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두 시간 걷고 채소·잡곡·비타민까지 먹는데… 왜 이리 불안한가
느리게 나이 드는 생활 습관에 대하여 여러 사람에게 알리다 보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경박 단소한 식사, 충분한 신체 활동, 회복 수면 등의 생활 습관을 만들어 유지하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가 되어서 오히려 병이 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주로 20~30대가 하는데, 스트레스를 화끈하게 풀고 당장을 즐기면서 사는 것이 오히려 나은 삶 아니냐는 뜻이 숨어 있다. 사실은 반대다. 건강한 식사나 신체 활동, 회복 수면, 절주, 머리 비우기의 공통점은 오히려 우리 몸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준을 낮춰줄 수 있다는 점이다.
사실 현대인이 스스로 노화 속도를 부지불식간에 빠르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을 꼽으면 만성 스트레스를 들 수 있다. 정신없는 일과가 끝나가는 늦은 오후, 나는 눈치챌 틈도 없이 스마트폰을 스크롤하기 시작한다. 집중력이 떨어져 이 일, 저 일을 두리번거리듯 처리하다 보면 내가 치매에 걸린 것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스마트폰에 눈이 가고, 달고 기름진 음식이나 시원한 맥주가 한없이 떠오르지만, 정작 이런 자극에 빠져들수록 피로감과 우울감은 더욱 심해진다. 이 악순환 과정에서 신체 활동이 줄고 수면의 질이 악화되고 식사의 질은 떨어진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이런 악순환이 연쇄 작용을 일으키는 여러 요소를 끊어내고, 오히려 반대로 돌려 선순환을 만드는 방법이 결국 전면적 생활 습관 개선이다. 전반적 생활 습관이 건강을 향할수록 스트레스는 줄어들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의 회복 탄력성이 개선되고, 노화 속도도 자연히 느려진다.
하지만 건강한 생활 습관이 오히려 병을 만든다는 이야기는 때로는 사실이 될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과하면 독이 될 수 있듯, 노화나 질병에 대한 거부감과 두려움이 삶 전반에 대한 과도한 규율과 집착으로 번지면 어느 순간 주객이 전도되며 삶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건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여러 답답한 점이 있어 진료실을 찾은 60대의 남성 A씨 사례다. 항상 피로하다고 느끼는 그는 늘 건강과 관련된 매체를 시청하며 ‘항노화’에 대한 책도 빠짐없이 읽는다고 하였다. 특별한 지병은 없지만 철저히 채소와 잡곡 위주로 소식을 하고 있었고 여기에 더해 하루 두 시간씩 걷는다고도 하였다. 아주 마른 몸매인데, 영양 실조로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여러 비타민과 보조제를 매일 한 움큼씩 복용하고 있었는데, 그 목록이 노트 한 페이지에 빼곡했다. 건강에 좋다는 것은 다 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몸이 좋지 않은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 보니, 원래는 통통한 체형이었으나 2년 전 당뇨 전 단계와 고지혈증에 해당한다는 말을 듣고, 약을 먹지 않으려고 체중을 15kg 가까이 빼게 되었고, 이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검사를 해 보니 근육량뿐 아니라 뼈 밀도도 상당히 낮아져 있었는데, 결국 생활 습관의 구성 요소 하나하나는 문제가 없었지만 수단과 목표가 뒤바뀌어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해치게 된 것이다. 결국 A씨에게 가장 급요한 처방은 중용에 가까운 자연스러운 균형 회복이다.
즐기면서 사는 게 낫지 않냐는 20~30대 젊은이와, 건강하다고 알려진 생활 습관에 강박적으로 빠져들었던 A씨에게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공통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노화, 즉 나이 듦을 부정하고 거부하려는 생각이다. 그 태도는 젊어서는 건강한 삶, 느리게 나이 드는 삶의 방식에 대한 완강한 거부로 나타나 ‘미래 일은 생각하지 말고 현재 자신의 행복을 위해 소비하라’와 같은 방어 기제로 표출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몸과 마음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건강 염려나 의료 쇼핑처럼 반대편으로 방어 기제가 발현되기도 한다.
과학자들은 노화에 대한 긍정적, 부정적 시각을 점수화해서 연구에 사용한다. 뉴질랜드의 젊은 성인들을 관찰한 연구에서, 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전반적으로 더 나쁜 생활 습관뿐 아니라 동년배에 비해 좋지 않은 몸과 마음의 건강 상태와도 연관되어 있었다. 나이 듦에 대한 시각은 수명에도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나이가 든다는 착각’을 쓴 예일대의 베카 레비(Becca Levy) 교수팀은 장년기의 미국인 660명을 23년간 관찰하였는데, 노년에 대해 긍정적 사고를 가진 이들이 노년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보다 7.5년 더 생존했다. 노화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진 사람들의 혈중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수명을 7.5년 줄이는 효과는 평생 하루 한 갑 정도 담배를 피우는 것과 비슷하다.
한국인은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기대 수명과 건강 수명을 보인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 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을 기준으로 15세 이상 인구 중 자기 건강 상태가 ‘매우 좋다’거나 ‘좋은 편’이라고 응답한 이는 31.5%로 OECD 평균인 68.5%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는 질병 유무와 관계없이 스스로 느끼는 건강 수준을 이야기한 것으로, 예를 들어 특별히 아픈 곳이 없더라도 건강을 걱정하고 염려한다면 자신의 건강상태를 낮게 평가할 수 있다. 이렇게 기대 수명 등 객관적 지표와 주관적 건강 상태가 큰 괴리를 보이는 현상은, 평균적 한국인이 가지는 나이 듦에 대한 부정적 관점을 방증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 2018년 국가인권위의 노인 종합 보고서에 따르면 청년층의 80%가 노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나이 듦을 피해야 할 대상이나 없애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노화를 박멸할 수 있는 생활 습관과 관련한 TV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 노화를 퇴치할 수 있다는 과학기술에 대한 책을 만들자는 제안 등을 자주 받는다. 이런 시각은 본질을 놓친 채 노화에 대한 부정적 사고를 강화한다. 베카 레비 교수는 단 10분 동안 나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사람들의 기억력과 신체 기능, 심지어 삶의 의지까지 개선할 수 있었다고 했다. 노년을 거부 대상이 아닌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완성 시기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 사회는 지속 가능하게 나이 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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