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검은별의 지리산 이야기: 삼신봉] 언제나 까탈스런 삼신봉…불가사의한 송정굴
날씨를 장담할 수 없는 시기였다. 장마전선은 남과 북을 오갔지만 남쪽에 머문 날이 더 많았다. 산행 약속을 잡긴 했어도 '폭우가 쏟아지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원고 마감을 제때 하지 못할까 불안했다. 하늘이 모처럼 갠 목요일, 홀로 불일폭포엘 다녀오기로 한다. 불안감을 해소해 줄 보험, 일종의 차선책이었다.
남부능선 끝자락,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지
어디엘 가려고 하동버스터미널에 들렀는지 기억할 순 없지만 겨울인 건 확실했다. 차가운 바깥에서 따뜻한 대합실 안으로 들어섰을 땐 안경 너머 세상이 온통 하얀색이었다. 무인발권기 앞에서 등을 굽히지만 보이는 건 없었다. 안경을 벗으면 이번엔 못된 시력이 방해를 했다. 화면에 코를 박고 버벅대는 모습이 안 되어 보였는지, 지나는 이가 대신 표를 끊어 주었다. 사용할 줄 몰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그래도 괜히 민망하고 무안했다.
이번엔 여름, 바깥에서도 안에서도 안경은 멀쩡했다. 쌍계사를 터치하고 3,500원을 결제한 것까진 좋았는데, 버스 투입구에 표를 넣자마자 기사님이 안 됐다는 듯 한마디를 건넨다.
"아, 이건 완행이라 1,250원만 내면 되는데…."
시외버스는 하루 두어 대뿐, 나머지는 모두 동네방네 들러 가는 완행이란다. 민망하고 무안해서, 나는 이번에도 멋쩍게 웃고 말았다.
쌍계사에서 불일폭포까진 2.4km지만 버스에서 내렸다면 그보다 더 멀다. 오르막은 어쩔 수 없지만 전체적으로 걷기 좋은 길이다. 숲이 우거져 뜨거운 볕이 들 틈이 없고, 폭포에서부터 내려온 물이 등산로 곁을 흐르고 있었다.
공사 중인 불일평전과 삼신봉 갈림길, 또 불일암을 지나 폭포로 간다. 멀리서부터 물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쏟아진 비는 말랐던 절벽을 흠뻑 적셨고, 60여 m를 내려온 물줄기는 바닥을 치며 무수한 방울들을 쏘아 올렸다.
조선시대에 쓰인 지리산 유람기의 통계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선조들이 가장 많이 간 곳은 쌍계사가 있는 화개일 것이다.
"사방은 모두 위태로운 바위가 깎은 듯하였고, 차가운 바람이 뼈에 스며들었으며, 흰 안개가 허공에 퍼져 있었다. 문득 한줄기의 장엄한 물을 보니, 하늘 끝에서 내려오는 것이 백 자나 되는 층층의 무지개 같았다. 중간에 만 개의 밝은 구슬로 부서졌다가 다시 천 개로 번뜩이며 우는 우레가 되었다."
회봉 하겸진(1870~1946)도 불일폭포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던 모양이다.
지금은 데크 설치로 길이 막혔지만 26년 전쯤엔 누구나 저 아래까지 내려설 수 있었다. 그때 나는 바보처럼 삼신봉 갈림길을 놓치고 폭포 앞에서 세석으로 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지리산에 딱 두 번째 오던 날이었다. 아니, 꼭 횟수의 문제만은 아니다.
그후에도 멀쩡한 표지기를 눈앞에 두고 엉뚱한 길로 올라 결국 산중에서 하룻밤 잔 적이 있다. 영신대에 가던 길이었는데, 당일 산행이라 침낭도 없이 흙바닥에 등을 기대고 간신히 밤을 보냈었다. 음양수에서도 그랬다.
1시간 안쪽에 세석이 있는데도 나는 어둠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60리터 써미트 배낭 속 물건을 쏟아내고 그 안에 하체를 구겨 넣은 채 하루를 보냈었다. 모두 지리산 남쪽, 하동에서의 일이었다.
어쨌든 세석을 가긴 가야겠는데, 1997년의 내겐 길이 보이질 않았다. 당연한 거지만 그땐 잘못된 길이란 걸 알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폭포 우측 사면을 따라 꾸역꾸역 올랐었다.
