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버스만 사용’ 유예됐지만 대책 없어…애타는 체험마을

김윤호 2023. 8. 30.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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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도기간 두며 단속 늦췄지만
일반 전세버스 불법 규정 여전
일선학교, 교통사고 책임 부담
농촌에선 체험관광 축소 우려
“현실에 맞는 법개정 이뤄져야”
초등학교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에 노란색 어린이 통학버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제처 유권해석이 체험활동 위축 우려를 낳고 있다. 양찬식 강원 춘천 원평팜스테이마을 대표가 농촌체험학습장 앞에서 일정을 적어놓은 수첩을 확인하고 있다.

“‘초등학교 현장체험학습에 노란색 어린이 통학버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법제처 유권해석에 일선 학교와 농촌체험마을 모두 대혼란에 빠졌죠. 다행히 경찰청이 당분간 단속 대신 계도·홍보를 하겠다고 해 발등의 불은 껐지만, 마땅한 대책이 없는 상황에서 교통사고 발생에 대한 부담을 느낀 학교가 체험활동을 전반적으로 축소할까 봐 걱정은 여전히 큽니다.”

최근 찾은 강원 춘천시 사북면 원평팜스테이마을. 이곳은 20여년 전 양찬식(58)·김미영씨(54) 부부가 장 담그기와 김장, 농산물 수확, 물놀이, 썰매 타기, 빙어 낚시를 비롯해 연중 다채로운 체험행사를 시작하면서 유명해진 마을이다. 농촌체험학습장과 김치체험장·대강당을 갖추고 코로나19 사태 이전 한해 2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던 도내 대표적인 팜스테이마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만난 김씨는 “개학을 맞아 9월에만 전국 각지에서 초등학생 2000여명이 찾아올 예정이었는데 법제처가 일반 전세버스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해버렸다”며 “별도의 계도 기간을 두면서 예약이 무더기로 취소되는 상황은 면했지만, 단속이 유예됐을 뿐 불법이 해소된 건 아니기 때문에 학교 입장에서 체험활동을 시행하는 데 부담을 가질 것”이라며 걱정했다.

코로나19라는 긴 터널을 이제 막 빠져나온 농촌체험마을들이 ‘체험학습 갈 때는 노란 버스만 타라’는 정부의 뜬금없는 ‘탁상행정’ 때문에 다시 어려움에 빠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문제는 법제처가 지난해 10월 비상시적인 현장체험학습을 가기 위한 어린이의 이동도 ‘통학’에 해당한다고 유권해석 한 데서 비롯됐다. 즉 13세 미만 어린이들이 현장체험학습을 가려면 기존처럼 일반 전세버스를 타선 안되고, 겉을 노란색으로 칠하고 어린이 체형에 맞춘 안전띠를 설치한 어린이 통학버스를 반드시 타야 한다는 것.

그러나 이런 통학버스는 전국적으로 절대 부족한 상황이다. 전국전세버스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등록된 어린이 통학버스는 총 6955대다. 이 가운데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에 쓸 수 있는 ‘대형버스’는 2431대뿐이다. 올해 1∼6월 초등학교 체험학습 운행 차량으로 4만9860대가 계약된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대부분 학교의 현장체험학습이 몰리는 9∼11월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버스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회는 이같은 결정이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먼저 단기간에 이뤄지는 수학여행을 목적으로 한대당 500만∼1000만원을 들여 버스를 개조한다는 것이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연합회 홍보팀 관계자는 “법제처와 경찰청의 권고에 따라 현실에 맞는 교통편을 학교에 공급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정부가 단순히 단속에만 초점을 맞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중장기적인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부 교수학습혁신과 담당자 역시 “일선 학교로부터 ‘수학여행에 나설 버스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냐’는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면서 “경찰청과 협의해 학생들이 당장 하반기부터 안전하게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교육부는 경찰청과 부랴부랴 협의한 끝에 “관계부처 회의에서 경찰청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방안을 도출할 때까지 단속 대신 계도·홍보 기간을 두겠다”며 “이를 즉시 각 교육청에 안내했다”고 25일 밝혔다.

하지만 농촌체험마을의 우려는 가시지 않고 있다. 김감순 광주·전남 팜스테이협의회장은 “코로나19가 지나가고 이제 겨우 체험객이 늘어났지만 아직도 예전처럼 활성화되진 않았는데 이런 식으로 규제가 강화되면 학교들이 만에 하나 생길지 모를 교통사고에 대한 부담 때문에 아예 체험학습을 포기할까 봐 걱정”이라고 밝혔다.

심장섭 전북 임실치즈마을 위원장은 “코로나19 이후 이제 막 기지개를 켜려는 농촌체험관광에 찬물을 끼얹지 않도록 현실에 맞는 근본적인 법령 개정이 하루빨리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송이버섯 생태체험, 사과효소팝콘 만들기 등 초등학생에게 인기가 높은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충북 충주 내포긴들마을의 손병용 대표는 “법 적용이 유예돼 우려한 예약 취소는 발생하지 않겠지만, 근본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혹시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책임을 오롯이 학교에 지우게 한다면 초등학교 체험관광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학교 현장에선 계도 기간에 발생할 수 있는 교통사고에 대해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춘천 A초등학교에 근무하는 교사 김모씨(36)는 “차량을 못 구해 수학여행을 취소할 때 발생하는 숙박시설·식당 위약금 부담이 컸는데 정상적 학사운영이 가능해져 한시름 놨다”면서도 “대부분 학교의 현장체험학습이 9∼11월에 몰려 어린이 통학버스를 원활하게 구하긴 쉽지 않을 텐데 일반 전세버스를 운행하다가 만에 하나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전부 학교 책임이 될 게 뻔하다”고 하소연했다.

한편 버스업계는 저출산으로 초등학생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어린이 통학버스를 대폭 늘리긴 어렵다는 견해다. 전국전세버스연합회 관계자는 “학교의 일반적인 단기 체험학습에 대응하려고 버스 개조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기존 버스에 ‘어린이 탑승 알림’을 표기하고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게 권고하는 등의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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