐데요. 홍범도 장군 평전을 쓴 바 있고요. 관련 연구를 42년 동안 진행해 온 분입니다. 시인이시기도 한데요.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 전화로 연결하겠습니다. 나와 계시죠?
☏ 이동순 > 네, 안녕하세요. 이동순입니다.
☏ 진행자 > 안녕하세요. 작가님. 작가님의 할아버님이 독립운동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 이동순 > 네, 이명균 의사라고요. 경상도 북부지역에서 군자금 모집을 하다가 체포되어서 대구형무소에서 고문 받다가 돌아가셨죠.
☏ 진행자 > 그러셨구나. 그러면 말 그대로 독립운동가의 후손이시기 때문에 또 홍범도 장군 평전의 저자이시기도 하고 특별한 시선으로 지금 논란을 지켜보고 계실 것 같은데 총평을 먼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지켜보고 계십니까?
☏ 이동순 > 참 기가 막히는데요. 우리나라에 정말 성스러운 독립운동사의 근본을 지금 함부로 손을 대서 훼손하고 있는 이 무참한 현실을 보면서 이처럼 불경스러운 일이 과거에 어떻게 어디 있었나, 손을 댈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온몸을 바쳐 전 가족까지 구국 활동에 바친 홍범도 장군을 왜 이렇게 난도질하고 매도를 해대는가. 현양을 더 해도 부족한데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만약 철거 따위의 폭거를 앞으로 저지르게 된다면 현 정부가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제가 걱정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지금 오늘 작가님을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하는 이유가 주로 국방부에서 내세우고 있는 논리에 대한 검증이 필요해서인데요. 하나하나 여쭤볼게요. 작가님. 일단 먼저 홍범도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 가입한 건 맞는 거죠?
☏ 이동순 > 표면적으로는 맞죠.
☏ 진행자 > 공산당 가입에 어떤 차원으로 이해해야 되는 겁니까?
☏ 이동순 > 홍범도 장군의 평생소원이 고려독립 대한독립운동이고 빼앗긴 조국의 주권을 찾는 일인데요. 공산당에 가입한 것도 그 당시에 소련의 무력을 활용해서 이용해서 일제 침략에 맞서 싸우겠다는 그런 복안을 갖고 계셨습니다.
☏ 진행자 > 그런 차원에서 소련의 힘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이제 접근했다라는 겁니까?
☏ 이동순 > 네, 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국방부가 가장 크게 지금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게 이른바 자유시 참변인데요. 1921년 6월에 러시아 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우리 독립군을 400~600명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돼 있다, 이런 주장인데요. 홍범도 장군은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 이런 점도 함께 지적하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봐야 되는 겁니까?
☏ 이동순 > 제가 국방부 문서를 봤는데 너무 유치찬란했습니다. 어떻게 한 정부의 부서를 대표하는 기관이 이렇게 치졸한 문장을 쓰고 있는지 누가 작성했는지 굉장히 의문이 가고요. 그리고 먼저 몰살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건 전혀 틀린 얼토당토하지 않은 말입니다.
☏ 진행자 > 잠깐만요. 작가님. 죄송한데 일단 자유시 사건이라고 하는 게 뭐예요? 일단 설명 부탁드릴게요.
☏ 이동순 > 봉오동 청산리 전투에서 엄청나게 일본 정규군을 대파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일본군은 그냥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함경도 지역에 사단급 병력을 총동원해서 만주일대에 무장 독립 단체를 모조리 파멸시킬 계획으로 만주로 출병을 시키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만주지역에 약 16개 독립운동 군소단체들이 연합해서 일단 우리가 러시아로 피신을 하자, 이래가지고 먼 길을 걷고 걸어서 풍찬노숙하면서 아무르강을 건너갔던 거죠. 건너간 그곳이 바로 스보보드니라고 하는 곳인데요. 우리말로 번역하면 자유라는 뜻입니다. 이 자유시에 약 한 1700명 가량이 도착을 했는데 총기를 휴대한 군인들이 자유시로 진입하니까 스보보드니 시민들이 깜짝 놀라고 지역에서도 불안감을 가졌죠. 여러 가지 안전사고도 위협이 되고 해서 러시아 측에서 총기를 반납하는 게 좋겠다. 그리고 귀하들은 독립군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러나 남의 나라에 무단으로 지금 들어와 있는 거류민이다. 이런 통보하면서 무기를 반납하라고 하니까 우리 독립운동 전체 조직이 두 패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러면 기왕 소련에 왔으니까 우리가 무기를 일단은 반납하자라는 측과 그 다음에 무슨 말이냐 우리는 군인이기 때문에 끝까지 무기를 반납할 수 없다, 이렇게 막 팽팽하게 이런 대립은 나중에 이념적 대립으로 갈라치기가 되어서 결국은 소련 홍군 측에서 무기반납 지지파를 앞세워서 반대파를 공격한 것이 바로 자유시 참변이죠.
☏ 진행자 > 그럼 이때 홍범도 장군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 겁니까?
