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제자의 전화

박진용 동화작가 2023. 8. 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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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가 왔다.

옛날 제자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데 알려줘도 되느냐고 묻는다.

그래도 제자라며 전화 오는 일이 드문 일이라 그러시라고 했다.

제자가 찾는다는 전화를 받고 심적 갈등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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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용 동화작가.

전화가 왔다. 몇 년 전에 봉사하던 문학관의 팀장이다. 옛날 제자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데 알려줘도 되느냐고 묻는다. 찾는 사람이 누구냐고 했다. 40여 년 전 근무했던 여중학교 때 제자라고 한다. 이름을 들어도 가물거린다. 그래도 제자라며 전화 오는 일이 드문 일이라 그러시라고 했다.

그런데, 전화를 끊는 순간 기분이 묘했다. 왜, 무슨 일로 나를 찾나. 예전 같으면 반가운 마음이 들었을텐데 오히려 불안하다. 이런 기분이 뭐지? 머릿속은 나도 모르게 수십 년 전 내가 섰던 교단을 스캔하고 있었다. 성적 나쁘다고 종아리 치던 일, 지각했다고 벌주던 일, 영어단어 억지로 외우게 시킨 일 등등 아이들을 괴롭게 했던 기억들이 번개처럼 지나갔다. 교권만 있고 학생 인권은 미미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원한을 품을 만한 일은 기억에 없다. 아니, 있었는데 기억을 못 하는지도 모른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비수가 되어 평생 상처를 안고 살 수도 있으니까. 제자가 찾는다는 전화를 받고 심적 갈등을 느끼고 있는 자신이 한심했다.

TV에서는 자기를 가르쳤던 선생님을 살해한 사건, 어느 여교사의 죽음으로 촉발된 교권 문제 등에 대한 보도와 대담이 시끄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세상은 시끄럽고 날씨는 무덥고 기분은 우울했다.

다시 전화가 왔다. 마음을 짓눌렀던 걱정이 한 방에 날아간다. 추도에서 살았다는 말, 그리고 박사학위를 받으러 엄마랑 함께 온다는 말에 근심은 반가움으로 바뀌었다. 추도는 서해 오천항에서 영목항으로 가는 뱃길에 위치한 작은 섬이다. 어린 딸을 육지에 있는 중학교로 보내고 부모의 마음은 얼마나 걱정이 되었을까. 여름방학에 동료들 몇 명과 함께 초대받았다. 부모님의 환대와 추도에서의 1박 2일 추억은 아직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제자가 학위를 받는 날, 어머니와 함께 만났다. 50대 중반에 박사가 된 제자와 90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잡았다. 가슴까지 따뜻했다.
박진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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