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는 ‘초능력’… 활성화되면 눈물 흘리는 아이들 사라질 것”
‘펼치자 우리의 초능력’ 카피
청년들 동참해달라는 메시지
카드포인트 기부 등 방법많아
모바일 기부시스템 연말 완성
정기후원자 3년내 100만 기대
유산 기증·빅벳 자선 늘어나야
1조 자산가 상속 대신 기부땐
10곳에 아동병원 지을수 있어
정부, 세법개정 등으로 지원을
인터뷰 = 이용권 사회부 차장 freeuse@munhwa.com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사회복지 실현을 위한 기금을 모으는 일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궂은일이기도 하다. 평생을 금융인으로 지냈던 황영기 회장이 사회복지기관 수장을 맡은 지 1년. 대한민국 아동옹호 대표기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BI(Brand Identity)부터 변화가 보인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던 재단의 이름을 ‘초록우산’으로 압축해 표출하고, 로고도 직관적이고 간결한 우산으로 새로 디자인했다. 이 모든 것의 목표는 ‘대한민국 기부 활성화’에 맞춰져 있다. 재단이 그동안 펼쳐왔던 좋은 일을 앞으로 더 많이, 더 잘하기 위해선 기부를 늘리는 게 그 시작이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서울 중구 어린이재단빌딩에서 황 회장을 만났다.
―재단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외부에 있을 때는 제한된 시장에서 다른 업체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여기는 다른 단체장들과 만나도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전체적인 모금의 파이를 키우자는 동업자 정신이 있다. 다만 경쟁이 치열하지 않다 보니, 외부 자극에 덜 민감하고 변화와 혁신 측면에서는 속도가 느리다는 인상이 있다. 좋은 일을 성실하게 꾸준하게 하는 분위기다. ‘변화와 혁신’ 단어와는 분위기가 다르다. 그래서 내가 익숙했던 변화와 혁신이라는 테마를 사회복지법인에 반추했는데, 이곳도 변화와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펼치자 우리의 초능력’ 재단 홍보 카피부터 파격적이다.
“사회복지법인에서 볼 수 없었던 역대급으로 젊고 힙한 광고다. 깜짝 놀라는 분이 많을 거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기부를 많이 하시는 분들은 50∼60대이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분들이었다. 광고도 성공한 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어법에 가까웠다. 물론 그런 활동은 계속한다. 그런데 20∼30대도 기부할 수 있다. 먹고살기 바쁘다지만 가능하다. 큰 금액이 아니라도 신용카드 포인트 기부 등 본인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젊은이들 역시 기부를 할 수 있다. 젊은이들에게 당신들의 기부가 초능력이다. ‘초록빛 능력’ 초능력을 보여주면 어린이들을 건강하게 행복하게 웃게 할 수 있다. 동참해달라는 메시지다. 비교적 반응이 좋다. 유튜브 영상 조회 수도 1412만 건을 넘어섰다.”
―젊은 세대의 기부는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을까.
“추측하건대 기성세대는 동정심에 의한 기부 성향이 강한 듯하다. 반면 MZ세대는 참여가 중요하다. 본인이 가치를 느껴야 한다. 본인이 어떤 기부행위를 하더라도 단순히 어린아이를, 어려운 아이를 도와주는 그 선에서 끝내기보다는 어린이가 잘 자라서 국가대표가 된다든지, 사회를 밝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든지, 이렇듯 어떤 가치를 부여하고 싶어 한다. 우리 광고 카피 ‘초능력을 보여주세요’도 초능력자들이 기부를 통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젊은이들은 engagement(참여)가 강한 세대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부에 참여하게 할 계획이신가.
“기부 동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교회에 나가야 헌금을 내고, 절에 가야 불전함에 집어넣는다. 계기가 필요하다. 우리가 어떠한 아동들을 돕고 있는지, 어떤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지, 왜 어린아이들이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꾸준히 알리는 게 필요하다. 얼마 전 영아유기살해 사건도 강력 사건으로 지나갈 수 있지만 배경을 보면 다르다. 미혼모 등 복잡한 사정들이 있다. 영아유기살해와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려면 사전에 사각지대에 있는 위기임산부 및 위기영아를 발굴해 임신 과정부터 출산, 양육, 위기임산부의 학업과 자립까지 통합적인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와 함께 ‘위기임신부와 위기에 처한 영아를 구합시다’ 캠페인을 한다.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보고 문제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 문제의 근본이 여기에 있다, 해결하려면 도와주셔야 한다’ 이렇게 호소한다. 기부하고 싶어지면 후원처를 선택해야 하는데 후원처 또한 투명한 곳이어야 한다.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신뢰도 받아야 한다. ‘투명, 신뢰, 정직, 전문’ 기부금을 받아서 사업하는 곳의 핵심역량이다.”
―기부하는 방법도 달라지는 게 있나.