"이곳은 백 장이나 되는 아래로 귀신소굴 같은 캄캄한 곳이라고 하였다. 시끄럽게 웃는 소리를 듣고 나는 그곳이 목숨을 건 자가 아니면 내려갈 수 없는 곳이라 여겼다."
하겸진 일행이 찾았던 1935년처럼 길은 여전히 어두웠고, 묵혔고, 가팔랐다.
이젠 내려설 엄두조차 나질 않는데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저 길을 올랐는지 모르겠다. 결국 방향 감각마저 잃고 무작정 산속을 헤매다 독가촌을 만났다. 젊은이가 산을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고, 산이 좋아지면 세상이 싫어진다며, 할아버지는 다방식 커피 한 잔을 건네며 나를 걱정했었다. 그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겠지만 20대의 젊은이는 어느덧 50대가 되어 여전히 지리산을 오가는 중이다.
지리산의 지리산전망대 삼신봉
동행 중 절반은 직장에 다니니 주말이 아니고선 산행 날짜를 잡을 수 없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다. 그야말로 곰탕 속을 헤집는 느낌이었다. 그나마 덜 더운 건 다행이었다. 등산로와 계곡은 합쳐졌다 멀어졌다. 원래 길이었던 곳에 물이 범람했고, 등산화는 철벅철벅 물길 위를 힘차게 밟아댔다.
지리산 주능선 남쪽 전망대로 불리는 삼신봉 정상은 그해 겨울 안경처럼 막혀 있었다. 보이는 건 하나도 없었다. 다진 파를 잔뜩 올린 것처럼 하얀 풍경 속에 초록의 나뭇잎만 싱싱하게 돋보일 뿐. 청주의 한 산악회에서 단체 산행을 왔다. 아쉬운 건 서로 마찬가지지만 즐거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혼자였다면 이 축축한 산중에서 얼마나 외로웠을 것인가.
청주팀이 먼저 봉우리를 떠난다. 그중 한 사내가 삼신봉을 내려서다 미끄러진다. "어, 어!" 일행 중 한 명이 내려가 부축하지만 일어선 이는 다시 한 번 오른쪽 숲으로 넘어졌다. 나뭇가지가 꺾일 정도였다. 바위는 빙판처럼 미끄러웠다. 너덜은 또 너덜대로 발목을 힘들게 했다.
기대했던 내삼신봉도 사정은 같았다. 구름이 허리까지 내려와 준다면, 그 구름 위로 주능선이 길게 드리워 준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산은 순순히 허락하지 않았다.
"다시 올 이유가 되는 거죠."
고향이 같아 몇 마디 주고받은 산악회원은 앞질러 가며 위로했다.
쌍계사까지 가려던 사내는 넘어진 뒤 결국 청학동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상불재에서 삼성궁으로 내려가는 길을 빼곤 쌍계사까지 마땅한 탈출로도 없었다. 초입에서부터 11.4km, 결코 만만한 길은 아니다.
비법정인 외삼신봉과 지나온 삼신봉, 안쪽의 내삼신봉, 송정굴, 쇠통바위 그리고 아랫마을에 있다는 쇳대바위, 청학동, 삼성궁, 불일폭포와 쌍계사까지 이 능선엔 전설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았다.
송정굴은 터널형 동굴이다. 대부분 송정굴만 보고 가지만, 아니 등산로에서 살짝 벗어나 그냥 지나치기도 하지만 자세히 보면 송정굴 옆으로 길이 있다. 위쪽엔 송정굴보다 작은 터널형 동굴이 하나 더 있고, 그 위로 올라서면 널찍한 기도 터가 나온다.
삼신봉에도 정도령이 쌓았다는 석축이 있다. 삼신봉에 올라서면 보이지 않고, 삼신봉을 내려서도 유심히 보지 않으면 찾을 수 없다. 육체적 고통이 큰 만큼 효험도 큰 걸까. 수도자 혹은 무속인들은 왜 힘들게 산정에 올라와 신 앞에 조아릴까. 이 순간, 저 뿌연 구름을 뺀다면 산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삼성궁으로
분명 계곡 물소리가 귀를 찢을 듯이 시끄러운데 우리는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으르렁 같기도 하고, 크허억 같기도 한 괴성이었다. "곰인가?" 네 사람 모두 그 자리에서 꼼짝 않고 멈췄다. 귀를 기울이지만 물소리 외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왼쪽 사면으로 무언가 지나는 소리가 났다. "멧돼지일까요?" 적어도 우리는 네 명, 동물이라면 지독한 땀냄새 때문에라도 가까이 올 것 같진 않았다. 소리의 정체를 밝혀내진 못했지만 확실한 건 삼신봉 능선엔 국립공원에서 설치한 곰 생포틀이, 적어도 2년 전까진 있었다.
