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국방경제사업’이 러시아 무기 수출?
북한의 러시아 무기 제공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한반도 정세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정보가 충분하지 않지만, 맥락을 잘 파악해 헛다리 짚기를 피해야 한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엔은 긴급 특별총회를 열어 러시아 규탄 결의안을 채택했다. 유엔은 지난해 3월과 10월 두 번에 걸쳐서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두 결의안은 193개 유엔 회원국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두 결의안을 반대한 나라는 각각 5개국에 불과했다. 두 결의안에 모두 반대한 나라는 러시아·북한·벨라루스·시리아 등 4개국뿐이다. 러시아와 가까운 사이로 알려진 중국이나 쿠바 그리고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5개국은 기권하거나 찬성했다. 벨라루스와 시리아는 현재 시점에서 볼 때 사실상 러시아와 형제국이나 다름없다. 이 대열에 북한이 합류한 것이다.
북한은 전통적으로 러시아와 밀착 관계가 아니었다. 북한은 1960년대 중·소 분쟁 때 등거리 외교를 펼쳤다. 1990년 한·소 수교 이후에는 관계가 소원했다. 북·러 관계는 2019년 2월 북·미 하노이 회담이 결렬되면서 눈에 띄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이 결렬되자, 푸틴 대통령은 김정은 위원장을 초청한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은 2019년 4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났다. 이후 양자 관계는 더욱 가까워졌다. 북한은 2021년 1월 노동당 8차 당대회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지칭하며 이들 나라와 협력해 자력갱생을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남북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미련을 버리겠다는 김정은 위원장의 선포나 다름없었다.
푸틴 대통령 친서에 담긴 의미
지난 7월27일 북한이 개최한 전승절 열병식에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이 참석했다. 중국에서는 리훙중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이 참석했다. 리훙중 부위원장은 그동안 열병식에 온 중국 측 인사들 가운데 당 서열이 가장 낮았다. 북한은 리훙중 부위원장보다 쇼이구 국방장관을 환대했다. 러시아의 실력자이기도 한 쇼이구 장관은 푸틴 대통령의 친서를 지참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친서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부쩍 가까워진 김정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친서 교환을 한 것은 지난해 8·15 광복절 이후에만 네 차례나 된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친서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을 암시하는 대목이 담겨 있다. 이 친서에 담긴 비밀은 삼단논법으로 풀이할 때 한층 명료해진다.
푸틴 대통령은 친서에서 소련의 한국전쟁 참전을 공개적으로 평가했다. 소련 공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옛 소련부터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국가원수가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처음이다. 〈노동신문〉에 보도된 원문 한 대목을 인용한다.
“수만 회의 전투비행을 수행한 비행사들을 포함한 소련 군인들도 조선의 애국자들과 함께 어깨 겯고 싸우면서 원수를 격멸하는 데 무게 있는 기여를 하였습니다.”
우수한 전투기 조종사들이 한국전쟁에 참전해 기여했다는 뜻이다. 한국전쟁 당시 스탈린은 군인들의 직접 참전에 소극적이었다. 나토(NATO)에 대항하기 위해 동유럽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미국과 확전도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중국군 참전을 끌어내기 위해, 마오쩌둥의 희망대로 중국군에 대한 공중 지원 목적으로 전투비행단을 참전시켰다. 이 전투비행단 조종사들은 푸틴 대통령이 친서에서 밝힌 대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노련한 비행사들이었다.
소련 전투기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제트기인 미그15였다. 미그15의 등장은 ‘미그 쇼크(Mig Shock)’의 시작이라 불릴 정도로 미군에 충격을 안겼다. 미국도 당시 최첨단 제트엔진을 사용한 F86 세이버를 출동시켰다. 세계전쟁사는 한국전쟁을 사상 최초로 제트전투기끼리 공중전을 벌인 전쟁으로 기록하고 있다.
