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이 출동, 출동…경찰은 '번아웃'
기존 업무에 특별방범 근무까지…피로도 극심 토로
전문가들 "민간경비 활용 등 경찰력 적재적소 써야"
#. 지난 8일 저녁 9시10분쯤 112에 "서울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에서 사람들을 칼로 찔러 죽이겠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해당 신고는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으나 이 신고로 경찰관과 소방대원 59명이 현장에 출동해 청량리역 인근을 수색했다.
전국에서 이 같은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글 게재가 잇따르자 경찰이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최근의 비정상적 상황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규모 인력이 치안 강화에 편중되다 보니 업무가 가중된다는 것이다.
경찰은 지난달 21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림역 인근 흉기 난동 사건 이후 지난 25일까지 약 1개월여간 3488곳에 자율방범대 치안보조인력 4800명을 포함한 1만7503명을 투입했다. 모두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 장소로 지목된 곳에 파견된 인력이다.
흉기 난동과 살인 예고에 따른 특별 순찰 업무가 가중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경찰관들이 늘고 있다. 서울 남부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형사는 "기존의 강력 범죄 수사와 함께 흉기 대응 특별 근무와 경호·경비 업무, 추석 기간 특별방범 근무까지 업무가 계속 더해지는 실정"이라며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순찰 지역이 는다"고 밝혔다.
지방 기동대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기동대에서는 집회나 시위 등 상황이 없으면 정해진 시간에 교통 지원을 나가거나 순찰을 도는데 요즘은 주말도 예외 없이 특별방범 활동에 나선다"며 "(쉴 틈이 없으니) 피로도가 높은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경찰은 민생치안 대응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 개편에 들어갔다. 본청과 18개 시도청 지원 인력을 중심으로 전체 인원의 5% 내외를 지구대와 파출소 등에 재배치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본청, 시도청, 경찰서 소속 내근 인력 등을 포함해 최소 1000명 이상이 일선 치안 현장에 배치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일선 업무의 과부하를 줄이기엔 역부족이라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된다. 서울 지역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한 경찰관은 "1000명이 충원되더라도 일선 지구대·파출소로 분산한다면 한 곳당 1~2명 느는 수준"이라며 "치안 위주로 경찰 조직을 개편한다는 방향성은 좋지만 현장에서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제한된 경찰력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인파가 몰리는 곳에 경찰을 다 배치할 수 없을뿐더러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백화점, 쇼핑몰 등 상업적 다중이용시설에는 민간 경비를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경찰력은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한쪽에 몰리면 한쪽이 비게 되므로 위험한 시간, 장소 등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전략적으로 순찰 활동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력 낭비 지적에 경찰과 법무부는 허위 살인 예고 글 작성자에게 형사처벌과 함께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살인 예고 글을 게시하는 행위는 많은 국민을 불안에 빠뜨리고 국가 공권력의 적정한 행사를 방해하는 중대 범죄"라며 "형사책임뿐 아니라 민사책임까지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2024년 범죄대응 예산이 올해보다 4배 가까이 늘어난다. 경찰 1인당 저위험총기를 1점씩 보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등 최근 급증하고 있는 묻지마 범죄 대응 예산이 확충됐다. 2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4년 정부 예산안 중 범죄대응 예산은 1조1000억원으로 올해 3000억원에 비해 3.6배가량 늘었다. 세부적으로 묻지마 범죄(이상동기 범죄) 관련 예산이 553억원에서 1319억원으로 3배 가량 확대됐다.
정부는 총기 보급 예산을 올해 14억원에서 대폭 늘린 86억원으로 편성해 경찰 1인당 저위험 총기 1점 보급을 추진한다. 저위험 권총은 실탄 위력의 10% 수준인 플라스틱 재질 탄환을 격발할 수 있는 총기로 현재 경찰 3인당 1점 수준으로 보급돼있다. 또 전국 101개 기동대에 흉기대응 장비인 방검복과 삼단봉을 보급한다는 계획이다. 마약 범죄 관련 예산은 올해 238억원에서 내년 602억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최지은 기자 choiji@mt.co.kr 김지성 기자 sorry@mt.co.kr 김도균 기자 dkk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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