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혹시 교권 추락의 가해자일까? 교권 붕괴에 대한 학부모 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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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대담자
남 여사(45세, 결혼 18년 차 고1과 초6 엄마)김 여사(40세, 결혼 11년 차 초4와 초1 엄마)
황 여사(38세, 결혼 8년 차 초2 엄마)
학부모의 이기심이 가장 큰 문제
김 여사(이하 ‘김’) 언론에서 매일 교권 침해 관련된 새로운 뉴스들이 쏟아지는데, ‘저런 경우 없는 학부모가 진짜 있을까?’ 싶은 거예요. 얼마 전 교육부 공무원이 자기 아이가 왕의 DNA를 가지고 있다면서 왕자에게 말하듯이 듣기 좋게 돌려서 말해도 알아듣는다는 말도 안 되는 갑질 편지를 교사에게 보냈다는 뉴스는 정말 어이가 없더라고요.
황 여사(이하 ‘황’) 작년에는 자기 아이를 맡은 담임교사를 아동 학대로 신고해 직위해제 처분을 받도록 했다잖아요.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이번에는 그 공무원이 직위해제됐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학부모라는 게 부끄럽네요, 진짜. 아마 많은 학부모가 분노했을 겁니다.
남 곧 2학기가 시작되는데, 선생님도 아이들도 학부모도 다 무거운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하게 될 거 같아 걱정이에요. 이러다 서로 더 불신이 생기는 건 아닌지. 사실 교권 추락이나 교실 붕괴 문제는 하루이틀 전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꾸준히 문제제기가 있었는데 이번에 서이초 교사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더 크게 쟁점화된 거죠. 이렇게 된 이상 그냥 흐지부지 지나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김 맞아요. 내 아이를 위해서도 교권을 바로세우는 건 꼭 필요한 일이에요. 교사들도 더 이상은 교권 침해를 참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이잖아요. 탁상공론이 아닌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길 바라요.
남 초등학교가 진상 학부모 때문에 엉망진창이라면, 중고등학교는 문제 학생들 때문에 교실이 붕괴되고 있어요. 수업 진행을 방해하는 아이를 야단치려고 하면 옆에 학생이 휴대폰 꺼내 촬영을 한다죠. 신고한다고. 우리 학창 시절과는 전혀 달라요.
황 교권 추락의 원인 중 하나가 학생인권조례가 생기면서 지나치게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해서 그렇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어느 정도 맞다고 봐요. 요즘 애들 뭐만 하면 “이거 아동 학대야!” 하는 말을 부모한테도 막 하거든요. 그러니 학교에서 선생님이 조금만 훈육하려고 하면 ‘아동 학대’를 들먹이는 거죠.
김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저도 많이 반성하고 제 행동을 다시 돌아봤어요. 그동안 내가 혹시 진상 학부모는 아니었는지. 사실 첫째가 아들인데, 에너지가 많은 아이라 항상 학교 생활에 신경이 쓰여 담임선생님한테 질문도 많이 하고 이런저런 요구도 했던 거 같아요. 다행히 선생님들이 크게 부담스러워하진 않았던 거 같은데, 선생님에게는 힘든 민원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남 이번 교권 침해 이슈로 인해 모든 학부모를 마치 ‘몬스터 페어런츠(일본에서 유행한 신조어로, 교사나 학교에 불합리한 요구를 하거나 불만을 호소해 교사들을 곤란하게 하는 학부모를 일컫는 말)로 몰아가는 것도 걱정스러워요. 제가 아는 다수의 학부모는 선생님과 소통할 때 예의 없는 행동이나 막말을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황 대부분의 학부모는 아직도 선생님이나 학교를 어려워해요.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교권 추락의 큰 원인인 건 맞지만, 모든 부모가 그럴 거라는 우려는 좀 지나치다고 봐요.
남 저는 40대 중반이니까 좀 나이 든 학부모잖아요. 그래서인지 20대나 30대 젊은 부모들을 보면 좀 걱정스럽기도 해요. 특히 큰 문제가 “내 아이는 나만 혼낼 수 있다, 나도 혼내지 않는 아이를 당신이 뭔데 혼내냐” 이런 사고방식인 거 같아요. 교사에게도 이걸 적용해서 자기 아이만 특별 대우해주기를 바라고, 아무리 잘못해도 야단도 못 치게 하는 거죠. 그러다 보니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다수의 아이가 피해를 입게 돼요.
“나도 혼내지 않는 아이를 당신이 뭔데 혼내냐, 이런 사고방식인 거 같아요.
교사에게도 이걸 적용해서 자기 아이만 특별대우 해주기를 바라고, 잘못해도 야단도 못 치게 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다수의 아이들이 피해를 입게 되죠.”
김 사실 아이가 잘못했으면 혼나는 게 당연하죠. 물론 선생님에게 혼났다고 하면 부모 기분이 좋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이니까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는 거죠. 그리고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게 교육이고요. 그게 싫으면 학교에 보내지 말고 집에서 엄마랑 둘이 홈스쿨링을 해야죠.
