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모음.zip - 장르 영화가 ‘감각’을 활용하는 법[시네프리뷰]

2023. 8. 30. 0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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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6명이 참여했다고 들었을 때 ‘오감 감지기관+α가 되겠군’이라 예측했는데 어긋났다. 설정과 연출 실력이 다소 들쭉날쭉하다. 상투적인 전형성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 대성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도 있다.

제목 신체모음.zip
제작연도 2023
제작국 한국
상영시간 104분
장르 공포
감독 최원경, 전병덕, 이광진, 지삼, 김장미, 서형우
출연 김채은, 정준원, 권아름, 한상혁, 강준규, 강한샘, 김아현, 이유진, 조우리, 백현주, 김민석, 도연진
개봉 2023년 8월 30일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수상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코리안 판타스틱: 작품상’ 수상(2022)

싸이더스


익숙한 포맷이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단편영화가 있고, 사이사이 각각의 별개 에피소드가 끼워져 있는 방식. 액자식 구성이다. 이 코너에서 리뷰한 <모추어리 컬렉션>(2019·주간경향 1412호 시네프리뷰)이 그랬고, 한국영화로는 <무서운 이야기>(2012·주간경향 986호 터치스크린)가 그랬다. 최근에는 <서울괴담>(2022)이라는 제목으로 10편의 단편영화를 모아놓은 영화도 있는데, OTT에 올라온 걸 중간까지 보다가 다 못 보고는 방치해 놓은 상태다.

영화의 맨 마지막에 타이틀이 뜨는 <토막>이 이 영화를 꿰고 있는 메인장면이다. 한 사이비종교단체의 은밀한 의식 현장. 현장에 모인 열성 신도들이 끊임없이 주문을 왼다. 주문의 내용은 이렇다(한국영화인데도 중얼거리는 내용이 뭔지 정확하게 알아내기가 어렵다. 이건 모든 영화에 자막을 기본옵션으로 제공하는 OTT 시청 환경에 익숙해진 필자의 청해력 문제일 수도 있다). “아버지 육신에 피를 흐르게 하시고 들으시고 보시고 향기를 맡으시며 말씀하시는 그때 우리가 영원한 고통에서 구원할 수 있나이다.” 그리고 이 주문이 실행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도들이 바치는 선물이다. 그런데 그 선물이란? 주문에 힌트가 있다. 듣고 보고 향기를 맡게 하는 것. 오감(五感)과 관련된 것들이다. 보청기·안경 따위의 보조기구가 아니다. 귀·눈·코 이런 거다.

영화 제목에 담긴 언어유희

영화의 제목 <신체모음.zip>은 일종의 언어유희다. 도스(DOS) 시절 압축프로그램이었던 PKZIP의 명성을 윈도 운영체제 때 winzip이 이어받았고, 어쨌든 .zip이란 압축해 모아놓았다 정도의 의미다. 집대성한다고 할 때 집(集) 역시 의미는 비슷하다. 다시 말해 ‘신체모음.zip’은 ‘신체모음집’으로 읽을 수도 있다.

