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베크렐 시버트가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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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혹은 세게 발음하면 욕처럼 들리기도 하는 낯선 용어들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는 중이다.
'베크렐'과 '시버트'.
"오염수에 바닷물을 섞어 삼중수소를 리터당 1,500베크렐 이하로 낮춘다"거나 "오염수로 인한 인체 피폭선량이 연간 0.05밀리시버트로 관리된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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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게 혹은 세게 발음하면 욕처럼 들리기도 하는 낯선 용어들에 익숙해지려고 애쓰는 중이다. ‘베크렐’과 ‘시버트’. 둘 다 방사능 측정 단위다.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를 바다에 흘려보내도 괜찮다는 근거를 수치로 댈 때 주로 사용된다. “오염수에 바닷물을 섞어 삼중수소를 리터당 1,500베크렐 이하로 낮춘다”거나 “오염수로 인한 인체 피폭선량이 연간 0.05밀리시버트로 관리된다”거나.
과학적으로 계량된 수치들 앞에서 마음이 놓여야 교양 있는 문명인이겠지만 어쩐지 찜찜하다. 그게 당연한 반응이라는 것을 알게 된 건 일본 마이니치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를 읽고 나서다. 원자핵물리학자로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에서 과학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기시다 잇타카 교수는 희석된 오염수가 이론적으로는 마셔도 될 정도로 안전하지만 거기서 사회적 논의를 끝내면 안 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의 이해가 깊어질 거라고 기대해선 안 된다. 인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왔다. 베크렐이나 시버트 같은 생소한 말을 접하고 일단 무서워하는 건 본능이다."
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장착된 생존 기제가 “의심하라”고 지시하는데 제3자가 “안심하라”고 강요해 봐야 먹힐 리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핵물질이라면 공포가 최대치로 커지는 게 지극히 자연스럽다. 믿음 있으라 하심에 곧바로 믿음이 생긴다면 그건 과학이 아닌 종교다. 그러므로 오염수의 안전성이 여전히 의심스럽다면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우기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정치 선동꾼이나 반정부 세력에 대책 없이 휘둘려서도 아니다.
의심해야 할 이유가 충분히 제거되지도 않았다. 붕괴된 원전에서 발생한 대량의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는 건 인류가 역사상 처음 벌이는 일이다. 일본이 약속한 기준에 따라 오염수를 거르고 희석하면 해롭지 않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지만 인간 한정이다. 지구 생태계에 어떻게 작용할지는 알 수 없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안전하다고 의견 일치를 본 것도 아니다. 방류가 끝나는 최소 30년 뒤의 일을 확신하는 것은 과학의 영역일 수 없다.
그런데도 오염수 문제에 관한 한 한국인들을 침착하다. 성급하지 않다. 의심과 안심 사이에서 신중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염수 방류는 핵 테러이자 제2의 태평양전쟁”이란 말을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의 공포 마케팅이 힘을 쓰지 못하는 것도, 수산물 사재기나 해물식당 보이콧 같은 광풍이 없는 것도 결론을 내리지 않아서일 것이다.
합리적이고도 안전한 최종 결론의 도출을 돕는 것은 정치가 할 일이다. 판단의 근거를 제공하는 것이 과학의 역할이라면 근거의 신뢰도를 보증하는 것은 정치의 책임이다. 대통령실은 이번 주 내내 구내식당에서 해산물 요리를 내놓는다고 한다. 우럭을 튀겨 탕수육을 만들고 전복을 버터에 구워서 나눠 먹겠다니 그 힘으로 왜 여태 못 믿느냐고 호통을 치기보다 정치가 할 일부터 정확하게 다 했으면 한다.
최문선 국제부장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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