“모바일 기부 시스템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앱으로 기부하는 수준을 넘어, 후원 이후 우리가 후원금으로 해온 일들을 전달하고, 특정 아이와 결연을 하면 아이의 변화 등을 피드백하는 내용 등을 모두 하나의 시스템에서 이뤄지도록 작업하고 있다. 제가 들어올 때 정기후원자가 55만 명이었는데, 현재 57만 명이다. 이 중 50만 명 정도는 온라인 후원이다. 텔레뱅킹도 있지만, 대부분은 모바일로 계좌 이체한다. 후원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바일로 정보도 드리고 내신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알려드린다. 올해 말까지 새 시스템을 완성하면 모바일로 기부자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모바일로 간편하게 기부할 수 있다고 하고 젊은이들이 기부에 동참할 수 있다. 후원이 쉬워지고 후원자 관리가 잘되면 2∼3년 안에 정기후원자 수가 100만 명까지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은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고액 기부자들도 필요하다.
“기부 트렌드가 바뀔 거라고 생각한다. 재단을 믿고 정기적으로 꾸준히 후원해주시는 분들은 계속 늘어나리라고 본다. 앞으로 기부 문화의 새 장을 열어야 하는 건 유산 기부, 그리고 빅 벳이다. 지금 1인 비혼 가정이 많다. 사회생활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형제 없이 혼자 노후를 보내는 분도 많다. 이분들에게 ‘사회를 위해 기부하세요’라고 호소하려고 한다. 이미 다양한 형태의 유산 기부들이 있다. 사망보험금을 들어놨는데, 줄 사람이 없어 기부하시는 분이 가장 많다. 또 배우자가 돌아가시면 같이 살던 큰 아파트를 기부하시고, 본인은 작은 아파트로 이사 가시는 분도 있다. 그런 유산을 자녀나 형제에게 물려주는 것보다 사회를 위해서 기부해달라는 캠페인을 할 거다. 해외 영국 같은 곳은 기부금의 40% 정도가 유산 기부다. 그 레벨까지 올라오는 데 30년이 걸렸다. 우리나라 역시 사회에 재산을 환원하는 모습이 앞으로 큰 흐름으로 이어지길 희망한다.”
―빅 벳은 어떤 기부인가.
“빅 벳 필란트로피. ‘거액의 판돈’을 뜻하는 빅 벳(Big Bet)과 ‘기부’를 뜻하는 필란트로피(Philanthropy)가 합쳐진 말이다. 빌 게이츠가 2013년에 18억 달러를 기부했다. 소아마비 박멸 프로젝트다. 세계 모든 나라에 무료로 백신을 제공하면 없어질 것이라는 의미다. 기부를 통해 실제로 소아마비가 99.9% 없어졌다. 우리나라도 고 이건희 회장이 감염병 전문병원 건립에 7000억 원을 기부했다. 김봉진 우아한형제 의장도 5000억 원, 김범수 카카오 의장도 150억 원을 내놨다. 예를 들어 자산이 1조 원가량 되는 분들이 자녀 상속 대신 기부하면 전국 10개 지역에 아동전문병원을 지을 수 있게 되는 거다. 사회의 큰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판돈을 내놓는다는 의미다. 그런 분들이 나오도록 지속적으로 화두를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국에 어린이응급병원 지을 분 안 계신가요?’라고. 해결해야 할 건 많다. 다문화 아동을 위한 학교, 발달장애인 지원 사업도 필요하다. 누군가가 기부 물꼬를 터주면 상당히 좋을 것 같다.”
―제도적 걸림돌은 없나.
“유산 기부의 경우 우리나라 세법이 그렇게 프렌들리하지 않다. 유산 기부도 일반적인 상속 증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유산을 사회복지법인 등에 기부하면 세금을 내지 않는 방식으로 세법 개정이 필요하다. 유산 기부금의 절반을 세금으로 가져가는 것보다, 유산 기증자의 뜻에 맞게 사회를 위해 쓰는 게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정부가 도와줘야 한다. 또 기업 오너들이 사재를 투입해 자선 재단을 만들어도 기초재산으로 돼 처분하지 못하게 돼 있다. 예를 들어 장학사업으로 1000억 원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면 1000억 원은 쓰지 못하고 그 이자만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와 같은 곳에 기부하면 그 금액을 3년 안에 처분해야 한다. 너무 짧은 데다, 만일 기부자가 10년 이상 장학사업을 해달라고 해도 뜻을 이을 수가 없다. 아예 못 쓰거나, 3년 안에 처분하는 극과 극 상황이다. 이런 사회복지법 규정도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단체들이 합동으로 기획재정부에 세법을, 보건복지부에 사회복지법을 개정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부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한다면.
“정부는 정부대로 복지 정책을 촘촘하게 펴나가겠지만, 정부의 손이 닿지 않는 부분은 자선단체에서 메꿔나가야 한다. 다양한 기부 문화가 활성화되면, 대한민국에 눈물 흘리는 사람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할 수 있다. 기부 문화 확산에 더 노력하고 싶다. 하나 더 말씀드리고 싶은 건, 사람들의 재능기부가 필요하다. 공무원, 교수, 변호사, 금융인 등이 은퇴하고 별일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분들이 복지단체에 나오실 필요가 있다. 복지단체의 경영인으로서, 자문위원으로서,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좋은 경력을 가진 분들이 사회복지 분야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면 좋겠다. 성공한 인생에 대한 사회 보답 차원이라도 의미가 있다. 제가 해보니 참 좋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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