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자유시 참변’ 주도? 학계 “무장해제·진압 간여 안했다”
[윤 정부 ‘역사 쿠데타’]
국방부는 육군사관학교 안에 있는 홍범도 흉상을 이전하겠다며 ‘자유시 참변’ 사건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국방부는 29일 “1921년 6월 러시아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을 언급하며, 홍범도가 “소련 공산당 군정의회를 중심으로 하는 독립군 통합을 지지했고, 소련 공산당의 자유시 참변 재판에 재판위원으로 활동한 사실, 자유시 참변 발생 후 이르쿠츠크로 이동하여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 등의 역사적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홍범도가 자유시 참변 당시 독립군 몰살을 주도했다’는 등 일부 극우 커뮤니티와 매체들이 퍼뜨려온 괴담을 국방부가 은근히 지지해주는 모양새다.
자유시 참변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상하이파 고려공산당의 파벌 싸움에서 비롯한 사건으로, 만주에서 온 홍범도로선 여기에 간여할 이유도 힘도 없었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일본이 만주 일대에서 독립군 토벌에 힘을 쏟자, 독립군 부대들은 이를 피해 1920~1921년 소비에트 러시아의 위성국가인 극동공화국 내 자유시(스보보드니)에 집결해 “소비에트 러시아 정부 및 극동공화국의 지원 아래 대규모 통합부대를 결성”하려 했다고, 자유시 참변을 깊이 연구해온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논문 ‘홍범도의 러시아 적군 활동과 자유시 사변’에 밝혔다. 일본과 소비에트 러시아는 적대 관계였다.
그런데 1921년 1월 러시아 공산당이 맡아오던 극동지역 지원 업무가 전세계 공산주의 조직인 ‘코민테른’으로 이관되면서, 코민테른과 연결된 이르쿠츠크파(고려혁명군)와 독립군 통합의 주도권을 행사해온 상하이파(대한의용군) 사이의 갈등이 불거지고, 1921년 6월28일 극동공화국 군대가 ‘치안 유지’를 이유로 대한의용군을 ‘무장해제’시키면서 사상자가 발생했다. 홍범도 등 간도에서 옮겨온 독립군 대부분은 통합 주도권이 대한의용군에서 고려혁명군으로 넘어가는 것을 인정했다. 학계에서는 “‘무장부대 통합’이라는 명분과 ‘소련 및 코민테른의 권위’에 대한 인정, 그리고 ‘무기 및 식량의 원활한 공급’이라는 현실적 조건에 대한 고려 때문”(윤상원, 같은 논문)이었다고 본다. 독립군 연구 권위자인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홍범도 등 간도 독립군들은 당시 그쪽에 몸을 기탁한, 이를테면 ‘손님’이었다. 그는 코민테른의 결정에 반발할 이유가 없을뿐더러, 무장해제 결정 과정에 간여하거나 영향을 준 일도, 진압 과정에 동원된 일도 없다”고 지적했다. 자유시 참변 당시 홍범도가 “장교들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한국독립운동사자료집-홍범도’)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이다.
대한의용군에 대한 재판 과정에 홍범도가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사실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된다. 자유시 참변은 곧바로 국제사회에서 첨예한 논쟁을 일으켰는데, 이르쿠츠크파는 명망과 권위가 높은 항일의병장 홍범도를 재판위원으로 삼음으로써 신속한 사태 수습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재판 결과 실형(징역형 2년)을 받은 독립군은 3명뿐이었다. 이후 진상 규명 과정에서 홍범도를 비롯한 간도 출신 독립군들은 정파 싸움에서 ‘들러리’로 희생당했다는 취지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홍범도가 ‘이르쿠츠크 회군’ 뒤 소련 적군 제5군단 소속 ‘조선여단’ 제1대대장으로 임명된 것을 두고도, ‘홍범도가 적군에 가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1921년 8월 일본의 집요한 요구로 극동공화국에 주둔할 수 없게 된 고려혁명군은 이르쿠츠크로 이동해야 했고, 이때 독립군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형식적으로 ‘적군 소속’을 부여했고 독립군은 현실적으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풀이가 나온다.
홍범도 흉상 이전 등 국방부의 시도에 대해, 반병률 교수는 “‘공산주의’라고 ‘김일성’과 같은 말이 아니다. 독립군의 역사도, 공산주의의 역사도 이처럼 복잡한데, 이를 입맛에 맞게 단순화시켜 확대해석하면 안 된다”고 비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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