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38] 로마의 회계장부
고대 이집트 파라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제 무덤을 파는 일이었다. 파라오가 되면, 자신의 권세와 개성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서 자기 미이라가 누울 피라미드부터 쌓아 올렸다. 그 공사 기간은 아주 길고, 중간에는 홍수도 잦았다. 그러니 장기 목표는 있으되, 단기 계획은 없었다. 건축 자재와 식량은 늘 임기응변으로 조달했고, 회계장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숫자 놀음에 불과했다.
회계장부를 체계적으로 기록한 곳은 고대 로마다. 주인이 없는 동안 노예들이 라티푼디움(대농장) 관리에 얽힌 금전 출납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돌아온 주인 앞에서 회계장부를 펼쳤다. 그들은 주인의 자산을 차변(借邊)에, 부채를 대변(貸邊)에 나누어 적었다. 주인의 자산이 노예에게는 빌린 것(借, debt)이요, 주인의 부채는 노예가 주인 대신 제3자에게 지급했다가 나중에 주인에게 돌려받을 것(貸·credit)이라는 표시다. 그 회계 관행은 노예가 사라진 지금도 살아있다.
로마 제국 시절 경제활동은 대부분 1년 안에 끝났다. 그래서 지금도 예산과 결산을 1년 단위로 끊는다. 하지만 한 치 앞을 모를 때는 1년도 길다. 한국전쟁 초기에는 전쟁이 금방 끝날 줄 알았다. 그래서 정부는 소위 ‘사변 예산’을 매월 편성했다. 인천상륙작전 뒤에도 추경, 1·4 후퇴 뒤에도 추경이었다. 결국 전쟁 첫해에 추경 예산을 일곱 번이나 짰다.
1년이 짧을 때도 있다. 수십 년짜리 계약을 다루는 보험 회사에는 1년 단위 회계 관행이 잘 맞지 않는다. 오랜 고민과 검토 끝에 보험 계약의 국제 회계 기준(IFRS 17)을 따로 만들어서 올해부터 적용하고 있다.
그런데 보험 계약 즉, 보험 회사 부채에 관한 가정이 너무 많다 보니 회계가 숫자 놀음에 가까워졌다. 피라미드 공사 회계와 다를 게 없다는 푸념이 들린다. 로마 노예들이 시작한 1년 단위 회계 관행은 장기에 걸친 경제활동을 표현하기 어렵다. 연필 깎는 칼로는 큰 나무를 베기가 어려운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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