황 맞아요. 그래서 저학년 선생님들이 더 힘들어요. 사실 수업을 방해하는 애들이 한 반에 두세 명은 있는 거 같아요.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판정을 받은 아이들도 있고요. 소위 ‘금쪽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인데, 부모의 태도가 선명하게 둘로 갈려요. 선생님과 학부모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경우와 안하무인으로 더 뻔뻔스럽게 선생님에게 막 대하는 부모가 있더라고요.
남 맞아요. 후배가 경기도 신도시 초등학교 교사인데, 한 아이가 전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켜 거의 강제 전학 오다시피 왔대요. 산만하고 폭력적인 성향의 아이도 문제였지만 그 엄마의 민원을 감당하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가 같은 반 학생들을 때려 그 학부모에게 이야기했더니, 왜 내 아이한테만 잘못을 뒤집어씌우냐면서 소리 지르고 난리였대요. 애 마음 하나 읽어주지 못하면서 당신이 무슨 교사냐, 교사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 하면서요.
김 아마 저를 비롯해 많은 부모가 오은영 박사가 출연하는 육아 프로그램의 애청자일 겁니다. 문제 행동을 하는 금쪽이에 대해 속시원하고, 현명한 솔루션을 주니까, ‘아, 저런 방법이 있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 방송을 지켜보게 되죠. 하지만 그건 집에서 부모가 해야 할 일이고, 학교는 다수의 아이를 위한 교육을 하는 곳이잖아요. 금쪽이 부모들이 학교에서도 오은영 박사가 하는 것처럼 자기 아이의 마음을 일일이 다 읽어달라고 요구하면 큰일이죠. 다들 자기 아이만 생각하는 이기심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남 맞아요. 강남이나 목동, 신도시의 대단지 아파트 근처 초등학교들은 보통 과밀 학급 학교가 많아요. 학생 수가 줄고 있다는데, 이런 곳은 한반 학생 수가 25~30명인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만큼 아이들을 담당하는 담임선생님의 업무량이 많고, 학부모 숫자도 많으니 민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죠. 부모들 교육열도 높아 학교 교육과 담임교사에 거는 기대도 높고요. 악성 민원이 많아 교사들에게는 최악의 근무 여건인 거죠. 서이초도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악성 민원 많고 업무량 많은 학교로 악명이 높았다고 하잖아요. 과밀 학급 학교의 학생들을 좀 분산시킬 필요도 있는 거 같아요.
황 갑질하는 학부모들은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고, 진짜 대책이 없어요. 저는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보내고 있는데, 사립초 선생님들의 교권 추락이 진짜 심각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사립초의 경우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사회적 지위도 꽤 있는 학부모가 많아요. 좋은 분들도 많지만, 이상하게 갑질하고 잘난 척하고 싶어 하는 부모들도 좀 있는 편이에요. 학급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선생님이 어떤 목적으로 교육활동을 하는지 설명해도 꼭 그렇게 해야만 하냐고 의문을 제기하죠. 막 대놓고 무식하게 덤비는 학부모보다 교양 있는 척, 이것저것 학급 일에 참견하는 학부모들이 더 교권을 우습게 보는 거 같아요.
김 공립학교 선생님들은 4~5년에 한 번씩 학교를 옮길 수 있잖아요. 그런데 사립초는 그러지 못하니까 학교장 눈치도 더 봐야 하고, 학부모들 민원에도 더 신경 쓴다고 하더라고요. 기간제 교사의 처우는 말할 것도 없고요.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교사는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인기가 좀 시들한 거 같아요. 오죽하면 교대 입시 커트라인도 낮아지고 있다고 해요.
황 제 아이가 만약 교사를 하겠다고 하면 예전 같으면 좋아했을 텐데, 지금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라고 할 거 같아요. 교사는 사명감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존경받아 마땅한 일인데 교권은 추락하고, 저출산으로 임용되는 숫자도 줄어든다고 하니 누가 교사를 하려고 하겠어요?
남 35℃가 넘는 무더위에도 선생님들이 주말마다 도심에서 집회를 열며 교권 회복의 절실함을 호소하고 있잖아요. 대다수의 선량한 학생이 교실에서 안전하게 교육을 받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이것이 위협받고 있다는 현실이 씁쓸해요.
김 실제로 일본은 교사를 못 구해 교장 선생님이 수업을 한다고 하잖아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거 같아요. 저는 긍정적인 면에서 교사의 권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학생 위에 군림하는 그런 교사의 권위가 아니라요.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어느 정도의 귄위가 보장돼야 책임감도 생긴다고 생각해요. 교사의 귄위도 세워주고 우리 아이들도 보호할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이 하루빨리 나오기를 바랍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즐거운 교실이 됐으면 합니다.
취재 : 박현구(프리랜서) | 사진 : 일요신문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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