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입국 목적은 "고려 독립”···홍범도 서류 '재조명'

김태원 기자 2023. 8. 3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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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홍범도 장군이 소련에 입국할 때 작성한 서류. YTN 보도화면 캡처
[서울경제]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을 비롯한 독립 영웅 5인의 흉상 이전이 추진되는 가운데 홍범도 장군의 소련 입국 서류가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2021년 홍 장군 유해봉환 당시 처음 화제를 모은 이 서류는 홍 장군이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석할 때 소련에 입국하며 쓴 서류로 알려졌다.

입국조사서는 러시아어와 중국어, 한글로 쓰여있는데 홍 장군은 자신의 사회 계층을 '농부(농민)'으로, 직업은 의병이라고 적었다. 입국 목적과 희망은 '고려독립'이라고 밝혔다. 소속 정당과 노동조합 가입 여부를 묻는 말에는 '없소'라고 짧게 답했다. 홍 장군이 민족 독립을 위해 소련의 도움을 받고자 했던 의중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종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28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를 통해 "홍 장군은 광복되기 전에 돌아가신 분이고 (당시 소련 지도자) 레닌을 방문해 약소국인 대한민국 독립을 도와줄 수 있느냐, 항일무장 독립을 도와줄 수 있냐 이런 논의를 했던 상대방"이라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신흥무관학교의 기틀을 마련한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그는 "홍 장군이 소련 제복을 입게 된 것도 항일독립투쟁의 효과적인 진전을 위해서였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도 1962년 건국훈장을 수여한 것인데 이제 와서 북한이 생기기도 전에 소련 공산주의 제복을 입었다는 것이 지금 이념전쟁의 단초가 된다는 것은 정말 소가 봐도 웃을 일"이라고 질타했다.

홍범도 장군의 모습. 사진 제공=독립기념관

진행자가 ‘당시의 소련과 중국은 항일독립전쟁을 같이 했던 같은 편이었느냐’고 질문하자 이 전 의원은 “그렇다”면서 “미국과도 같이했다. 미국과 소련은 같은 동맹, 한 전선에서 일본과 싸웠다”고 말했다.

실제로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지속된 2차 세계대전은 미국과 소련, 영국, 프랑스, 중국 등 연합국과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추축국 사이에 벌어진 세계 규모의 전쟁이다.

이 전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지금 열심히 연대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스태프들, 그분들이 한창 활동할 때 소련 공산주의와 중국 공산주의가 우리의 파트너지 않았느냐”라며 “역사성 있는 강력한 동반국이었던 소련 공산당 그리고 중국 공산당이 어떤 때는 정치적 입장에 따라서 이용되기도 하고 또 같이 활용되기도 하는 그런 것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설명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홍범도 장군이 함께 한 봉오동,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의 많은 전사들이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라며 “누구는 공산당으로 폄하되고 누구는 항일의 전사로 기려지는, 어떤 정치적 입장에서 좌우가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모습은 진실에 가깝지 못하다”고 공박했다.

2021년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됐다. 연합뉴스

이 전 의원은 홍 장군 흉상 철거가 대한민국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홍 장군 흉상이 철거되면 대한민국 건국의 기초가 된 무장독립투쟁이 앞으로 고국의 간석이 될 육사 생도들의 뇌리에서 사라짐으로써 대한민국의 역사가 또다시 왜곡되는 불행한 구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이 전 의원은 할아버지 이회영 선생 흉상 이전 검토 소식에 대해선 "홍범도, 이회영 선생은 완전한 대한민국의 회복이 있을 때까지 독립전쟁을 하려고 했다. 어느 분들도 분단된 조국을 생각한 적 없다"라는 말로 홍범도 장군, 이회영 선생을 떼어 내 생각할 부분이 아니라며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5인의 흉상은 지금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맞다고 했다.

지난 2021년 당시 국가보훈처가 홍 장군의 유해 봉환을 계기로 홈페이지에 마련한 추모 공간 '장군의 귀환'에는 3일 만에 5800건의 추모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홍범도 장군은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군을 조직, 청산리 대첩과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독립운동에 앞장선 인물이다. 1937년 소련 스탈린 정권의 정책 탓에 연해주에서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로 강제로 이주당했고 이후 움막집에서 살며 극장 경비 생활로 생계를 이을 만큼 힘든 말년을 보내다가 1943년 해방을 보지 못하고 서거했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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