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평준』 이윤옥 “이청준, 돈과 권력 아닌 정신의 지배 욕망으로 문학의 길 들어섰다”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그해 가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일군 집과 땅, 자산을 모조리 탕진하고 집안을 몰락시킨 둘째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이제 형제 가운데 살아 있는 유일한 남자로서 가족의 부양을 책임져야 했다.
당장 둘째형의 장례비용부터 마련해야 했다. 하지만 재직 중이던 잡지사의 사정이 어려워 월급조차 제대로 받지 못할 형편이었다. 대학 동창이던 소설가 박태순에게 들어온 원고청탁을 넘겨받아서 작품을 썼다.
소설은 1960년대 은행 신축공사장이 있는 도시를 배경으로 한국전쟁의 실존적 고통을 간직한 형과, 절실한 체험도 없이 무기력하게 관념적으로 살고 있는 동생 ‘나’를 통해 인간 실존의 고통 근원과 그 극복 양상을 형상화했다.
동생인 ‘나’는 부업으로 화실을 열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화가다. 어느 날 의료사고로 소녀가 죽은 뒤 병원 일을 그만두고 소설을 쓰는 의사인 ‘형’의 소설을 읽게 된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후퇴하던 주인공과 김 일병, 오관모 이등중사 세 사람의 이야기다. 소설은 오관모가 냄새 때문에 더 이상 김 일병과 남색을 할 수 없게 되자 김 일병을 죽이려 하면서 균열이 생긴 상태에서 중단돼 있다. 그림을 그릴 수 없던 나는 형의 방에 들어가 주인공이 김 일병을 처치하고 오관모와 함께 탈출하는 것으로 형의 소설을 마무리한다. 형은 나에게 오해하고 있다며 김 일병이 오관모에 의해 사살되지만 주인공이 다시 오관모를 사살하는 것으로 소설을 고친다. 형은 비로소 병원 일을 시작하지만 얼마 뒤 오관모를 만났다며 소설 원고를 불태우는데.
소설에서 병신은 한국전쟁의 아픔과 죄책감으로 인해 일상적 삶을 포기하려는 형이고, 머저리는 절실한 체험도 없이 자신의 아픔이나 그 원인조차 알지 못하고 관념적으로 살아가는 동생을 의미한다. 이듬해 「병신과 머저리」로 제12회 동인문학상을 거머쥐면서, 그는 한국 현대문학에서 작가적 지위를 굳히게 됐다.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작품 「병신과 머저리」부터 대표작인 『당신들의 천국』을 거쳐 토속적 세계를 미학적으로 그린 『서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이었던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의 평전(문학과지성사)이 출간됐다. 오랫동안 그의 작품을 톺아보고 전집 간행을 주도한 이윤옥 문학평론가에 의해 집필됐다.
이청준은 왜 문학의 숲,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일까. 작가로서 주요한 변곡점은 무엇이었고,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을 비롯해 작품 세계는 어떠했을까. 신간 『이청준 평전』을 중심으로 작가 이청준의 삶과 작품 세계를 살펴본다.
그가 쓰는 세계로 들어온 것은 중학 시절부터였다. 광주서중 2학년생 이청준은 교지 『무등』에 콩트 「시험 날」을 실었다. 콩트는 병남이라는 학생이 시험 보는 날 부정행위를 하려고 온갖 준비를 했지만 실패하고 자성한다는 내용. 이듬해 다시 『무등』에 전남방직을 탐방한 기사와 함께 짧은 소설 「눈과 그 소녀」를 실었다. 소설은 크리스마스 전날 눈을 매개로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여학생 영미의 마음과 행동을 그렸다.
