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심각한 재판 지연 대책이 장기 미제 전담 법관 ‘2명’ 증원이라니
서울중앙지법이 최근 재판 지연이 심각한 기업 전담 재판부 4곳에 ‘장기 미제 중점 처리 법관’ 2명을 추가로 배치했다고 한다. 이들에게 장기 미제 사건 주심(主審)을 맡겨 사건 처리 속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6년 동안 장기 미제 사건이 급증했는데도 대법원이 이를 방치하자 서울중앙지법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판사 3명씩 재판하는 합의 재판부 4곳에 2명을 추가해 봐야 기존 재판부 3명을 3.5명으로 늘리는 것밖에 안 된다. 큰 효과가 있을 리 없다.
전국 법원의 민사 1심 사건 중 2년 안에 판결이 나오지 않은 장기 미제 사건은 2017년 5345건에서 지난해 1만4428건으로 3배가량 늘었다. 같은 기간 형사 1심 장기 미제 사건도 2배가량 늘었다. 소송 중에 당사자가 숨지거나 소송이 길어져 지연 이자가 원금에 육박하는 등 소송 당사자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사건이 는 것도 아니다. 민사 1심 사건은 2017년 35만건에서 지난해 34만건으로 오히려 줄었다. 그런데도 이 지경이 된 것은 김 대법원장의 사법 포퓰리즘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사법 민주화를 명분으로 고법 부장판사 승진제를 폐지하고, 판사들이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도입했다. 이후 법원장들이 판사들 눈치 보느라 판사들의 인사 평정 역할을 사실상 포기했고, 열심히 일할 이유가 사라진 판사들 사이에선 ‘1주일에 3건만 선고’가 불문율로 자리잡았다. 워라밸에만 관심 두는 판사들이 늘어나고, 사명감 갖고 일하는 판사들은 “힘이 빠진다”고 한다. 이 악순환의 피해를 사건 당사자와 국민들이 입고 있다.
다행히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다. 주변에 “(국민의 불만이) 폭발하기 직전인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한번에 해결할 묘책은 없다. 대법원은 우선 법원장 추천제는 폐지하고, 판사들도 ‘1주일 3건 선고’ 같은 말도 안 되는 룰을 없애야 한다. 일 안 하는 판사들은 징계하고, 도를 넘으면 법복을 벗도록 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는 판사들은 승진 등 모든 면에서 혜택을 줘야 한다. 판사는 단순한 직업인이 아니다. 국가를 지탱하는 사법의 중추다. 그런 사명감부터 회복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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