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치의 배경 '끄라비'에서 한 여름밤의 추억 [이환주의 내돈내산]
여성의 가슴을 닮은 숨겨진 카페 '쿠언놈싸우'
1만2000원에 즐기는 무제한 카야킹 '클롱룻'
오션뷰와 함께 즐기는 술과 음료 '리브 비치 클럽'
끄라비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 '비치(2000년)'의 배경 장소로도 유명하다.
엄밀히 말해 영화의 배경은 끄라비 인근에 위치한 '피피섬'이지만 '피피섬'은 끄라비와 푸껫에서 모두 섬 투어로 갈 수 있는 근교 섬이다. 끄라비 여행의 백미 중 하나는 인근에 위치한 섬 투어인데 가장 유명한 피피섬을 포함해 인근 섬을 도는 투어, 끄라비 남부의 라일레이 해변과 프라낭 비치를 둘러보는 코스, 홍섬을 포함한 인근 섬 여러곳을 보는 코스 등이 있다. 섬투어 대부분은 열대어와 함께 헤엄치며 스노클링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포함된다.
끄라비를 처음 간다면 보통 '아오낭 비치' 근처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다. 추천 장소를 꼽으라면 끄라비 시내에서 좀 떨어진 '에메랄드 풀'과 인근의 '온천(핫 스트림)'이 첫 번째다. 두 곳과 함께 '호랑이 사원(왓 탐 쓰아)'을 둘러보면 하루 일정으로 충분하다.
영화 비치의 네이버 소개글에는 "리차드(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현실적이고, 새로운 상황 또는 낯선 사람들과 맺어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로 시작한다. 여행을 떠나는 모든 이들 역시 리차드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끄라비에서의 첫날 동행이 돼준 태국 현지 친구 미성은 그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와 찍은 사진과 함께 짧은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태국어로 적혀 있어 번역기를 돌렸더니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왔다. "한국 남사친, 38살 싱글. 일할 수 있어. 절약할 돈이 있어. 좋은 성격과 친절. 만나실분 메시지나 연락처 남겨주세요"
끄라비에서의 둘째 날부터는 새로운 동행이 생겼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두 번째 끄라비 여행은 오토바이를 빌려 끄라비의 이곳 저곳을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새로운 상황 또는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정해진 계획보다 더 짜릿하다.
태국 사람들은 보통 현지 이름과 함께 친구들끼리 통하는 '닉네임'으로 서로를 부른다.
미성의 소개로 알개된 '보우(활)'는 끄라비 여행 둘째날부터 동행을 해주었다. 끄라비 시내에서 차로 40분 정도 거리 북부 지역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하는 30대 중반 여성이었다. 보우는 오전 10시쯤 차를 몰고 내가 묵고 있는 숙소로 찾아왔다. 봉지 한 가득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열대 과일인 '망고스틴'을 건네는 마음이 고마웠다. 우리는 간단하게 근처 현지 식당에서 누들과 태국식 덮밥으로 요기를 하고 첫 목적지인 '쿠언놈싸우(Kuan Nom Saow Viewpoint)'로 향했다.
가는 길에 보우의 추천으로 현지인들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23 커피 로스터스' 카페에 먼저 들렸다.
스타벅스 리저브처럼 고객이 직접 원두를 선택할 수 있는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이었다. 식당 직원이 다양한 커피와 메뉴에 대해 길게 설명해 줬지만 태국말이라 잘 알아들을 순 없었다. 열대 과일 '리치'가 들어간 아이스 커피를 주문했다. 작은 카페였지만 주인장이 직접 원두를 로스팅하는 나름 커피에 진심인 가게처럼 보였다. 건물 한 켠에는 박물관에서나 볼 법한 녹슨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이어 구글맵에 끄라비 숨겨진 카페 명소인 '쿠언놈싸우'로 향했다. 전날 갔던 경치가 멋졌던 '카오통힐' 카페와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다. 차이가 있다면 '카오통힐' 카페는 좀 더 편리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바다뷰 카페였다. 반면 '쿠언놈싸우'는 더 은밀하고 가정집 같은 느낌의 정글(산)뷰 카페였다. 구글맵 목적지가 정확하지 않아 차를 돌려 안내판을 보고 다시 들어가야 했다. 길이 깊고 험해 카페에서 600m 떨어진 곳에 임시로 차를 주차하고 한동안 언덕길을 걸어 카페에 도착했다.
높은 언덕에 있는 카페는 3~4명의 손님을 빼고는 매우 한적했다. 'ㄱ'자 모양의 데크에서 음료를 시켜 끄라비 정경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음료 잔의 모양이 여성의 몸을 닮아있었는데 나중에 그 이유를 알았다.
보우는 "카페의 이름인 '쿠언'은 '언덕', '놈'은 '가슴', '싸우'는 '소녀'"라고 설명해 줬다. 실제로 카페의 인증샷 명소에는 여성의 가슴을 닮은 커다란 두 개의 봉우리가 보였다. 카페 뒤편으로 난 작은 길에는 캠핑을 즐길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실제로 구글에 해당 카페를 검색하면 '히피들이 캠핑을 즐기는 카페'라는 설명이 나온다.
이번 끄라비 여행을 준비하면서 가장 하고 싶었던 것 1순위는 '카야킹'이었다.
끄라비에는 해변, 산, 계곡 등 다양한 장소에서 카약이 가능하다. 보우의 추천으로 끄라비에 있는 작은 호수인 '클롱룻(Klongroot)'으로 향했다. 두 명이서 1개의 카약을 빌리는 비용은 현지돈으로 300밧(1만2000원) 정도였다. 특별히 시간 제한은 없었고, 인심 좋은 가게 주인이 얼은 생수 2병을 공짜로 줬다. 호수는 그리 깊어 보이진 않았지만 물이 맑아 물 밑으로 다양한 열대 민물 고기를 볼 수 있었다.
카약에 올라 발을 쭉 벗고 보우와 함께 노를 저어서 카약을 즐겼다.
처음에는 방향 조정이 쉽지 않아 다른 배와 부딪히거나 호수 위로 솟아난 나무 줄기에 부딪혀 제대로 나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슬슬 손 발이 맞기 시작했다. 노를 저으며 우리 말로 '영차영차' 구령을 붙였는데 보우는 그 구령 소리가 재미있었는지 반복해서 '영차영차'의 발음을 물어왔다. 끄라비의 맑은 하늘과 노를 저으며 튀기는 물방울, 눈 앞에 펼쳐진 자연을 감상하며 노를 놓고 한동안 바람을 맞았다.
두 시간 정도 카약을 즐기고 저녁 장소로 이동했다.
아오낭 비치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인 '리브 비치 클럽'이라는 곳이었다. 날이 맑으면 저녁 시간에 해변 백사장에서 불쇼를 볼 수 있는 것으로 유명한 장소였다. 하지만 우리가 찾은 8월은 끄라비의 '우기'로 잦은 비가 내려서 불쇼는 볼 수 없었다. 코코넛을 통째로 갈아 술을 섞은 칵테일과 와인, 몇 가지 안주들을 시키고 라이브 음악을 들으며 저녁을 먹었다. 작은 게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서 올린 오일 스파게티와, 스프링롤, 태국식 요리 등을 시켰다.
방 구석에서 여행 유튜버의 영상을 보며 낯선 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삶이 부러웠는데 끄라비의 마법이 나도 그곳으로 데려가 주었다.
#끄라비 #비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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