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선의 귀환…‘탈탄소’ 풍력 화물선 첫 항해 시작
19세기 증기선의 등장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던 범선이 기후위기 시대의 탈탄소 바람을 타고 다시 해상운송 무대에 복귀하려 하고 있다. 선박 연료의 탄소 배출이 주요 환경 문제로 떠오르면서 깨끗한 풍력 에너지를 동력원으로 삼는 기술의 가치가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국제해사기구(IMO)에 따르면 현재 국제 물동량의 90%를 차지하는 해운업의 탄소배출량은 2020년 기준 세계 전체 배출량의 약 3%인 10억8천만톤으로 추정된다.
세계적인 곡물 대기업 카길은 거대한 돛을 단 풍력 화물선(벌크선)이 중국에서 브라질까지 첫 장거리 항해를 시작했다고 최근 밝혔다. 이번 항해는 풍력 화물선의 실용성을 시험하는 항해이기도 하다.
‘픽시스 오션’(Pyxis Ocean)이라는 이름의 이 선박 갑판에는 높이가 37.5m에 이르는 거대한 풍력날개 ‘윈드윙스’(WindWings) 2개가 우뚝 서 있다. 풍력발전기와 똑같은 소재로 만든 이 날개는 옛 범선의 돛과 마찬가지로 정박 중에는 접혀 있고 항해 중에만 펼쳐진다.
5~6년 사이에 급변한 탈탄소 환경
이 선박의 설계 및 엔지니어링 업체인 영국의 바 테크놀로지스와 노르웨이 야라마린 테크놀로지스는 최대 30%의 연료 절감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선박의 길이는 229m, 총톤수는 4만3천톤으로 기존 카길 화물선을 개조해 완성했다.
카길해운의 얀 딜레만 사장은 ‘비비시’에 “탈탄소화로 가는 여정에 왕도는 없지만 이번에 선보인 선박 기술은 상황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5~6년 전만 해도 해운업계 사람들은 탈탄소화에 회의적이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모두가 나름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며 급변한 상황을 설명했다.
픽시스 오션이 이번 항해에서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는 약 6주가 걸린다. 카길에 따르면 평균 국제해운 노선을 항해할 경우 윈드윙스 1개당 하루 1.5톤의 연료를 절약할 수 있다. 이는 선박 1톤당 78만원의 중유값을 절약할 수 있게 해준다.
바 테크놀로지스의 존 쿠퍼 대표는 “윈드윙스 4개를 장착할 경우 하루에 연료 6톤을 절약하고 온실가스 배출량 20톤을 줄일 수 있다”며 “이번 항해가 해운산업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 테크놀로지스는 앞으로 4년 동안 수백개의 풍력 날개를 제작할 계획이다.
돛이라기보단 배 위에 얹는 비행기 날개
스웨덴의 선박 설계회사 왈리니우스 마린도 합작회사 ‘오션버드’를 설립해 풍력 선박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내년 첫 항해를 목표로 자동차 운반선(로로선)에 높이 40m, 폭 14m, 무게 150톤의 대형 돛 ‘윙세일’ 세트를 장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오션버드는 “윙세일은 일반 돛이라기보다는 배 위에 얹는 비행기 날개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오션버드는 보통 속도로 항해하는 기존 자동차 운반선에 윙세일 1개를 장착할 경우 주엔진의 연료 소비량을 7~1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는 연간 67만5천리터의 중유를 절약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을 1920톤 줄이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했다.
오션버드는 또 기존 선박 개조 외에도 2027년까지 6개의 윙세일을 장착한 자동차 운반선 ‘오르셀 윈드’(Orcelle Wind)를 새로 건조할 계획이다. 7000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이 선박은 길이가 200m로, 돛이 없는 동급 선박에 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60%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제해사기구에 따르면 현재 선박에 적용할 수 있는 풍력 기술에는 7가지 유형이 있다. 하지만 실제로 풍력을 선박 항해에 이용하는 비율은 전체 운항 선박 11만여척의 0.1%도 안되는 100척 정도다. 풍력 선박 업계의 희망대로 올해가 풍력 화물선 부활의 원년이 될 수 있을지 이번 첫 항해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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