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m 절벽서 “쾅”…사람살린 현대차 아반떼, 지옥점령한 경주마 [최기성의 허브車]
‘전공’ 고성능 분야서도 활약
정의선 회장 “경주마도 필요”
미국인 클로에 필즈는 지난해말 아반떼N 덕분에 목숨을 구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클로에 필즈와 크리스티안 젤라다 커플은 지난해 12월 중순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를 여행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사고 당일 오후 LA 카운티에 있는 엔젤레스 내셔널 국유림을 지나다 차량이 자갈 위에서 미끄러지면서 300피트(91m) 협곡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차량은 크게 파손됐지만 커플은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이 사고는 워싱턴포스트(WP) 등 미국 주요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를 구한 제네시스 GV80, 아이스하키 스타를 살린 기아 EV6와 함께 현대차그룹 차량의 안전성을 글로벌 자동차들의 격전장인 미국에 알린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현대차는 지난 25~27일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글로벌 최정상급 투어링카 대회 ‘2023 TCR 월드투어’에서 시즌 세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엘란트라N TCR(국내명 아반떼N TCR)은 아르헨티나 호세 카를로스 바시 서킷에서 열린 첫번째 결승 레이스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모두 차지하는 더블 포디움을 달성했다.
TCR 월드투어는 제조사의 직접적인 출전은 금지한다. 제조사의 경주차를 구매한 프로 레이싱팀이 출전하는 ‘커스터머 레이싱’(Customer Racing)이다.
같은 경주차로 출전한 노버트 미첼리즈 역시 첫번째 결승 레이스 2위를 차지하며 엘란트라 N TCR의 압도적인 주행성능을 자랑했다.
앞서 엘란트라N TCR은 지난 5월 20~21일(현지시간) 독일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에서 열린 ‘2023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에서 TCR 클래스 1위도 차지했다.
엘란트라N TCR은 3년 연속 TCR 클래스 우승이라는 대기록도 세웠다. 아울러 VT2 클래스 1위를 달성한 현대차 i30 패스트백N 컵카와 동반 우승을 달성했다.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는 24시간 동안 가장 긴 주행거리를 기록한 차량이 우승하는 대회다. 좁은 노폭과 심한 고저차, 보이지 않는 급커브 등 주행 환경이 가혹해 ‘녹색 지옥’으로도 불린다.
완주 자체도 대단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번 대회에는 차량 131대가 출전해 88대(67%)가 완주에 성공했다.
현대차가 지난 2013년 모터스포츠 진출에 이어 2015년 고성능 브랜드 출범을 선언할 때마다 국내외에서 나온 반응은 “현대차가 안돼”였다.
모터스포츠는 막대한 비용이 들지만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고 수십년에 걸친 시행착오와 노하우가 필요해 글로벌 선두 기업이 아니면 쓴잔만 마시는 분야여서다.
또 현대차가 대중적인 차량 분야에서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했지만 고성능차 개발 기술력과 마케팅 능력은 부족하다고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10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대차는 모터스포츠 분야에서 짧은 시간에 세계 정상급 성과를 일궈냈다.
“현대차는 안돼”는 비웃음이 이제는 “현대차가 한대”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켰다.
2013년 독일 알체나우에 현대모터스포츠 법인을 설립하고 고성능차 개발을 통해 확보한 기술을 향후 양산차에 접목해 글로벌 시장에서 기술 리더십을 구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2018년 CES 현장에서 “마차를 끄는 말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전쟁에서 싸우거나 잘 달리는 경주마도 필요하다”며 “고성능차에서 획득한 기술을 일반차에 접목할 때 시너지 효과가 크기 때문에 현대차에 꼭 필요한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그룹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현대차는 WRC를 비롯해 TCR 월드투어(전 WTCR), 뉘르부르크링 24시 내구레이스 등 수많은 모터스포츠 대회에서 차량 성능을 갈고 닦았다.
2017년 N의 첫번째 판매용 경주차 i30 N TCR, 2019년 벨로스터N TCR, 2020년 아반떼 N TCR 등 서킷 경주차를 계속 선보였다.
2019년에는 WRC 참가 6년 만에 한국팀 사상 최초로 제조사 부문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다음해 WRC에서도 다시한번 제조사 부문 종합우승을 거머쥐며 운이 아닌 실력을 입증했다. 현대차에 대한 비웃음도 덩달아 사라졌다.
N은 지난 2015년 BMW M, 메르세데스-벤츠 AMG, 포르쉐 등 고성능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 출범했다.
현대차 글로벌 연구·개발(R&D) 센터가 있는 남양(Namyang)과 독일 뉘르부르크링(Nurburgring) 서킷의 앞 글자에서 가져왔다. 설계는 남양에서, 품질 테스트는 ‘지옥의 서킷’ 뉘르부르크링에서 진행됐다.
‘운전의 재미’(Fun to Drive)를 추구하는 N의 3대 고성능 DNA는 ▲코너링 악동(Corner Rascal, 곡선로 주행능력) ▲일상의 스포츠카(Everyday Sports Car) ▲레이스 트랙 주행능력(Race Track Capability)이다.
현대차는 지난달 브랜드 최초 고성능 전기차 모델인 아이오닉5 N을 공개한 데 이어 신형 아반떼N도 선보였다. 지옥 훈련을 통해 더 강력해진 경주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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