소련과 미국 모두 공중전에 의한 확전을 원하지 않았다. 그래서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의 상공에서만 전투가 주로 이뤄졌다. 이 상공에서 세계 최초 제트기 공중전이 벌어졌다. 미군은 이 상공을 ‘미그 앨리(Mig Alley)’라고 부른다. 양국은 치열한 공중전이 벌어진 미그 앨리에 소련이 참전한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소련은 의도적으로 참전 사실을 숨겼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소련의 참전을 알고 있었지만, 이 사실이 알려지면 의도치 않게 여론에 밀려 확전되고 자칫 3차 세계대전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미그15의 발진기지가 있던 만주를 폭격하자고 주장하는 맥아더 사령관을 해임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비롯한다. 미국과 소련 모두 미그 앨리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제한적 공중전을 했을 뿐이다.
소련은 이 사실을 끝까지 밝히지 않았다. 심지어 희생된 전투기 조종사들조차 소련 내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밀 참전이었기 때문이다.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서 소련군 조종사들은 중국 군복을 입거나 북한 군복을 입고 위장하기도 했다. 이 사실은 소련이 붕괴하고 기밀자료가 해제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푸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소련 비행사들의 참전을 언급한 것은 그 시점 때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어서다. 푸틴 대통령이 친서에서 참전 언급 다음으로 밝힌 대목에서 의문을 푸는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호상(상호) 방조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귀중히 여기고 풍부화해 나가는 것은 특별히 중요합니다.” 북한이 전승절을 기념하도록 소련이 도와줬으니 이를 계승해서 앞으로 더 잘해보자는 말이다. “대우크라이나 특수군사작전에 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확고한 지지”를 평가했다. 여기까지 2단 논법이다. ‘확고한 지지’ 다음에 푸틴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지원’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삼단논법으로 볼 때 무리가 아니다. 추정은 추정일 뿐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쇼이구 장관의 전승절 참가 이틀 후,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추정’이 아니라 ‘믿는다’고 말했다. “쇼이구 장관이 북한에 간 것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원하기 위한 무기 공급 확보 차원이라고 믿는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러시아를 지지했던 북한이지만 군사 지원을 한다는 의혹은 부인해왔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 관리들이나 전 세계 언론이 북한의 군사 지원을 자주 언급했다. 대표적으로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이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2월 북한이 러시아의 민간 용병 회사 바그너 그룹에 우크라이나 침공에 사용될 1차 무기 인도를 완료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북한은 이를 부인했다. 지난 1월21일 커비 조정관은 이와 관련한 정황이 담긴 위성사진을 공개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했다. 위성사진을 보면 러시아 열차가 북한에 가서 화물을 싣고 돌아왔다는 것이다.
1월29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국장은 “미국은 또다시 무근거한 ‘조로(북·러) 무기거래설’을 퍼트리고 있다”라고 반발했다. 그는 “있지도 않은 일까지 꾸며내 우리 영상을 폄훼하려 드는 것은 엄중한 중대 도발이다”라고 주장했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도 나섰다. 김 부부장은 “로씨야(러시아) 군대와 인민과 언제나 ‘한전호’에 서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전호(하나의 참호)’란 혈맹 관계를 뜻하는 북한식 표현이다. 북한은 중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한 것을 두고 ‘한전호’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했다. 러시아에 대한 이런 표현은 북한이 러시아를 북·중 관계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북한과 러시아가 밀착하고 전승절에 쇼이구 장관이 참석한 상황에서 국내외 언론은 ‘북한이 무기 수출에 나섰다’라고 보도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8월3일부터 5일까지 군수공장을 시찰했다는 〈노동신문〉의 보도 때문이다. 〈노동신문〉이 ‘김 위원장이 국방경제사업의 중요 방향을 제시’했다고 보도하자, 국내외 언론이 ‘국방경제사업’을 ‘무기 수출로 외화 획득에 나서겠다’는 뜻으로 풀이한 것이다. 사브리나 싱 미국 국방부 부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국방경제사업 강조를 두고 “북한이 러시아에 탄약 판매를 고려 중이라는 보도를 말하는 거라면 그것은 우리가 매우 우려하는 사안”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은 기자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아마도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상투적으로 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발언이 ‘국방경제사업’을 ‘무기 수출’로 해석하게 했다.