감독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 옴니버스를 기획하게 됐는지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신체 훼손’을 주제로 단편영화를 찍되, 훼손된 부위를 모티브 삼아 하나씩 나눠 찍는다는 식이 애초의 기획이지 않았을까 싶다. <토막>에 이어지는 사실상 첫 영화인 <악취>는 제목에서 예상되는 것처럼 후각과 관련된 것이다. 대학생 다희(권아름 분)는 간호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그는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한 낡은 앤티크를 구입하는데, 서랍 안에는 상표는 불분명하지만, 명품처럼 보이는 향수병 하나가 들어 있다. 무심결에 향수를 뿌린 다희는 아침까지 곯아떨어진다. 그후 다희의 후각이 변한다. 주위 사람들에게 시궁창처럼 썩은 냄새가 나 견딜 수 없게 된 것이다. 해결책은 딱 하나 그 향수를 뿌리는 건데, 강박적으로 향수를 뿌리다 향수가 떨어진다. 상표조차 확인 안 되니 구할 수도 없다. 샤워를 해봐도 냄새가 지워지지 않는다. 벅벅, 때밀이 수건으로 피부가 벗겨지도록 밀어보지만, 냄새는 가시지 않는다. 다희가 주위 사람들의 ‘냄새’를 의식하게 된 시점과 그가 문자로 간호사 국가자격시험에 불합격 통지를 받은 시점은 교차한다. 냄새는 계급의 표상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2019)에서 날카롭게 포착한 ‘반지하 냄새’ 같은 거다. 휴대전화 전원을 끄고 잠적한 다희가 걱정돼 찾아온 남자 선배 민준(한상혁 분)은 자신의 신체를 훼손한 다희를 발견한다. 결국 끔찍한 상태에 놓인 다희가 스스로 도려낸 부위는 어디였을까. 다들 눈치채셨으리라.

장르영화의 전형성을 넘어

6명의 감독이 참여했다고 들었을 때 하나씩 신체 부위를 나눠 갖게 됐다면 오감을 감지하는 기관+α가 되겠군…이라고 예측했는데 어긋났다. 기사를 정리하기 위해 보도자료를 봐도 눈·코·입…에서 얼버무리고 있다. 뒤로 갈수록 ‘신체모음’이라는 제목으로 엮이기엔 억지 설정이 많다. 연출 실력도 작품에 따라 들쑥날쑥하다(술자리 같은 곳에서 펴는 ‘썰’이나 꿈속에서 경험하는 공포담은 그럴듯했는데 막상 글이나 화면으로 옮겨보면 그저 그런 경우가 있다). 연출한 감독들이 생소해 이전 필모그래피를 찾아보니 꿋꿋이 장르 단편영화를 만들어왔거나, 대중 영화의 조연출·각본을 담당한 경력 등이 눈에 띈다. 상투적인 전형성에 머무르는 경우도 있지만, 앞으로 대성할 가능성이 엿보이는 작품도 있다. 충무로에서 기어코 살아남아 앞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 되기를.

신체 훼손과 고어영화 그리고 독립 장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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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키워본 사람, 하다못해 어린 시절 먹이를 나르는 일개미의 행진을 ‘방해’해본 경험 따위를 해본 사람은 안다. ‘공포’는 영장류인 인간뿐 아니라 지구상 모든 동물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원초적 감정이다. 개체말살, 죽음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 근원이다. 홍적세(지질시대 중 신생대 제4기 전반의 세) 시절 초원 너머 수풀의 흔들림이 그저 스쳐가는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홀로라면 무력하게 뜯겨 먹힐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을 노리는 포식자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그렇게 공포라는 정동은 스멀스멀 피어나 이성을 마비하고 압도한다.

판타지·공포영화의 하위장르로 고어(Gore)영화가 있다. 대충 끈적끈적한 핏덩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고어’라는 단어는 초창기 공포영화가 의도적으로 배척해 암시만 하게 되는 끔찍한 장면들, 예컨대 내장이 쏟아져 나온다던가 핏덩어리가 콸콸 쏟아져 나오는 장면을 비주얼적으로, 클로즈업해 묘사하는 따위가 특징이다. 다른 장르에 빗대 말한다면 성애영화와 포르노의 차이라고나 할까.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포르노와 다른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고어영화에서는 분장이나 특수촬영이 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일 것이다. 뭐라 규정할 수 없는, 인간 인식틀 밖의 존재가 가져다주는 공포와 시각적으로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공포의 차이는 확연하다.

<신체모음.zip>이라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건 아무래도 신체 훼손→고어영화에 가까운 공포영화일진데, 이 영화를 고어영화로 분류하긴 어려울 듯싶다. 여기에 사이비종교 신자들이 신체 조각을 상자에 고이 넣어 바치는데 그게 뭔지 알아보기는 힘들다는 게 영화의 흠이라면 흠이 되겠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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