명문 광주일고에서 전체 수석을 다툴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지만, 지방 수재들이 흔히 가는 법대가 아닌 서울대 독문과로 진학했다. 그것은 출세의 길이 아닌 ‘문학의 길’이었다. 그는 간절히 돈과 권력을 원했지만, ‘지배’와 ‘복수’라는 관점에서 ‘문학적 지배의 길’을 택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이청준은 자기 식의 지배를 완성하는 길로 예술을 택했다. 그는 사람을 돈과 권력이 아니라 자유로, 다시 말해 문학으로 지배하기로 결심했다. (고교 시절 과외를 했던) 현씨 집을 포함한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겠다는 무서운 야망이 그로 하여금 대학의 전공 학과를 선택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166쪽) 저자의 분석은 이어진다. “이청준은 지극히 개인적인 ‘복수’와 ‘지배’라는 관점에서 문학은 선택했다. 복수심과 지배욕망을 자신의 방식대로 실현하겠다는 결심이 그를 예술로 이끈 것이다.”(169쪽)
1939년 전남 장흥에서 몰락한 양반가의 후손 이남석과 유복한 양반가 딸인 김금례의 5남3녀 가운데 4남으로 출생한 이청준은 친구의 투병과 죽음을 모티브로 존재의 막막한 상황과 자기회복의 소망을 그린 단편소설 「퇴원」으로 1965년 『사상계』 신인작품 모집에 당선돼 등단했다. 당선 통보를 받은 날, 그는 일기에 적었다.
“기쁘다. 슬프도록 기쁘다. 이 조그마한 사건을 왜 내가 이렇게 기뻐하는가를 아무도 모를 것이다. 모든 슬픔이 나 혼자만의 것이었던 것처럼 이 기쁨 또한 나 혼자만의 것이다. 슬픔뿐만 아니라 기쁨도 누구나 나누어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문학에 독학이 있다는 것이 우스운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참으로 불안하고 외로운 작업이었다.... 준. 이제 조금쯤은 웃어도 되지 않겠느냐? 비애는 너의 숙명이라고 해도 잠시 밝은 얼굴을 짓고 어머님께 기쁜 인사를 드려야지. 다섯 살 먹은 어린아이가 설빔을 입고 세배를 드리듯이.”(260-261쪽)
등단 이후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낮은 데로 임하소서』, 『씌여지지 않은 자서전』, 『춤추는 사제』, 『축제』, 『신화를 삼킨 섬』, 『신화의 시대』 등을, 소설집 『별을 보여드립니다』, 『소문의 벽』, 『조율사』, 『가면의 꿈』, 『살아있는 늪』, 『비화밀교』, 『키 작은 자유인』, 『이어도』, 『눈길』, 『서편제』,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등 17편의 장편소설과 155편의 중단편 소설, 1편의 희곡 등 173편을 창작했다.
지식인 소설을 주로 써왔다는 비판도 있지만, 작품 세계의 스펙트럼은 다채롭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 젊은이와 지식인들의 내적 의식과 고뇌를 그린 『씌어지지 않은 자서전』과 『조율사』부터, 인간과 사회, 개인과 권력의 문제를 성찰한 대표작 『당신들의 천국』, 현실의 정한과 예술혼과 관계에 집중한 『선학동 나그네』, 『서편제』, 철학적 종교적인 죄와 구원의 문제를 탐구한 『낮은 데로 임하소서』 등까지.
특히 대표작으로 꼽히는 『당신들의 천국』은 그가 가슴에 품고 완성하기까지 10년 가까이 걸린 노작이었다. 그는 『사상계』 1966년 10월호에 실린 이규태의 논픽션 「소록도의 반란」를 읽고 소록도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규태의 소개 편지를 들고 소록도병원 조창원 원장을 만나서 자료도 제공받았다.
소설은 얼마 뒤 조 원장이 부식비 전용 혐의로 구속되고, 1974년 『신동아』 연재 직후엔 조 원장의 가족이 연재 중단을 요청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연재가 완료될 수 있었다. 작품은 1970년 박정희 정권의 독재로 신음하던 한국 사회에 대한 뛰어난 알레고리로 평가받았다.
소록도에 전직 군의관 출신 조백헌은 병원장으로 부임해 좌절과 실의에 빠진 환자들을 위해 오마도 간척사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원생들은 일제 강점기 주정수 원장이 행했던 위선과 배반의 역사를 떠올리며 저항하면서 갈등을 빚는다. 난관 속에서도 간척 사업이 진척되지만, 조 원장은 보건과장 이상욱의 권유에 따라 결말을 보지 못하고 섬을 떠난다. 몇 년 뒤, 민간인 신분으로 다시 섬에 돌아온 조백헌은 섬사람들과 함께 믿음과 사랑이 바탕이 된 천국을 꿈꾼다.