"혼자 왔으면 딱 귀신 만나기 좋은 날씨인데요."
선두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다. 아까부터 왼쪽 어깨가 아팠다. 무언가가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손을 올려보지만 짚이는 건 없었다. 전주에서 온 이영진씨는 4년 전쯤 송정굴에서 이상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비를 피해 굴 안으로 들어가 잠시 앉았는데 누군가 혹은 무언가 이씨의 어깨를 툭, 치더라는 것이었다. 물론 굴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론 송정굴에 가는 것조차 꺼려졌지만 '상불재'라는 닉네임을 사용할 만큼 이 길이 좋다고 했다.
삼성궁 앞으로 내려서니 잊고 있던 햇살 몇 줌이 도로 위로 쏟아졌다. 하지만 차창 밖으로 멀어진 산은 여전히 구름 속에 갇혀 있었다. 산 아래에선 산 위의 풍경을 짐작할 수 없을 것이다.
빛없는 산은 저녁처럼 어두웠고, 산짐승이 울부짖었으며, 장마철 물길은 등산로까지 흘러 넘쳤다. 젖은 잎들은 진한 초록이 되었고, 꽃들은 여름을 먹고 점점 더 예뻐지고 있었다. 오늘은 이렇게 내려서지만 언젠간 구름 걷힌 파란 하늘을 보여 주겠지. 산, 여전히 오를 수 있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
산행길잡이
청학동을 출발해 삼신봉까지 2.4km, 삼신봉에서 상불재까지 4.1km, 상불재에서 삼성궁은 2.3km로 총 8.8km이며, 휴식 포함 6시간쯤 걸린다. 거리를 늘려 세석대피소까지 갈 경우엔 10km이고, 쌍계사까지는 11.4km이다. 크게 위험한 구간은 없지만 비 온 직후엔 바위가 미끄러워 넘어질 수 있다.
삼신봉과 내삼신봉까지가 가파르고 그 이후엔 큰 오르막은 없지만 전체적으로 사위가 막혀 지루한 편이다. 지름길 격인 옛 등산로를 모두 막아서 상불재에서 삼성궁으로 내려서는 길도 거리가 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청학동~삼신봉~쌍계사 코스가 낫고, 1박2일 산행이라면 삼신봉에서 남부능선을 타고 세석까지 가는 게 좋다. 단, 식수는 넉넉히 챙겨야 한다.
교통
부산과 서울에서 하동을 오가는 버스가 있다. 영호남을 잇는 경전선 기차도 다닌다. 하동발 청학동행 버스는 하루 5회(08:40, 11:00, 13:20, 15:30, 18:40), 쌍계사행 버스는 경남 하동과 전남 구례에서 모두 탈 수 있다. 하동 완행 기본요금은 1,250원. 자가용이 두 대라면 청학동과 하산지점인 삼성궁에 각각 한 대씩 세워두는 게 좋다. 쌍계사, 삼성궁 도로, 청학동 모두 별도의 주차요금이 없다.
맛집(지역번호 055)
하동읍 공설시장 안쪽에 새벽 5시부터 문을 여는 밤골집(844-7357)이 있다. 시래깃국 1인분 4,000원, 맛도 좋고 인심도 좋다. 아침과 점심 영업만 한다. 쌍계사 앞 찻잎마술(883-3316)은 1인분 2만 원으로 비싼 편이지만 맛이 깔끔하고 후식으로 하동 수제차도 마실 수 있다. 청학동 입구엔 백숙으로 유명한 고향식당(882-7202)이 있다. 읍내 재첩국은 말할 것도 없고 쌍계사나 청학동 일대엔 밥 먹을 곳과 잠잘 곳이 많다.
월간산 8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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