☏ 이동순 > 처음에는 무기는 우리가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하다가 방침이 중간에 바뀌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계속 무기반납을 거부하는 쪽으로만 고수한다면 소련 홍군 측에서 뭔가 아주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은 불안한 낌새가 있다. 무기는 일단 반납하는 게 좋을 것 같다라고 방침이 바뀌어졌고, 여기에서도 갈등과 내분이 생긴 것 같습니다.
☏ 진행자 > 그래서요.
☏ 이동순 > 그래가지고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던 그 당시에는 이르쿠츠크로 잠깐 무슨 회의에 참석한다고 떠나셨는데 바로 그날 사태가 일어났고,
☏ 진행자 > 잠깐만요. 그러면 참변이 발생한 그 시점에 자유시를 떠나 있었다라는 겁니까?
☏ 이동순 > 네, 거기 계시지 않았습니다. 현장에. 그래서 그 소식을 듣고 황급히 와보니까 길가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어마어마한 동족상쟁이 타국에서 펼쳐졌죠. 그래서 통곡하면서 뒷수습을 시신을 땅에 묻고 황급히 뛰어다니면서 현장을 정리하고 나중에 재판관이 되기도 했습니다. 600명이 생포가 되었는데요. 한 140명 가량이 전사하고 600명 가량이 생포가 되었는데 생포된 감옥에 갇힌 독립군들을 죄의 경중을 가리는 재판관으로 스스로 자청해서 참석하셨는데 그 이유는 어떻게든지 석방시키려는 그러한 혼신의 노력을 당신이 하시겠다 이래가지고 했고, 그래서 최종적으로 한 30명이 감옥에 갇히고 나머지는 다 석방이 됐죠.
☏ 진행자 > 그런 일이 있었고. 근데 또 한 가지 홍범도 장군이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 참변 관련 내용을 직접 기술했다, 이런 주장도 있던데요.
☏ 이동순 > 그거는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고요. 그 서류를 저도 봤습니다만 그 어디에도 그런 내용이 담겨져 있지 않고 홍범도 장군은 긴 문장을 쓰실 능력이 없는 분입니다. 아주 고려독립 의병대 38년 28년 이런 식의 짧은 문장은 작성하실 수 있어도 무슨 내용을 길게 무엇을 쓰고 하는 그런 문장 구사 능력이 없으셨고 또 그거는 누가 조작을 해낸 것인지 홍 장군이 그런 걸 썼다라고 하는데 그거는 전혀 사실무근이죠.
☏ 진행자 > 사실무근이다.
☏ 이동순 > 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그 다음에 국방부가 밝힌 또 하나가 뭐냐 하면 홍범도 장군이 1922년 레닌으로부터 권총, 상금, 친필 서명된 조선 군대장 증명서를 접수했고 1930년대에 작성한 이력서에는 자유시 사태 보고를 위한 한인 빨치산 대표 자격으로 레닌을 만나러 모스크바에 갔다고 돼 있다, 이렇게 주장을 한 건데요.
☏ 이동순 > 1922년에 모스크바에서 극동피압박민족대회가 열렸거든요. 이때 홍범도 장군이 의병대장 독립군 대장을 하셨다는 그러한 자격으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영하 20도 추위에 모스크바에서 호텔에 묵고 있을 때 크렘린에서 아주 비밀 연락원이 와서 레닌 동지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신다, 조선의 전설적인 독립투사가 모스크바에 왔다고 하니 면담을 하시고 싶어 하시니까 즉시 같이 가시면 좋겠다. 이래가지고 불려갔고 그래서 레닌이 정말 활짝 웃으면서 홍 장군을 껴안으면서 환대를 했고 말로만 듣던 전설적인 분을 만나서 너무 기쁘다. 그러면서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의 격전의 과정을 일일이 묻고 막 즐겁게 서로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고요. 그 대화를 끝내고 난 다음에는 귀한 걸음을 해주셨으니까 제가 격려 차원에서 선물을 드리고 싶다. 그래서 격려금으로 한 100루블, 그 다음에 황금빛으로 도금이 된 권총과 권총집, 그리고 러시아의 군복, 장교들이 입는 군복 모자까지 한 세트를 방문 기념 선물로 준 것이고요. 무슨 그것이 대단한 의미가 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조선의 위대한 독립투사를 영접하면서 받은 그러한 기념물에 불과하죠.
☏ 진행자 > 국방부가 또 하나 빨치산 가입 문제도 거론하던데 이건 어떻게 봐야 되는 겁니까?
☏ 이동순 > 결정적인 것이 빨치산의 개념 문제인데요. 우리가 지리산 빨치산 공비 이러면 그 개념과 인민군들이 지리산 깊숙이 숨어들어서 끝까지 활동하다가 파멸되었겠죠. 그렇지만 러시아에서 빨치산이라고 하는 것은 제정러시아 정부의 군대와 싸우던 모든 볼셰비키 군대를 전부 빨치산이라고 그랬습니다.
☏ 진행자 > 파르티잔이라고 해서 비정규군.