“오늘의 현실이 아무리 만족스럽고 행복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은 내일 다시 선택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다는 가능성 위에 내일의 선택이 열려 있지 않는 한 그 현실은 누구에게도 천국일 수가 없습니다. 선택과 변화가 전제되지 않는 필생의 천국이란 오히려 견딜 수 없는 지옥일 뿐입니다.”(399쪽)
이청준은 시대와 역사 현장에서 행동하는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시대와 역사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바라봤다고 할까. 사회에 대한 책임 의식을 당연히 가져야 하지만, 그럼에도 문학적 성취를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칫 부끄러움을 피하기 위해서 시대와 현장에만 매몰되고 문학적 성취를 놓치면 ‘알리바이 문학’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계했다.
“그의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빠짐없이 모두 거론을 하려 들고, 그가 그의 시대의 문제들과 문학인의 책임에 등한하지 않았음을, 그리고 그것이 참으로 찬양받을 만한 문학이요, 문학인의 태도임을 그의 사회로부터 인정받기를 성급하게 소망한다. 이게 바로 알리바이 문학이라 할만 것이다.”(「알리바이 문학」 중에서; 184쪽)
소설가는 소설로 말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즉, 소설은 하나의 사회적 징후로 인식돼야 하는 반성적 장르라는 것이다. 소설 자체가 하나의 결과를 잉태하게 만드는. “소설이 한 시대와 사회의 징후를 드러내는 것이 되고자 할 때에는 그것은 무엇 무엇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기보다 그 소설 자체가 그 징후의 한 현상으로 나타난다. 가난이 그 시대의 문제일 때 그것은 가난에 대해서 말한다기보다 소설 자체가 그 가난에 관계된 문젯거리의 한 증상으로 보여지기를 소망한다⋯ 그때 그 중요 문제에 대한 작가와 작가의 소견은 차라리 소설 밖에 있는 거라 할 수 있다. 소설은 다만 그 징후를 강하게 드러내 보임으로써 소설 자체가 하나의 결론을 잉태하고 그것을 태어나게 만든다.”(「왜 쓰는가」 중에서; 184쪽)
따라서 그에게 글쓰기나 소설쓰기는 바로 자신의 삶을 씻는 일종의 씻김굿이 된다. 2003년 8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다. “평소에 내 글쓰기가 무엇이었냐 생각을 해보면 결국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의 삶을 씻겨왔구나, 씻기는 과정이었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무당의 실제 굿하고는 상관없지만 그 역할이 유사하다는 거죠. 현실의 삶으로부터 영혼을 위로하고 씻기는, 그래서 평상의 삶의 힘을 회복시키는 역할이 아니었나 싶어요.”
“사람의 숫자가 자꾸 헷갈려요.” 그는 눈앞에 있는 사람과 기억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을 동시에 봤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다른 사람들도. “요새는 사람들 뒷모습만 보여요. 속까지 훤히 다.”(502-503쪽) 시도 때도 없이 연락했던 시인, 수십 년간 친교를 이어온 평론가, 평소 형으로 부르며 살갑게 굴던 후배 소설가⋯.
“하늘로 머리를 향하고 사는 조그만 새끼사슴”을 자처했던 그는 1968년 남경자와 결혼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외동딸 이은지를 두고 있다.
평전에는 이청준 작가의 주요 변곡점이나 현대사의 주요 사건, 이것들이 작품에 미친 영향 등이 촘촘하게 담겨 있다. 예를 들면, 가족 가운데 현실이 아닌 책읽기 세계를 보여준 큰형 이종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고교 1학년 2학기 때 호남은행 대표 출신의 갑부 현준호 집에 그의 아들 현영만의 가정교사로 들어갔으며, 둘째형이 전답과 선산은 물론 집까지 다 팔아넘기면서 고향집이 완전히 파산한 뒤 고향을 찾아 어머니와 하룻밤 지낸 뒤 떠나온 체험이 소설 「눈길」로 이어졌다고 저자는 적었다. 아울러 한국전쟁이나 4·19혁명과 5·16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등 현대사가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에 주고받는 영향을 분석한 부분도 흥미진진했다. 한국전쟁 당시 외가에 닥친 비극과 ‘전짓불’ 체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작품 세계로 구현한 것을 분석한 대목은 특히.
