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원의 헬스노트] "진단 어려운 노인 우울증, 표정 변화에 힌트 있다"
(서울=연합뉴스) 김길원 기자 =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우울증은 노년기 대표 질환이 된 지 오래다. 지금까지 발표된 여러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국내 노인 우울증 유병률은 75세 이상에서 4.6%∼9.3%에 머물지만 85세 이상에서는 이 비율이 27%에 달한다.
노인 우울증이 무서운 건 갑작스러운 사망 위험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의 은퇴와 경제 능력 상실, 사회적 고립, 배우자 사망 등에서 비롯된 우울 증상이 고혈압, 심장병 등의 순환기 질환 또는 치매와 같은 정신질환 발병 위험을 높이거나 자살 등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노인 우울증을 조기에 가려내는 게 어렵다고 말한다.
노인이 말하는 주관적인 우울감만으로 우울증을 진단하기에는 증상이 정형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은 데다, 기억력 저하 등의 이유로 우울 증상을 정확히 말하지 않거나 다른 이상 증상으로 호소하는 '가면성 우울'이 흔한 탓이다.
따라서 노인 우울증을 조기에 정확히 가려내려면 자녀를 비롯한 가족의 세심한 관찰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우울증 증상으로는 온몸이 아프다고 하면서도 원인이 불확실한 경우가 꼽힌다. 반복적인 병원 진료에서 뚜렷한 몸의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데도 '소화가 안 된다', '머리가 아프다', '가슴이 답답하다' 등 주로 내과적인 신체 증상을 계속 호소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밖에 뚜렷한 원인 없이 불안해하고 안절부절못하는 증상, 예전과 달리 집중하지 못하고 기억력이 안 좋아진 경우, 잠을 자다가 자주 깨거나 과도하게 낮잠을 자는 경우 등도 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최근에는 노인들의 입술과 눈썹 등 얼굴 근육 움직임을 잘 관찰하면 우울증 여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됐다.
30일 국제학술지 '센서'(Sensors) 최신호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이 운영하는 서울시보라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연구팀은 표정에서 포착되는 미묘한 변화를 체계적으로 분류함으로써 감정 상태를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인지 장애가 없는 노인 59명(평균 나이 72세, 남 24명, 여 35명)에게 적용한 결과 이런 가능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연구 참여 노인들을 대상으로 각자 카메라 앞에서 행복감, 두려움, 놀람, 분노, 슬픔, 혐오 등의 감정을 표현토록 한 뒤 6편의 단편 영화(샤이닝, 카프리콘 프로젝트, 핑크 플라밍고, 변호인, 어바웃타임, The Cham)를 보여주고, 이에 따라 나타나는 얼굴의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를 영상에 담아 종합적으로 분석했다.
이 결과 우울증 증상이 심한 노인은 증상이 경미하거나 증상이 없는 노인에 견줘 카메라 포즈 영상에서 눈 깜빡임, 굳게 다문 입술 등과 관련된 안면 근육의 표현이 증가하는 것으로 관찰됐다. 이런 특징은 감정적으로 슬픔과 관련이 컸다는 게 연구팀의 설명이다.
또한, 영화를 시청할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표정에서도 우울증 노인은 우울증이 없는 노인들과 구별되는 패턴을 갖고 있었다.
대표적으로는 우울 증상이 심할수록 눈썹 안쪽의 들어올림, 눈 깜박임, 코주름과 관련된 안면 근육 움직임이 더 두드러졌다. 우울 증상이 증가할수록 얼굴 아래쪽의 움직임이 약화하는 반면 위쪽 얼굴이 더 관여하는 것도 특징이었다.
특히 우울증이 있는 노인에게서 눈썹 안쪽 모서리가 올라가고 좁아지는 것은 슬픔의 일반적인 징후로 평가됐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로 볼 때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 상태에서의 표정보다 영화를 보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표정의 변화가 우울 증상과 관련한 실질적인 감정표현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구팀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통해 우울증과 같은 정서 장애를 감지하는 데 있어 표정의 변화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다만 이번 연구 결과가 실제 임상에 적용되려면 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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