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교권 회복 주도 ‘인디스쿨’, 하나의 點으로 돌아가나

김민철 논설위원 2023. 8. 30.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교조는 가만 있어달라”며 서툰 목소리로 교사 집회 주도
49재 집회로 혼선 생겼지만 합리적 MZ 세력으로 커갔으면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교사일동이 연 '국회 입법 촉구 추모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손팻말을 들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22일부터 매 주말 공교육 정상화와 지난달 사망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6일 오후 국회 앞 도로를 가득 메운 교사들 집회는 광화문에서 보는 민노총·태극기 집회와는 좀 달랐다. 우선 목소리와 구호 동작이 좀 서툴렀다. 참석자들은 추모 의미로 검은 옷을 입고 있었고 앞뒤에 ‘현장 요구 즉각 반영’ ‘교사 죽음 진상 규명’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다른 집회에서 보이는 세 과시용 깃발, 정치적인 구호는 일절 없어서 집회가 간결했다.

이 집회 주최자는 교총이나 전교조가 아니었다. 지난달 22일 첫 집회부터 이날 6차 집회까지 ‘인디스쿨’이라는 생소한 온라인 교사 커뮤니티가 주도하고 있었다. 이전과는 결이 다른, 교직 사회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원래 인디스쿨은 수업 자료를 공유하는 커뮤니티였다. 운영진은 20~30대 젊은 교사들이 주축이라고 한다. 교사들은 코로나 시기에 인디스쿨이 있었기에 정상적인 수업이 가능했다고 했다. 교육 당국은 온라인 수업을 하라고 해놓고 “각 교사 역량대로 하라”고 나 몰라라 했다. 그사이 젊은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인디스쿨에 올리는 수업 자료를 바탕으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달 18일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발생하자 전국 일선 교사들이 인디스쿨을 통해 결집했다. 첫 집회를 시작으로 주말마다 한 달 넘게 수만명이 참석하는 교권 회복 집회를 이끌고 있다. 첫 보신각 집회 때 인디스쿨 집회에는 최소 5000여 명이 참석했지만 청계 광장에서 열린 전교조 집회 참석자는 500명도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전교조는 “정치적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니 제발 가만히 있어 달라”는 말을 들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교권 회복 운동의 주도권은 인디스쿨로 넘어갔다. 기존 교원 단체들은 인디스쿨에 쩔쩔맸다. 집회에 오라면 가고 쟁점에 대한 입장을 내라면 내는 정도에 그쳤다고 교육계 관계자들은 전했다.

일선 교사들이 이렇게 결집한 것은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악성 학부모 민원에 시달리고, 아동 학대로 몰리는 것을 두려워했고, 일부 학생들 때문에 교실이 엉망이 되는 것을 누구보다 느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집회 발언자들은 “서이초 교사 사건이 내 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교사 80여 명이 지난달 말 인디스쿨을 통해 모여 20여 일 만에 아동 학대 신고 대응 등 4대 과제에 대해 300쪽 분량의 연구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다. 지난 21일 교육부 간담회에서 이 보고서를 전달하자 내용이 알차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잘나가던 인디스쿨이 서이초 교사의 49재일인 9월 4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할지 문제로 큰 혼선을 노출했다. 사실 이날 재량 휴업 또는 집단 연가를 사용해 집회를 갖자는 제안을 누가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교육부는 징계 등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고 일부 진보 교육감들은 지지 의사를 밝히면서 찬반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이에 ‘49재 집회’ 운영팀은 지난 27일 인디스쿨에 “집회를 전면 취소하고 운영팀은 해체한 뒤 하나의 점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썼다. 하지만 일부 교사들은 계속 추진 의사를 밝히고 있어서 상황이 유동적이다.

49재 혼선은 인디스쿨이 하나의 커뮤니티여서 뚜렷한 지도력이 없기 때문에 생긴 결과일 수 있다. 하지만 집회 등을 보면서 MZ세대가 부상하면서 교육계에 큰 지각 변동이 생기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대의 흐름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디스쿨이 첫 번째 시련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의 점’으로 돌아가기보다는 전열을 정비해 우리 교육 현장을 합리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