“그는 세상을 다 아는 듯했지. 우리들이 다양한 것들에 대해 치열하게 토론하며 들끓을 때, 늘 뒤로 물러서 바라보고 있었으니까.”(179쪽)
오만해 보이는 모습으로 이해되기도 했던 이청준의 이 같은 모습은 사실은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한 열등의식에 기인한 오만함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 즉, 세상이 자신을 따돌리기 전에 자신이 먼저 세상을 따돌리려는 자세, 태도였다는 설명이다.
“대학 동기들이 말하는 그의 다소 오만한 태도는, 환경으로 인한 열등의식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 오연함, 우월함이 묘하게 공존한 결과인 것 같다. 열등의식을 바탕으로 한 오만함이라니. 그의 이런 태도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다.”(179쪽)
책에는 또 소설가 김승옥과 평론가 김현 등 유명한 작가들의 모습이나 이들과의 관계도 담겨 있다. 길고 치열한 숙고와 결론을 몇 마디 말로 정리해 버리는 김승옥, 문학적 논쟁을 자주 벌인 김현, 삶과 처신이 깔끔해 ‘학’ 같은 황순원, 다양한 사람과 어울렸던 김동리.... 김현은 생전 「이청준에 대한 세편의 글」에서 회고했다.
“20여 년간 그(이청준)와 사귀어오면서, 아니 그와 술을 마셔오면서 내가 언제나 그의 의견에 승복한 것은 아니다. 나는 그와 여러 번 다퉜고 그 다툼은 때로는 절교 상태로까지 우리의 관계를 몰고 갔다. 그때마다 그는 작품으로써 다시 그의 의견을 나에게 되물었다... 한 호로 창간과 동시에 종간이 되어버린 『68문학』을 내놓고 그것의 앞날의 방향에 대해 심한 논쟁을 한 끝에 너는 내 친구가 아니다라는 말을 서로 퍼붓고 헤어진 후 거의 1년이 넘어서 그는 나에게 「소문의 벽」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읽고 나는 감동했다. 우리의 우정은 그때 다시 살아났다.”(222쪽)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그는 결혼 전에 『여원』 직원들과 함께 충무로 대원호텔에 가서 가불 받은 월급을 탕진할 정도로 파친코에 몰입하기도 하고, 결혼해 생활이 안정되자 컴퓨터를 통해 주식 투자를 하고 주위에도 투자를 권장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하루 일과.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읽고 간단히 밥을 먹은 뒤 서재로 들어가 주식창과 씨름하다 나와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 소설을 썼다. 저녁에는 책을 읽고 늘 술을 마셨다. 그는 주로 집에서 술을 마셨지만 약속이 있는 날에는 밖에서 마셨다.”(439쪽)
다만, 책은 작가로서의 삶과 활동, 작품 세계보다는 등단 이전의 생애에 집중돼 밸런스에 다소 문제가 있어 보이고, 객관적인 서술과 분석에 비해 비대한 개인적인 판단과 상상력 역시 옥에 티였다. 이것은 아마 이청준의 독특한 ‘평전론’에 적극 부응하려다보니 발생한 측면이 있는 게 아닌가 판단된다. 죽기 3,4 개월 전, 이청준은 저자 이윤옥이 평전을 쓰는 사람이 잊지 말아야 할 하나가 있다면 하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평전은 쓰는 사람과 대상이 겨루는 상상력 싸움이다. 대상이 소설가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소설가는 작품으로 교묘히 자기합리화를 시도했을 테니까. 어떤 경우라도 쓰는 사람의 상상력이 대상의 상상력에 지면 안 된다. 그러면 그 평전은 실패하고 만다. 부디 네 상상력이 내 상상력을 이겨서 내가 꾀한 모든 자기합리화를 벗겨 내 맨얼굴을 보여주길 바란다.”(7쪽)
그럼에도 평전은 한국 현대문학의 거목 이청준의 삶과 작품 세계에 대한 첫 체계적 시도였다는 점, 개인사와 관련한 상당한 사료와 증언을 확보해 반영했다는 점, 개인사와 작품 세계 사이의 인과 관계를 촘촘하게 분석하려 했다는 점 등에서 이 같은 아쉬움을 훌쩍 뛰어넘고도 남는다. 오랫동안 작가와 연대를 이어오는 한편, 전집 작업을 하면서 경험과 안목을 축적해 왔기에 가능했을 터. 오랜 시간 이청준 및 그의 작품과 씨름해왔을 저자 이윤옥에게 심심한 격려의 박수를.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세계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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