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흉상 둘러싼 국방부의 3대 자가당착

CBS노컷뉴스 홍제표 기자 2023. 8. 30. 0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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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5년 전 공감대 없이 강행"…그럼 25년 된 국방부 흉상은?
'특정 시기'가 문제라더니 홍범도 흉상만 '선별 철거' 갈라치기?
홍범도함 개명 놓고 국방부-해군 이견…오히려 정체성 혼란 키워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 내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의 존폐 여부를 놓고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방부가 모순적 논리와 행동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려운 대내외 환경에도 불구하고 소모적 공방으로 내부 균열만 낳고 신뢰의 위기를 자초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육사, 5년 전 공감대 없이 강행"…그럼 25년 된 국방부 흉상은?


국방부는 지난 28일 입장문을 통해 홍범도 장군의 항일무장투쟁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다면서도, 독립군이 궤멸적 타격을 입었던 1921년 '자유시 사건'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등 부정적 면모를 부각시켰다.

물론 이는 입증된 사실이 아니고 학계의 공식 견해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단지 흉상 철거로 끝날 일이 아니고, 박정희 정권 때인 1962년 서훈부터 무효화해야 한다. 국방부는 위험한 역사논쟁에 한 발 내디딘 셈이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국방부·합참 청사 앞 홍범도 흉상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며칠째 반복하고 있다. 육사 내 흉상이 문제라면 국방부 앞 흉상은 더더욱 안 될 일인데도 그렇다.

이런 모순적 태도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지는 않다. 국방부는 2018년 홍범도 장군 흉상 설치가 "충분한 공감대 형성이 없이 강행되었으며, 이후에도 지금까지 이에 대한 논란이 지속돼왔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주장대로라면 1998년에 설치된 국방부 앞 흉상은 사전 공감대가 충분했다는 역설적 귀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흉상이 지난 25년 동안 별 탈 없이 존치돼왔고, 국방부가 지금도 섣불리 철거 결정을 못 내리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육사 내 흉상 설치 과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육사 총동창회 동의를 얻은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공감대 형성이 없었다고 해도 할 말은 없지만, 당시 학계의 자문을 거쳤고 육사 내부적으로만 결정해도 충분한 사안이었다"고 반박했다.

'특정 시기'가 문제라더니 홍범도 흉상만 '선별 철거' 갈라치기?

지난 2018년 3월 1일 서울 육군사관학교에서 열린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 제막식 모습. 연합뉴스

국방부는 지난 26일 언론 공지를 통해 육사가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 철거를 추진하는 두 가지 이유를 밝혔다.

첫째는 '특정 시기에 국한된 독립군·광복군 흉상'만 핵심 건물 앞에 설치돼 위치의 적절성과 역사교육의 균형성 측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일부 인사의 공산주의 경력이다.

이에 따라, 실은 홍범도 흉상이 눈엣가시지만 하나만 집어내기는 눈치가 보여서 '특정 시기' 명분을 든 것이란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 주말을 거치며 흉상 논란이 확산되고 비판론이 거세게 일자 '선별 철거'가 대안처럼 거론되기 시작했다.

홍범도 흉상 때문에 나머지 애먼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되기 때문에 홍 장군 흉상만 퇴출하거나,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흉상만 남기는 방안이다.

물론 국방부는 구체적 내용은 결정되지 않았다는 입장이지만 여론 떠보기 차원에서 흘러나온 아이디어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이는 스스로 밝힌 원칙과 기준조차 불과 며칠 사이에 바꾼다는 점에서 신뢰에 영향을 준다. 자칫 독립운동 후손마저 갈라치기 한다는 오해로 치명타를 입을 수도 있다.

홍범도함 개명 놓고 국방부-해군 이견…오히려 정체성 혼란 키워

홍범도 흉상을 둘러싼 국방부의 자가당착 끝판왕은 같은 이름의 해군 주력 잠수함(SS-079)이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8일 정례브리핑에서 홍범도 흉상 철거시 홍범도함 이름도 바꿔야 하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다면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배석했던 해군 관계자는 곧바로 발언권을 얻어 "현재 해군은 홍범도함 함명 제정 변경 등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국방부와 군이 언론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견을 표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통상 언론브리핑 전에 국방부 대변인 주재로 각군 공보담당자들이 사전 조율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해군은 국방부와 다른 입장을 내는 것에 매우 곤혹스러워하면서도 함명 만큼은 양보할 수 없는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나라가 망하거나 정변이 일어나는 경우 등 극히 드문 사례밖에 파악된 게 없다. 오래 전에 훈장까지 수여한 독립투사의 이념을 문제 삼아 함정 이름을 바꾼다면 세계적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흉상도 뽑아내는 판에 수천억짜리 잠수함의 이름은 그대로 두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육군(육사)이 금기시하는 이름을 단 채 칠흑 같은 해저를 누벼야 하는 해군 입장에서도 괜히 찜찜할 수밖에 없다. 이래저래 진퇴양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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