캐나다 외무부도 북한이 국방경제사업을 언급한 데 대한 미국의소리(VOA)의 논평 요청에, 맥락에 관한 이해 없이 “북한이 바그너 그룹에 무기를 인도한 것을 규탄”한다고 답했다.
북한이 ‘국방경제사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사업’을 무기 수출로 잘못 해석해서 이런 소동이 벌어졌다. 북한은 국방경제사업을 ‘the national defence economic work’로 번역한다. 즉 사업을 작업(work)이라는 의미로 쓴 것이다.
〈노동신문〉은 국방경제사업 예시로 ‘공장경영사업에서 제기되는 문제들’, ‘새로운 탄종을 계렬(계열) 생산하기 위한 능력조성사업’을 들었다. 능력조성사업에서 ‘사업’도 작업의 의미에 가깝다. ‘사업’을 수출로 해석할 만한 여지가 전혀 없다.
북한 용어가 우리가 쓰는 용어와 의미가 다른 경우는 흔하다. 대표적으로 북한이 ‘200일 전투’라고 한다면 여기서 ‘전투’는 군사용어가 아니다. 노동력 동원을 강조하기 위해 전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노동신문〉 보도를 보면 김정은 위원장은 군수공장을 방문해 작업을 독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공장을 사흘에 걸쳐 방문했다. 김 위원장이 방문한 공장은 대구경 방사포탄 생산공장, 평양에 있는 군수 기계공장인 약전공장 신규 건설 현장, 전략순항미사일과 무인공격기 엔진 생산공장 등이다. 〈노동신문〉은 김 위원장의 군수공장 방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새 용어를 고안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대구경 방사포탄 공장에서는 ‘국방경제사업’을 제시했고, 약전공장 방문 때는 북한 군수공장의 ‘핵심 공장’이라 칭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국방경제사업’이라는 신조어 사용을 두고 무기 수출로 오독할 필요는 없다. 열병식 이후 김 위원장의 잇따른 군수공장 방문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2021년 8차 당대회에서 ‘국방과학발전 및 무기체계개발 5개년 계획(2021-2025)’을 제시했다. 대개 5개년 계획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는 3년 차에 다그치기 마련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북한의 러시아에 대한 무기 지원 가능성을 ‘국방경제사업’이라는 단어에서 찾는 것은,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것과 같다.
강순남 북한 국방상은 쇼이구 장관과 회담하면서 “관심사로 되는 지역 및 국제문제들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 완전한 견해 일치를 보았다”라고 말했다. 쇼이구 장관은 평양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다방면적인 협조를 시종일관 발전시켜나갈 러시아의 용의를 피력”했다. 이런 발언에서 러시아에 대한 북한의 지원과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협조로 향후 양국의 협력관계가 발전해나가는 방향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은 베트남 전쟁과 4차 중동전쟁 때 파병한 적이 있다. 또 이란·시리아·미얀마를 비롯해 아프리카 국가들에 무기 수출을 하기도 했다.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면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고, 파장도 클 것이다.
미국·EU는 디리스킹, 한국의 전략은?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생즉사 사즉생 연대”를 말한 것이 맞물리면서 한·러 관계가 악화하고 북·러 관계가 밀착한다면 우리의 안보 환경에 커다란 변화가 생길 것이다.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가운데 한국은 중국·러시아와 불편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이를 대체할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중국과 대결을 강조하는 디커플링(decoupling)보다는 경쟁과 협력에 방점을 둔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정책 전환을 하고 있다. 자칫하면 국제정세의 흐름과 동떨어진 채 한반도에서만 ‘한·미·일 대 북·중·러’라는 냉전시대의 진영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 만약 미국과 중국이 자국의 이익에 따라 협력과 경쟁을 택하면서, 대결 수요를 한반도에서 충족하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 미래에 낀 먹구름이다. 북·러 밀착 관계나 군사협력은 한반도에서 진영 대결 구도 형성을 촉진할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농구로 치면 ‘피봇 플레이’가 필요하다. 한 발은 땅에 붙인 상태에서 다른 발로 끊임없이 방향을 바꾸며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능수능란한 ‘피봇 외교’가 절실하다.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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