☏ 이동순 > 파르티잔이라고 하는 영어식 단어를 북한에서 우리말로 바꾼 게 빨치산인데 굉장히 어감이 뭔가 약간 흉흉한 느낌이 있죠. ‘빨’자가 들어가니까 빨갱이 이런 어감이 비슷하니까 혐오감을 주는 단어가 되고 말았는데, 사실 이 빨치산이라는 말은 그 당시 1920년대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에 소속되어서 싸우던 모든 유격대를 빨치산이라고 했고, 홍범도 장군을 빨치산이라고 불렀던 것은 조선독립군 제국주의의 어떤 고통을 받는 민중을 구출하기 위해서 노력했던 항일유격대 이런 뜻으로 쓴 것이니까 거기에 대해서 절대 오해가 있거나 아니면 무슨 지리산 빨치산과 동급으로 해석하는 것은 정말 금물이죠.
☏ 진행자 > 알겠습니다. 근데 작가님 1921~1922년, 이 시점에서 소련군 홍군이죠. 당시 홍군이라고 했는데 홍군하고 일본군이 교전 상태에 있었습니까, 어떤 상태였습니까?
☏ 이동순 > 일본이 연해주 지역에 출병을 해가지고 요소요소에 군부대를 주둔시키고 있었고요. 그리고 틈만 나면 우리 대한독립군들의 숙소를 공격한다거나 그런 일들이 있어서 소련 정부 측에서는 일본군의 진출에 대해서 이것이 더 확장되거나 더 깊숙이 침투해 들어올 것을 굉장히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불안감 때문에 조선독립군들에 대한 어떤 뭐랄까 반색하는 그런 느낌이었고 가급적 빨리 돌아가 줬으면 좋겠다라는 이런 기색이었죠.
☏ 진행자 > 전면전으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군사적 대치 상태에 있었고.
☏ 이동순 > 그렇습니다.
☏ 진행자 > 그 다음에 아주 소규모의 어떤 우발적인 충돌이나 이런 것들은 나타나는 시기였다, 이렇게 이해하면 되는 건가요?
☏ 이동순 > 그렇죠. 독립군 부대를 공격해서 4월 참변을 일으킨다거나 하는 전부 우리 조선독립군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 진행자 > 총괄 정리 차원에서 작가님께 이렇게 여쭤볼게요. 홍범도 장군은 공산주의자입니까, 아닙니까?
☏ 이동순 > 공산주의자가 아닙니다. 공산당에 입당은 했지만 홍범도 장군은 포수 출신이었고 무슨 막스레닌주의의 책을 읽으신 것도 아니고 무슨 박헌영이라든지 이동휘 같은 모스크바에 유학을 하고 돌아온 공산주의자와는 전혀 다른 심정적으로 러시아에 살았었고 그냥 거기 있으면서 분위기에 따른 그러한 생활들, 예를 들면 연금을 받기 위해서 입당원서를 내야 된다라든지 기타 여러 가지로 해서 거기 살면서 받아들인 그런 형식일 뿐이지 홍범도 장군이 무슨 공산주의자로 활동을 한 기록이 어디에 있는지 한번 내놓아 보라고 하시죠.
☏ 진행자 >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 점은 어떻게 보세요. 지금 보훈부는 이중 서훈, 중복 서훈 문제. 건국훈장 대통령장도 받고 대한민국장도 받은 이 중복 서훈 문제를 언급하면서 서훈 박탈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이동순 > 너무 불경스럽기 짝이 없는데요. 중복 서훈을 받게 된 배경은 홍범도 장군의 이력이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 그리고 그 두 아들과 아내까지도 나라에 바친 참 대단한 구국투혼을 높이 현양하고 기리기 위해서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한 번 서훈을 했었고, 문재인 대통령 시절에 또 대통령장으로 서훈을 했는데 중복 서훈을 한 이유는 너무 그 공로가 위대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격살도 대단히 위대하고 참 불멸의 투혼이지만 어떻게 보면 안중근 의사의 활동보다도 더 한 수 위에 한 단계 위의 어떤 공로자 라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 감히 홍범도 장군에 대해서 무언가 흉상을 철거하느니 마느니 하는 이런 돼먹지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이 현실이 개탄스럽습니다.
☏ 진행자 > 알겠습니다. 한 1분 정도 남았는데요. 작가님. 흉상을 철거하려고 하는 육사나 국방부, 아니면 더 나아가서 정부를 향해서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 이동순 > 그런 뜻을 가지고 있다면 흉상 전체를 아예 녹여서 땅에 묻어버리시거나 홍범도 장군을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려 보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참 대단한 분을 카자흐스탄에서 고독하게 살다가 아주 정말 어렵게 어렵게 귀국하신 어른을 이렇게 모욕을 주고 땅에 팽개치고 손상을 준다면 이것은 우리 후손들로서 있을 수가 없는 일이죠. 아무리 막돼먹었다 하더라도 이것은 있을 수가 없는 짓이라고 여깁니다.
☏ 진행자 > 홍범도 장군의 말년을 보면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의 피해자이시잖아요. 사실은. 장군님은.
☏ 이동순 > 그럼요.
☏ 진행자 >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작가님.
☏ 이동순 > 네, 감사합니다.
☏ 진행자 > 지금까지 홍범도 장군 평전을 썼던 이동순 영남대 명예교수였습니다.
[내용 인용 시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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